무의 관성과 엔트로피 2편
무를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 시간도 공감도 없다. 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상상이 안 된다. 눈을 감는다. 어둠이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무가 아니다. 어둠도 하나의 존재다. 시각 신경이 빛을 받지 못할 때 만드는 감각. 무는 그것조차 없다.
무는 쉽게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 나의 의식의 흐름속에 내가 죽었을 때를 생각하면 된다. 나의 의식이 중심이기 때문에 내가 없어지면 의식이 사자지면서 무로 돌아간다.
철학자도 무를 설명하려 했다. 하이데거는 "무는 무화한다"고 했다. 사르트르는 "무는 존재의 틈새"라고 했다. 개념적이다. 무를 말로 설명하려는 순간 이미 무가 아니게 된다. 말은 존재를 전제하니까.
공감이론으로 생각해본다. 무는 공감이 0인 상태다. 의지도 0, 반응도 0, 공감도 0. E = W × R에서 모든 항이 0인 상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가 없다. 시간의 의미도 없다. 공간의 의미도 불분명하다.
무를 정의하는 순간, 무는 개념이 되어버린다. 개념은 존재의 한 형태다. 무는 정의될 수 없다. 다만 존재가 없었던 상태, 존재 이전의 상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즉 공감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왜 최초는 반드시 무여야 할까. 이 질문이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무가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이미 뭔가 있다면. 그럼 그것은 어디서 왔나. 더 이전이 있어야 한다. 그 이전은 또 어디서. 무한 소급. 답이 없다.
무에서 시작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철학적으로. 과학적으로. 모든 종교도 그렇게 말한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시작한다. 그 이전은 무다. 불교는 "공(空)"을 말한다. 모든 것이 공에서 나와 공으로 돌아간다. 노자는 "무에서 유가 생긴다"고 했다.
물리학도 마찬가지다. 빅뱅 이론. 138억 년 전 우주는 무한히 작은 점이었다. 특이점. 그 이전은 없다. 시간도 공간도 없다. 물리 법칙조차 적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거의 무에 가깝다.
공감이론도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무. 공감 제로 상태. 존재가 발생하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기점.
무는 어떤 상태였을까. 상상할 수 없지만 상상해본다.
에너지 차이가 없다. 뜨거운 곳도 차가운 곳도 없다. 모든 것이 평평하다. 온도 차이가 없으면 열은 흐르지 않는다. 압력 차이가 없으면 바람도 불지 않는다. 농도 차이가 없으면 확산도 일어나지 않는다.
차이가 없으면 변화가 없다. 변화가 없으면 시간이 의미 없다. 시계를 놓아도 소용없다. 모든 순간이 같으니까. 시간은 변화를 재는 척도다. 변화가 없으면 시간도 없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여기와 저기가 구분되지 않는다. 모든 곳이 똑같다. 방향이 없다. 위도 아래도 없다. 공간은 차이를 담는 그릇이다. 차이가 없으면 공간도 의미 없다.
상호작용도 없다. 반응할 대상이 없으니까. 밀 것도 당길 것도 없다. 영향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 완벽한 고립. 완벽한 침묵.
하지만 양자역학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진공도 완전히 비어 있지 않다고. 양자 요동이 있다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에너지와 시간의 곱은 항상 플랑크 상수보다 크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은 에너지가 무에서 생겼다 사라질 수 있다. 가상 입자. 존재했다가 사라진다. 관측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양자장 이론도 그렇게 말한다. 진공은 장(field)으로 가득 차 있다. 전자기장, 중력장, 쿼크장. 이 장들이 요동친다. 미세하게. 끊임없이.
하지만 이것도 존재일까. 양자는 질량이 없다. 물질이 아니다. 관측하지 않으면 파동 함수일 뿐이다. 확률의 바다. 가능성의 겹침. 존재라고 부르기 어렵다.
관측해야만 존재한다. 의지로 반응하여 공감해야만 존재하게 된다. 이중 슬릿 실험. 관측하기 전에는 파동이다. 관측하는 순간 입자가 된다. 존재는 관측과 함께 확정된다.
공감이론으로 보면 명확하다. 의지(관측하려는 의지)가 반응(측정)을 만들고, 반응이 공감(상호작용)을 만들고, 공감이 존재(입자)를 확정한다. E = W × R.
무는 그 이전이다. 관측도 없고 의지도 없는 상태. 가능성만 있고 실체는 없는 상태. 존재가 일어나기 전의 바닥 상태.
그런데 변화가 일어났다. 어떻게.
무는 불안정했다. 절대 평형은 거의 불가능하다. 복잡계에서는 더욱. 미세한 비대칭이 생긴다. 요동. 흔들림.
왜 불안정할까. 완벽한 평형을 유지하려면 완벽한 제어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주적 규모에서 완벽한 제어는 없다. 양자 요동은 피할 수 없다. 확률적으로.
그 요동이 커진다. 우연히. 아니, 필연적으로. 충분히 긴 시간이 주어지면 모든 가능성은 실현된다. 무한한 시간 앞에서는 확률 0이 아닌 모든 것이 일어난다.
요동이 임계치를 넘는다. 뭔가 달라진다. 차이가 생긴다. 여기와 저기가 조금 달라진다. 평형이 깨진다.
이것이 최초의 존재하려는 의지다. 있고자 하는 힘. 존재하고자 하는 바람. 에너지 균형의 어긋남. 무의 평형을 깨려는 미세한 비대칭.
깊은 명상에 빠졌을 때. 호흡이 멈춘 것 같았다. 생각도 멈췄다. 텅 빈 것 같았다. 하지만 완전히 비지 않았다. 뭔가 있었다. 있으려는 힘. 깨어 있으려는 의지. 사라지지 않으려는 몸부림.
그것이 나를 다시 끌어당겼다. 호흡이 돌아왔다. 생각이 돌아왔다. 존재가 돌아왔다. 무에서 존재로. 순간적으로.
의지에 반응하여 공감하며 존재한다. 공감이론.
최초의 의지는 미세했다. 하지만 반응을 만들었다. 요동이 다른 요동을 만났다. 상호작용이 시작됐다. 파동이 간섭했다. 보강 간섭, 상쇄 간섭. 패턴이 생겼다.
그렇게 공감을 만든다. 상호작용이 계속되면 공감이 생긴다. 일시적이지만 확실한. 미세하지만 실재하는.
공감이 일정 임계치를 넘으면 존재가 실체화된다. 양자 파동이 입자로 붕괴한다. 가능성이 실재가 된다. 확률이 확정된다.
하지만 초기 우주에서 이것은 불안정했다. 공감이 부족했다. 구조가 얕았다. 그 상태에서 엔트로피는 너무 높았다. 무는 엔트로피가 100프로이기 때문이다. 존재하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무로 돌아가려는 힘이 더 강했다.
존재는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반복적으로. 빠르게. 시도와 실패. 생성과 소멸. 파동처럼.
파도가 밀려온다. 모래성을 쌓는다. 정성껏. 하지만 다음 파도가 무너뜨린다. 다시 쌓는다. 또 무너진다.. 반복한다. 지치지 않고.
우주도 그랬을 것이다. 존재를 만들려 했다. 무너졌다. 다시 만들었다. 또 무너졌다. 반복했다. 몇 번이고.
왜 의지는 하나인가. 이 질문이 중요하다.
엔트로피를 보면 혼란스럽다. 존재를 파괴하는 힘. 무질서로 돌아가려는 경향. 이것도 의지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두 개의 의지가 있는 걸까. 존재하려는 의지와 무로 돌아가려는 의지.
아니다. 의지는 하나다. 존재하려는 의지만 있다. 엔트로피는 의지가 아니다. 통계적 경향이다. 확률의 귀결이다. 자연의 기본 설정이다.
의지는 방향성이 있다. 목적이 있다. 존재하려는 방향. 하지만 엔트로피는 방향이 없다. 그냥 확률적으로 무질서로 흐를 뿐이다. 의도가 없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의지가 아니다. 중력 때문이다. 열이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른다. 의지가 아니다. 분자 운동의 통계적 귀결이다.
엔트로피도 마찬가지다. 질서에서 무질서로. 하나의 상태에서 많은 상태로. 확률이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의지가 아니다.
의지는 하나다. 존재하려는 의지. 나머지는 그 의지의 표현이거나 그 의지가 맞서야 할 환경이다.
존재하려는 의지는 다양하게 파생된다. 더 잘 존재하기 위해.
끌어당기려는 의지. 중력. 전자기력. 혼자보다 함께. 결합하면 더 강하다. 원자가 분자가 된다. 분자가 세포가 된다. 세포가 생명이 된다.
유지하려는 의지. 안정. 질서. 한 번 만든 구조를 지키려 한다. 항상성. 생명체가 체온을 유지한다. 혈당을 조절한다. 환경이 변해도 내부는 일정하게.
변하려는 의지. 진화. 적응. 환경이 바뀌면 나도 바뀐다. 돌연변이. 자연선택. 더 나은 형태로. 더 효율적인 구조로.
반응하려는 의지. 상호작용. 소통. 혼자 있지 않는다. 관계 맺는다. 영향 주고받는다. 공감한다. 존재를 확인한다.
모두 같은 목적이다. 더 강하게, 더 오래, 더 깊이 존재하기. 의지는 하나다. 표현 방식만 다를 뿐.
아침에 일어난다. 왜. 존재하려는 의지. 밥을 먹는다. 왜. 유지하려는 의지. 일을 한다. 왜. 반응하려는 의지. 운동을 한다. 왜. 변하려는 의지. 사람을 만난다. 왜. 끌어당기려는 의지.
모든 행동의 밑바닥에 하나의 의지가 있다. 존재하고 싶다는 것.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것. 더 존재하고 싶다는 것.
공감이 발생한다. 존재가 성립하는 순간.
의지가 반응을 만난다.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에너지가 교환된다. 정보가 전달된다. 패턴이 공유된다. 이것이 공감이다.
공감이 쌓인다. 조금씩. 천천히. 임계치에 가까워진다. 어느 순간 넘는다. 갑자기. 상전이처럼. 물이 얼음이 되듯. 증기가 물이 되듯.
존재가 확정된다. 실체화된다. 이제 무로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구조가 생겼다. 안정화됐다. 엔트로피를 견딜 수 있다. 일시적으로나마.
하지만 초기 우주에서는 이것이 어려웠다. 엔트로피가 너무 높았다. 무의 관성이 너무 강했다. 존재는 나타나자마자 사라졌다.
양성자를 생각한다. 쿼크 세 개가 강한 핵력으로 결합한다. 놀라운 공감이다. 엄청난 에너지로 묶인다. 그래서 양성자는 안정적이다. 엔트로피로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우주 나이만큼 살 수 있다.
하지만 최초에는 이런 안정적 구조가 없었다. 시도만 있었다. 실패만 있었다. 반복만 있었다.
존재는 공감이 잠시 성공한 상태일 뿐이다. 엔트로피가 공감을 무너뜨린다. 다시 무질서로. 다시 평형 상태로.
태초의 우주를 상상한다. 시도와 실패의 반복.
존재가 나타난다. 미세한 요동이 구조를 만든다. 짧은 순간. 하지만 엔트로피가 무너뜨린9다. 사라진다. 다시 무로.
또 나타난다. 다른 형태로. 다른 패턴으로. 하지만 또 사라진다. 반복된다. 끝없이.
왜 중요한가. 이 반복이.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공감의 흔적. 패턴의 흔적. 존재하려는 의지는 학습한다. 어떤 구조가 조금 더 오래 버티는지. 어떤 패턴이 엔트로피를 조금 더 견디는지.
진화처럼.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수많은 시도. 대부분 실패. 하지만 가끔 성공. 성공한 것이 살아남는다.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우주도 그랬다. 수많은 시도. 대부분 즉시 붕괴. 하지만 가끔 조금 더 오래 버티는 구조. 그것이 패턴으로 남는다. 다음 시도에 영향을 준다.
강한 핵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중력. 이런 힘들이 어떻게 생겼을까. 우연일까. 아니다. 수많은 시도의 결과다. 가장 안정적인 조합. 엔트로피를 가장 잘 견디는 구조.
양성자, 중성자, 전자. 이런 입자들이 왜 이런 질량과 전하를 가졌을까. 우연일까. 아니다. 가장 효율적인 공감 구조. 존재를 가장 잘 유지하는 형태.
공감의 임계치가 만들어진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며.
처음에는 매우 낮았다. 조금만 공감해도 존재가 확정됐다. 하지만 금방 무너졌다. 엔트로피가 강했으니까.
시행착오를 거치며 임계치가 높아졌다. 더 많은 공감이 필요해졌다. 더 강한 결합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한 번 넘으면 더 안정적이었다.
물이 끓는 점을 생각한다. 99도에서는 액체다. 100도가 되면 기체가 된다. 1도 차이. 하지만 상태가 완전히 바뀐다. 상전이. 임계 현상.
공감도 그렇다. 임계치 이전에는 불안정하다. 금방 사라진다. 하지만 임계치를 넘으면 안정화된다. 존재가 확정된다.
우주는 이 임계치를 찾아갔다. 시행착오로. 반복으로. 학습으로. 그리고 어느 순간 준비가 됐다.
빅뱅으로 이어질 준비.
존재하려는 의지는 강력했다. 하지만 무의 관성은 끝없이 유지됐다.
의지가 밀어붙인다. 존재하려고. 구조를 만들려고. 공감하려고. 하지만 무가 끌어당긴다. 돌아오라고. 평형으로. 침묵으로.
충돌이다. 팽팽한 줄다리기. 밀고 당기고. 나타나고 사라지고. 시도하고 소멸하고.
이 충돌이 태초의 우주를 '시도와 소멸'의 순환으로 몰아넣었다. 수없이 반복됐다. 얼마나 오래. 알 수 없다. 시간의 의미조차 불분명했으니까.
하지만 변화는 쌓였다. 미세하게. 보이지 않게. 공감의 흔적. 패턴의 학습. 구조의 진화.
그리고 어느 순간. 임계치를 넘었다. 공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연쇄 반응처럼. 눈사태처럼.
빅뱅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된다. 지금은 여기까지만.
무에서 시작했다. 존재하려는 의지가 생겼다. 반응이 일어났다. 공감이 발생했다. 존재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반복됐다.
의지는 하나다. 존재하려는 의지. 나머지는 파생이거나 환경이다. 엔트로피는 의지가 아니다. 맞서야 할 조건이다.
공감이 임계치를 넘으면 존재가 확정된다. 하지만 초기에는 임계치가 불안정했다.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우주는 학습했다.
그리고 준비됐다. 빅뱅을 위해. 존재를 위해. 우리를 위해.
무는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존재하려는 의지의 출발점이었다. 공감이 태어나는 자궁이었다.
우주는 무에서 왔다. 하지만 무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존재하려 한다. 지금도. 여기서. 나를 통해. 너를 통해. 우리를 통해.
그것이 공감이론의 출발점이다. 무와 의지. 소멸과 존재. 엔트로피와 공감.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