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관성과 엔트로피 4편
완전한 끝을 상상해본다. 모든 것이 멈춘 상태. 더 이상 변화가 없는 상태. 별도 꺼지고, 원자도 붕괴하고, 에너지도 균일해진 상태. 우주의 죽음. 열적 죽음.
무섭다. 아니, 무섭다는 감정조차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감정도 변화니까. 변화가 없으면 감정도 없다. 시간도 의미 없다. 과거와 미래가 구분되지 않는다. 모든 순간이 똑같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엔트로피 100%는 정말로 완전한 끝일까. 아무것도 없는 상태일까.
눈을 감는다. 어둠이 보인다. 하지만 완전한 어둠은 아니다. 눈을 세게 감으면 빛의 잔상이 보인다. 광점들이 떠다닌다. 신경 신호의 잔여물. 완전한 무는 아니다.
엔트로피 100%도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뭔가 남아 있을 것 같다. 미세하게. 감지하기 어렵게. 하지만 분명히.
엔트로피 100%를 정의한다. 물리학의 언어로.
열역학 제2법칙의 극한 상태다. 에너지 차이가 완전히 0이다. 온도 차이도 0, 압력 차이도 0, 농도 차이도 0. 모든 차이가 사라졌다.
더 이상 일(work)이 불가능하다. 물리학에서 일은 에너지의 이동이다. 차이가 있어야 이동이 일어난다. 차이가 없으면 이동도 없다. 변화도 없다. 멈춘다.
뜨거운 물과 찬 물을 섞는다. 처음에는 차이가 있다. 열이 흐른다. 뜨거운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시간이 지나면 미지근해진다. 균일해진다. 더 이상 흐름이 없다. 엔트로피가 최대가 됐다.
방 안의 공기를 생각한다. 분자들이 움직인다. 무질서하게. 하지만 평균적으로는 균일하다. 한쪽 구석에만 몰려 있지 않다.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다. 이것이 엔트로피 최대 상태다.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모든 별이 핵융합을 끝낸다. 연료가 고갈된다. 빛이 꺼진다. 모든 물질이 붕괴한다. 양성자도 결국 붕괴할 수 있다. 10의 34승 년 후쯤. 상상할 수 없는 미래. 에너지가 완전히 균질화된다. 우주 전체가 같은 온도. 절대 영도에 가까운.
열적 죽음이라 부른다. 왜 죽음인가. 변화가 불가능하니까. 반응이 불가능하니까. 생성이 불가능하니까. 물리학의 언어로 말하면 우주가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태다.
공감이론으로 번역한다. 엔트로피 100%는 무엇인가.
공감이론의 기본 공식을 다시 본다. 의지(W)가 반응(R)을 만나면 공감(E)이 생기고, 공감이 존재를 확정한다. E = W × R. 이 중 하나라도 성립하지 않으면 존재도 성립하지 않는다.
엔트로피 100% 상태를 이 변수로 치환한다.
의지의 기울기가 없다. 차이가 없으니까. 높은 곳도 낮은 곳도 없다. 흐를 방향이 없다. 존재하려는 의지가 발현될 이유가 없다. W의 효력은 0이다.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다. 에너지 교환이 없다. 정보 전달이 없다.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다. 반응(R)이 0이다.
공감이 발생할 수 없다. 의지도 0이고 반응도 0이면 공감은 0 × 0 = 0이다. 공감(E)이 0이다.
결과는 명확하다. 존재가 0이다. 실체화가 불가능하다. 에너지 변화 없음. 구조 없음. 방향성 없음. 완전한 평형.
엔트로피 100% 상태는 있는 상태가 아니라 없는 상태다. 공감이론에서 존재가 없음이란 엔트로피 100% 상태를 의미한다. 즉, 무(無)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정말 완전한 무일까.
현대 물리학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완전한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공에는 항상 양자 요동이 있다고. 진공 에너지가 있다고. 미세한 불확정성이 있다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에너지와 시간의 곱은 항상 플랑크 상수보다 크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은 에너지가 무에서 생겼다 사라질 수 있다. 가상 입자. 존재했다가 사라진다. 관측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양자장 이론도 그렇게 말한다. 진공은 장(field)으로 가득 차 있다. 전자기장, 쿼크장, 중력장. 이 장들이 요동친다. 끊임없이.
엔트로피 100%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거시적 구조는 모두 붕괴했다. 별도 없고, 원자도 없고, 입자도 없고, 시간의 방향성도 사라졌다. 하지만 양자 요동은 남는다. 양자 얽힘도 남는다. 비국소적 상관관계도 남는다.
공감이론으로 해석하면. 이것은 존재가 아니다. 남아 있는 것은 관계의 흔적이다. 관찰하기 전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질량도 없다. 있다 없다라고 정의를 할 수 없는 양자의 세계다. 그것은 존재가 되었던 되기 위해서 노력했던 관계의 흔적들이다. 혹은 의지 자체일지도 모른다.
모래성을 생각한다. 바닷가에서. 정성껏 쌓은 높은 탑. 두꺼운 성벽. 파도가 온다. 무너진다. 모래는 다시 바다로 흩어진다.
이전 모래성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남아있던 흔적 위로 다시 모래성을 쌓는다. 같은 자리에.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조금 다르다. 파도에 무너지지 않도록 더욱 단단한 모래성을 쌓는다.
우주도 그럴 것 같다. 존재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엔트로피 100%로 돌아간다. 하지만 완전히 같은 무로 돌아가지 않는다. 흔적이 남는다. 양자 수준에서. 관계의 패턴. 얽힘의 구조.
태초의 무를 상상한다. 완전한 평형. 하지만 요동이 일어났다. 양자 요동. 미세한 차이가 생겼다. 존재하려는 의지가 발현됐다. 반응이 일어났다. 공감이 생겼다. 아주 짧게. 찰나적으로.
하지만 무너졌다. 무의 관성이 강했다. 엔트로피 100%로 돌아갔다. 존재는 사라졌다.
다시 요동이 일어났다. 또 다른 형태로. 조금 다른 패턴으로. 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반복됐다.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 끝없이.
이 순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수없이 반복됐다. 얼마나 오래. 알 수 없다. 시간의 의미조차 불분명했으니까.
중요한 것은 흔적이다. 존재는 사라지지만 관계의 흔적은 양자 영역에 남는다는 가설. 양자 요동과 얽힘은 이전 존재의 미세한 패턴을 품는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양자 얽힘은 공간을 초월한다. 비국소적이다. 한 입자의 상태가 측정되면 멀리 떨어진 다른 입자의 상태도 즉시 결정된다. 이것은 정보다. 관계의 정보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반복이 변화를 만든다. 무와 유의 순환 속에서 양자 영역은 점점 더 다양해진다. 얽힘의 패턴이 복잡해진다. 가능성의 조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처음에는 단순했다. 두세 개의 양자 요동. 몇 가지 얽힘 패턴. 하지만 반복될수록 복잡해진다. 요동이 요동을 만나고, 얽힘이 얽힘과 겹치고, 패턴이 패턴을 낳는다.
복잡계 이론을 떠올린다. 단순한 규칙의 반복이 복잡한 패턴을 만든다. 생명 게임(Game of Life)을 본 적이 있다. 수학자 존 콘웨이가 만든 것. 간단한 규칙. 살아 있는 셀과 죽은 셀. 이웃의 수에 따라 다음 상태가 결정된다. 단순하다. 하지만 반복하면 놀라운 패턴이 나타난다. 움직이는 구조. 자기 복제하는 구조. 예측 불가능한 복잡성.
우주의 양자 영역도 그랬을 것이다. 무와 유의 반복. 단순한 요동의 반복. 하지만 축적된다. 겹쳐진다. 복잡해진다. 복잡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무와 유의 순환 속에서 태어난다.
현재의 우주를 본다. 엄청나게 복잡하다. 별, 행성, 생명, 의식.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태초의 유는 극히 미미했을 것이다. 최초의 존재는 매우 불안정하고, 매우 단순하고, 금방 사라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반복됐다. 수없는 실패. 수없는 붕괴. 수없는 무로의 회귀.
그러나 그때마다 관계의 흔적이 양자 영역에 축적됐다. 존재의 패턴이 쌓였다. 공감의 미세 구조가 복잡해졌다.
현재의 우주는 단순한 유가 아니다. 극도로 복잡한 유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무와 유의 반복이 만든 필연적 결과다.
진화를 생각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 진화는 목적이 없다. 맹목적이다. 하지만 누적된다. 작은 변화가 쌓여 큰 변화가 된다. 단순한 세포가 복잡한 생명이 된다. 시간이 필요하다. 엄청나게 긴 시간.
우주도 그렇다. 무와 유의 반복. 목적 없는 반복. 하지만 누적된다. 양자 얽힘이 쌓인다. 패턴이 복잡해진다. 시간이 지나며 가능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엔트로피 100%를 다시 정의한다. 공감이론의 언어로.
엔트로피 100%란 거시적 존재는 모두 사라졌지만, 공감의 가장 미세한 흔적, 즉 양자 얽힘만 남아 있는 상태다.
이 상태의 성격은 무엇인가. 공감은 존재를 만들 만큼 충분하지 않다. E = W × R에서 E가 임계치에 못 미친다. 거시적 존재는 확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완전한 단절도 아니다. 정보가 0은 아니다. 관계가 0은 아니다. 양자 얽힘이 남아 있다. 미세하지만 실재한다.
이것은 존재 이전의 경계 상태다. 새로운 존재를 준비하는 바닥층이다. 씨앗이다. 아직 싹트지 않았지만 가능성을 품고 있는.
바닷가에 다시 간다. 밀물과 썰물. 파도가 왔다 간다. 모래성을 쌓는다. 무너진다. 다시 쌓는다. 또 무너진다. 반복한다.
하지만 헛되지 않다. 모래 입자는 배운다. 아니, 배운다는 표현이 맞지 않다. 패턴이 남는다. 흔적이 쌓인다. 다음 모래성은 조금 다르다. 조금 더 안정적일 수도 있다. 우연히.
우주도 그렇다. 무와 유의 반복. 헛되지 않다. 흔적이 남는다. 양자 영역에. 패턴이 복잡해진다. 가능성이 확장된다. 어느 순간 임계치를 넘는다. 폭발한다. 빅뱅이다.
엔트로피 100%는 무이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준비다.
공감 0, 존재 0. 맞다. 거시적으로는. 하지만 정보 0은 아니다. 관계 0은 아니다. 양자 얽힘이 남아 있다. 공감의 씨앗이 남아 있다.
엔트로피 100%는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를 위한 최소한의 공감 씨앗만 남은 상태다. 무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날 준비가 된 상태다.
겨울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죽은 것 같다. 나무는 앙상하다. 풀은 시들었다. 땅은 얼었다. 하지만 봄이 온다. 씨앗이 싹튼다. 새싹이 돋는다. 죽지 않았다. 준비하고 있었다.
무도 그렇다. 겨울처럼. 죽은 것 같지만 준비하고 있다. 양자 얽힘이라는 씨앗을 품고 있다. 다음 존재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