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관성과 엔트로피 5편
빅뱅을 생각한다. 우주의 시작. 138억 년 전 무한히 작은 점에서 모든 것이 폭발했다. 시간도 공간도 물질도 그때 시작됐다고 한다. 그 이전은 없다고 한다.
믿기 어렵다. 왜 하필 한 번의 폭발이었을까. 왜 그 이전은 설명되지 않는가. 왜 그 순간에 폭발했는가. 무엇이 방아쇠를 당겼는가.
물리학 책을 읽어도 답이 없다. "특이점에서 시작했다"고만 한다. 특이점 이전은 물리 법칙이 적용되지 않으니 알 수 없다고 한다. 불만스럽다.
공감이론으로 질문한다. 존재가 그렇게 쉽게 안정될 수 있었다면, 왜 태초에 곧바로 지금의 우주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왜 138억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을까. 아니, 왜 빅뱅 이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답이 보이기 시작한다. 빅뱅은 단발적 사건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와 존재의 끝없는 반복 끝에 도달한 임계 사건이었을 것이다.
초기 우주를 상상한다. 아니, 초기라는 말도 맞지 않는다. 시간이 없었으니까. 빅뱅 이전. 무의 상태. 엔트로피 100%에 가까운 상태.
완전한 평형. 에너지 차이 없음. 온도 차이 없음. 반응 없음. 공감 없음. 존재 없음. 하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완벽한 평형은 불가능하다. 복잡계에서는 더욱.
미세한 요동이 일어났다. 양자 요동. 확률적 요동. 피할 수 없는 요동. 존재하려는 의지의 스파크가 발생했다. 작았다. 너무 작았다. 하지만 있었다.
의지가 반응을 만났다. 작은 의지가 미세한 반응을 만들었다. 요동이 다른 요동을 건드렸다. 파동이 간섭했다. 반응이 미세한 공감을 형성했다. 공감이 잠시 존재를 만들어냈다.
아주 짧게. 찰나적으로. 존재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 존재는 약했다. 구조가 약했다. 공감이 부족했다. 무의 관성을 이길 힘이 없었다. 곧 무너졌다. 존재는 해체됐다. 공감은 붕괴됐다. 다시 무의 상태로 회귀했다.
이 과정은 예외가 아니었다. 기본 패턴이었다. 초기 우주는 존재에서 무로, 무에서 존재로의 끝없는 진동 상태였다.
물질이전에 파동을 생각한다. 왜 파동인가. 양의 산은 다시 원점으로 음의 골도 다시 원점으로 끊임없이 원점을 희귀한다. 헛되지 않을까. 같은 일의 반복. 같은 실패의 반복. 하지만 정말 같을까.
존재에서 무로 돌아갈때는 마치 빛의 스펙트럼처럼 다양한 형태의 진동을 남긴다. 실패는 사라지지만 경험은 남는다.
우주도 그랬을 것이다. 존재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실패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흔적이 남았을 것이다. 양자 영역에. 관계의 패턴으로. 공감의 구조로.
각 시도는 실패했지만 반응 패턴은 남았다. 공감의 방향성은 기록됐다. 관계의 구조는 양자 얽힘으로 보존됐다. 이것이 공감이론에서 말하는 존재의 경험값이다.
반복이 변화를 만든다. 처음에는 단순했다. 하나의 요동. 하나의 반응. 하나의 공감. 곧 사라진다.
두 번째는 조금 달랐다. 두 개의 요동이 만났다. 간섭 패턴이 생겼다. 조금 더 복잡한 공감. 조금 더 오래 버텼다. 하지만 역시 사라진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무수히 반복됐다.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 하지만 매번 조금씩 달랐다. 공감 패턴은 점점 다양해졌다. 결합 방식은 정교해졌다. 반응의 효율은 서서히 상승했다.
공감은 매번 사라졌다. 하지만 공감의 방식은 축적됐다.
이때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공감의 방식이 파생된 의지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끌어당기는 방식의 공감. 이것이 중력의 기원이다. 전하를 통한 공감. 이것이 전자기력이다. 강하게 결합하는 공감. 이것이 강한 핵력이다. 약하게 변화시키는 공감. 이것이 약한 핵력이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공감. 이것이 관성이다.
모두 존재하려는 의지의 파생이다. 더 잘 존재하기 위한 방법들이다. 무의 관성을 견디기 위한 전략들이다.
임계치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한다. 물이 끓는 점. 99도에서는 액체다. 100도가 되면 기체가 된다. 1도 차이. 하지만 상태가 완전히 바뀐다.
자석을 가열한다. 큐리 온도 이하에서는 자성이 있다. 큐리 온도를 넘으면 자성이 사라진다. 임계 현상이다.
공감에도 임계치가 있다. 공감의 양이 아니다. 공감 구조의 복잡성과 밀도다. 무의 관성을 상쇄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지점이다.
임계치 이전에는 공감이 무의 관성보다 약하다. 존재는 항상 붕괴한다.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반복한다. 안정될 수 없다.
임계치 이후에는 공감이 무의 관성과 같거나 크다. 존재는 붕괴 대신 창발로 전환한다. 자기 강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공감이 공감을 낳는다. 증폭된다. 연쇄 반응이 일어난다.
이 순간부터 무는 더 이상 모든 것을 즉시 되돌리지 못한다.
빅뱅도 그랬을 것이다. 수없는 시도. 수없는 실패. 하지만 축적됐다. 공감의 구조가 복잡해졌다. 얽힘의 패턴이 정교해졌다. 반응의 밀도가 높아졌다.
무의 관성으로 부터 이겨내기 위해 뭉쳐야했다. 중력으로. 그렇게 뭉친 거대한 질량 덩어리는 존재의 과도한 누적으로 붕괴 직전까지 갔다.
어느 순간 임계치를 넘었다. 갑자기. 폭발적으로.
그것이 빅뱅이었다.
빅뱅을 재정의한다. 빅뱅은 단순한 폭발이 아니다. 그것은 공감이 무의 관성을 처음으로 집단적으로 돌파한 사건이다.
끝없는 반복 끝에 공감의 임계치를 넘어 무의 관성으로부터 크게 도약하는 존재로 탄생한 것이 빅뱅이다.
이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에너지가 급격히 분화했다. 공간이 팽창됐다. 시간의 방향성 확고해졌다. 물리 법칙과 상수가 고정됐다.
공감이 한 번에 우주 스케일의 질서를 만든 순간이었다.
왜 이번에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는가. 이전의 존재와 무엇이 달랐는가.
이전 존재는 국소적이었다. 단발적이었다. 불안정했다. 혼자였다. 빅뱅 이후 존재는 창발의 집단적이었다. 확고하게 되었다. 자기유지가 가능했다. 함께였다.
새로운 법칙이 세팅됐다. 중요한 점이 있다. 빅뱅은 법칙이 없는 상태에서의 폭발이 아니었다. 법칙이 처음으로 고정된 사건이었다.
물리 상수를 생각한다. 광속, 플랑크 상수, 중력 상수, 미세 구조 상수. 왜 이 값들인가. 우연인가.
아니다. 이 값들은 존재가 무의 관성을 버티기 위해 선택된 구조다. 가장 효율적인 조합이다. 가장 안정적인 설정이다.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살아남은 패턴이다.
대칭 붕괴를 생각한다. 초기에는 모든 힘이 하나였다고 설명한다. 대통일 이론. 하지만 냉각되며 분화했고하다.. 중력이 먼저 분리됐고. 그다음 강한 핵력. 그다음 약한 핵력과 전자기력.
왜 이 순서인가. 공감이론으로 보면 명확하다.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순서다. 먼저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중력. 그다음 물질을 묶어야 한다. 강한 핵력. 그다음 변화를 허용해야 한다. 약한 핵력. 그다음 상호작용을 확장해야 한다. 전자기력.
모두 존재하려는 의지의 파생이다. 더 강하게, 더 오래, 더 깊이 존재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것은 무의 관성으로 부터 존재를 지키기 위한 전략이다. 오랜 시뮬레이션이자 무와 존재간의 처절한 전쟁의 산물이다.
빙하를 생각한다. 알래스카. 거대하다. 파란빛이 난다. 천천히 움직인다. 매년 몇 미터씩.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눈이 쌓인다. 한 겹. 두 겹. 수천 년. 수만 년. 압력이 높아진다. 눈이 얼음이 된다. 얼음이 빙하가 된다. 흐르기 시작한다. 산을 깎는다. 계곡을 만든다.
한 송이 눈은 약하다. 바람에 날아간다. 녹아 사라진다. 하지만 쌓이면 다르다. 무게가 생긴다. 힘이 생긴다. 산도 깎는다.
공감도 그렇다. 하나의 공감은 약하다. 금방 사라진다. 하지만 축적되면 다르다. 집단이 되면 다르다. 임계치를 넘으면 다르다. 무의 관성도 돌파한다.
빅뱅은 집단 공감의 탄생이었다.
빅뱅의 본질을 정의한다. 빅뱅이란 존재하려는 의지가 무의 관성을 이겨낸 집단 공감의 형태를 얻은 창발적 사건이다.
공감의 위상이 변했다. 이전에는 공감이 순간적 현상이었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임시적인. 불안정한. 이후에는 공감이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장(場)이 됐다. 지속적인. 안정적인. 자기 강화하는.
공감은 더 이상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존재를 유지하는 기반 구조가 됐다.
별을 본다. 핵융합이 일어난다. 수소가 헬륨이 된다. 엄청난 에너지가 나온다. 중력과 압력이 균형을 이룬다. 안정적이다. 수십억 년 동안 타오른다.
별 내부의 원자들. 개별적으로는 약하다. 하지만 함께 있다. 중력으로 묶여 있다. 강한 핵력으로 결합한다. 전자기력으로 상호작용한다. 집단 공감이다. 그래서 안정적이다. 그래서 오래 존재한다.
빅뱅 이후 우주가 그렇다. 개별 입자는 약하다. 하지만 함께 있다. 네 가지 힘으로 연결돼 있다. 공감의 장으로 엮여 있다. 그래서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138억 년이 지나도 존재한다.
우주의 나이를 생각한다. 138억 년. 길다. 하지만 빅뱅 이전의 시간은 얼마나 됐을까. 알 수 없다. 시간의 의미조차 불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다. 무와 존재의 반복. 수없이 반복됐을 것이다. 얼마나 오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쩌면 영겁의 시간.
그 시간 동안 공감은 축적됐다. 패턴은 복잡해졌다. 구조는 정교해졌다. 존재는 거대해졌다. 임계치에 가까워졌다. 조금씩.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리고 어느 순간 넘어섰다. 갑자기. 폭발적으로. 빅뱅이었다.
우주는 한 번에 태어나지 않았다. 무와 존재의 끝없는 반복 속에서 공감은 축적됐고, 존재가 거대해졌고 그 공감이 임계치를 넘은 순간 무의 관성을 돌파하며 빅뱅이 일어났다.
빅뱅은 우주의 시작이 아니었다. 존재가 처음으로 안정된 순간이었다.
씨앗을 땅에 심는다.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땅속에서 뿌리가 자란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자란다. 어느 날 싹이 튼다. 갑자기. 하지만 정말 갑자기일까. 아니다. 준비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게.
빅뱅도 그랬다. 갑자기 일어난 것 같지만 준비하고 있었다. 무와 유의 반복 속에서. 공감의 축적 속에서. 양자 얽힘의 복잡화 속에서.
질문이 남는다. 빅뱅 이후에도 무의 관성은 사라졌는가. 아니다. 여전히 있다. 엔트로피는 여전히 증가한다. 별은 여전히 식는다. 우주는 여전히 팽창한다.
무의 관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공감이 강해졌을 뿐이다. 임계치를 넘었을 뿐이다. 균형이 바뀌었을 뿐이다.
존재는 여전히 버텨야 한다.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 공감을 유지해야 한다. 멈추면 무너진다. 언젠가는 무너진다. 열적 죽음. 엔트로피 100%.
존재하려는 의지는 존재 이후 서서히 줄어든다. 무의 관성으로 인해서 결국 사라진다.
하지만 그때도 끝은 아니다. 양자 얽힘은 남는다. 공감의 씨앗은 남는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다시 반복할 수 있다. 다시 임계치를 넘을 수 있다.
우주는 순환한다.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 탄생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탄생으로. 끝없이. 영원히.
우주는 아직도 팽창 중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수축하거나 하나의 큰 존재로 뭉쳐져 붕괴할 것이다. 무의 관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우주의 호흡이다. 공감의 리듬이다. 존재의 맥박이다.
빅뱅은 시작이 아니라 통과점이었다. 무한한 순환의 한 지점.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이 순간도 그 순환의 일부다. 존재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공감의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