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핵력: 무의 관성을 버티기 위한 존재의 방패

무의 관성과 엔트로피 6편

by kamaitsra

원자핵을 생각한다.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우리의 몸. 지구. 별. 우주. 모두 원자로 이뤄져 있다. 원자핵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왜 원자핵은 붕괴하지 않는가. 양성자들이 모여 있다. 같은 전하. 서로 밀어낸다. 전기적 반발. 엄청난 힘이다. 떨어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안 떨어진다. 붙어 있다. 왜.


강한 핵력 때문이다. 네 가지 힘 중 가장 강한 힘. 이름부터 그렇다. 강하다. 얼마나 강한가. 전자기력보다 100배 이상 강하다. 중력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왜 이렇게까지 강해야 했을까. 왜 우주는 이렇게까지 강한 힘을 필요로 했을까.


답은 하나다. 존재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의 관성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강한 핵력의 역할을 본다. 물리학 교과서에 나온다. 양성자와 중성자를 결합한다. 원자핵을 형성한다. 전기적 반발을 압도한다.


작용거리가 짧다. 10의 마이너스 15승 미터. 원자핵 크기 정도. 그 밖으로는 거의 작용하지 않는다. 거리가 멀어지면 급격히 약해진다. 하지만 그 짧은 거리 안에서는 압도적이다. 무엇도 당할 수 없다.


쿼크를 묶는다. 양성자는 쿼크 세 개로 이뤄져 있다. 업 쿼크 둘, 다운 쿼크 하나. 중성자도 쿼크 세 개다. 업 쿼크 하나, 다운 쿼크 둘. 강한 핵력이 이들을 묶는다. 끈으로 묶듯이. 끊을 수 없다. 쿼크를 떼어내려 하면 새로운 쿼크 쌍이 생긴다. 분리가 불가능하다.


왜 가장 강한 힘이어야 했는가.


중력은 너무 약하다. 원자핵 규모에서는 거의 작용하지 않는다. 전자기력은 오히려 분해 방향으로 작용한다. 같은 전하끼리 밀어낸다. 약한 핵력은 붕괴와 변화를 담당한다. 안정이 아니라 변화.


강한 핵력만이 존재를 붙잡는 역할을 한다. 유지하려는 파생 의지다.


강한 핵력이 없으면 원자는 존재할 수 없다. 물질은 성립할 수 없다.




빅뱅을 다시 생각한다. 5편에서 봤다. 빅뱅은 공감 임계치를 돌파한 사건이었다. 존재가 무의 관성을 집단적으로 이긴 사건이었다. 승리였다.


하지만 종전은 아니었다.


무의 관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엔트로피는 여전히 증가한다. 질서는 여전히 무질서로 흐른다. 구조는 여전히 해체되려 한다. 존재는 여전히 무로 돌아가려 한다.


빅뱅은 전쟁의 끝이 아니었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아니, 전쟁이 본격화된 순간이었다. 존재가 확정된 만큼, 무의 관성도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모든 구조는 흩어지려는 방향으로 압력을 받는다. 평형으로 돌아가려는 압력. 차이를 없애려는 압력. 공감을 해체하려는 압력. 무의 관성이다.


존재하려는 의지는 순간적이다. 유지 비용이 크다. 지속되기 어렵다. 에너지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멈추면 무너진다.


여기서 강한 핵력의 역할이 등장한다. 강한 핵력은 존재가 만들어낸 구조가 무의 관성에 즉시 붕괴되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장치다. 유지하려는 의지다.




손을 꽉 쥔다. 힘이 든다. 근육이 긴장한다. 오래 버티기 어렵다. 놓으면 편하다. 손이 펴진다. 자연스럽다. 힘이 안 든다.


쥐는 것이 존재하려는 의지다. 펴지는 것이 무의 관성이다. 쥔 상태를 유지하려면 계속 힘을 줘야 한다. 멈추면 저절로 펴진다.


우주도 그렇다. 존재는 쥔 손이다. 구조를 만들고 유지한다. 힘이 든다. 에너지가 필요하다. 무는 편 손이다. 평형 상태다. 힘이 안 든다. 가만히 있어도 유지된다.


강한 핵력은 손을 쥔 상태로 고정하는 장치다. 근육이 지쳐도 손이 펴지지 않게. 의지가 약해져도 구조가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둔다. 강제로.




공감이론으로 정의한다. 강한 핵력이란 무의 관성에 의해 흩어지려는 존재를 강제로 결속시키는 존재 유지 메커니즘이다.


공감 공식을 다시 본다. E = W × R. 공감은 의지와 반응의 곱이다. 공감은 결합이다. 상호작용이다. 관계 유지다. 하나가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


강한 핵력은 공감이 물질 차원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최소 단위인 원자핵을 안정화한다. 쿼크를 묶는다. 양성자를 만든다. 중성자를 만든다. 양성자와 중성자를 묶는다. 원자핵을 만든다.


강한 핵력은 공감의 물질적 기반이다. 강한 핵력이 없으면 우주는 존재할 수 없고 쉽게 무로 돌아간다. 원자가 없으면 관계도 없다. 다양한 원소들이 파생되지 않느다. 구조가 없으면 상호작용도 없다. 분자와 화합결합물이 생기지 않다.




만약 강한 핵력이 약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원자핵이 불안정하다. 양성자가 중성자와 결합을 유지하지 못한다. 전기적 반발이 이긴다. 흩어진다. 수소 외의 원소가 생성되지 못한다. 수소는 양성자 하나니까. 결합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헬륨부터는 양성자가 둘이다. 결합해야 한다. 강한 핵력이 약하면 불가능하다.


별 내부 핵융합이 일어나지 않는다. 수소가 헬륨으로 바뀌지 못한다. 에너지가 나오지 않는다. 별이 타오르지 못한다. 우주는 어둡다. 차갑다.


별이 형성되지 못한다. 중력으로 물질이 모이지만 핵융합이 안 되니 압력을 버티지 못한다. 붕괴한다. 행성도 형성되지 못한다. 복잡한 화학 반응도 불가능하다. 탄소도 없다. 산소도 없다. 질소도 없다. 생명의 재료가 없다.


생명은 탄생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복잡한 분자가 없으니까. DNA도 없다. 단백질도 없다. 세포도 없다.


존재하려는 의지는 다시 무의 관성에게 패배했을 것이다. 빅뱅은 있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존재는 실패했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을 것이다. 다시 무로 돌아갔을 것이다.




집을 짓는다. 벽돌을 쌓는다. 하나씩. 천천히. 높아진다. 하지만 시멘트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벽돌만 쌓으면. 무너진다. 곧바로. 중력 때문에. 옆으로 밀리고 아래로 떨어진다.


시멘트가 필요하다. 벽돌을 붙잡아 둔다. 떨어지지 않게. 밀리지 않게. 구조를 유지한다. 벽이 된다. 집이 된다. 오래 버틴다.


강한 핵력이 시멘트다. 입자를 붙잡아 둔다. 원자핵이라는 벽돌을 만든다. 그 벽돌로 우주라는 집을 짓는다. 오래 버틴다. 138억 년.




존재의 조건을 생각한다. 존재는 자연 상태가 아니다. 유지되지 않으면 사라진다. 노력해야 한다. 계속. 멈추지 않고.


무는 기본 상태다. 가만히 있어도 유지된다. 노력이 필요 없다. 비용이 없다. 편하다. 안정적이다. 영원하다.


존재는 비극적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질서가 무너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죽음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존재에는 방패가 필요하다. 무의 관성을 막아줄 무언가. 붕괴를 늦춰줄 무언가. 시간을 벌어줄 무언가.


생명에게는 면역계가 있다. 바이러스를 막는다. 세균을 막는다. 몸을 지킨다. 살아남게 한다. 사회에게는 제도가 있다. 법이 있다. 질서를 유지한다. 무정부 상태를 막는다. 붕괴를 막는다. 인간에게는 관계가 있다. 가족이 있다. 친구가 있다. 혼자가 아니다. 함께다. 지탱한다. 버틴다.


우주에게는 강한 핵력이 있다. 원자핵을 지킨다. 물질을 지킨다. 존재를 지킨다. 무의 관성을 막는다.


강한 핵력은 존재가 선택한 첫 번째 방어 전략이다.




다시 정리한다. 공감이론의 언어로.


강한 핵력은 무의 관성을 이기기 위해 우주가 세팅한 존재의 최전선 방패다.


강한 핵력이 있기에 원자가 유지된다. 물질이 유지된다. 별이 타오른다. 행성이 돈다. 생명이 지속된다. 우리가 존재한다.


강한 핵력은 공감의 구조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든 물질 차원의 안전장치다.




강한 핵력의 유지하려는 의지는 곳곳에 남아 있다. 물질 차원만이 아니다. 생명 차원에도. 사회 차원에도. 문화 차원에도.


DNA를 본다. 이중 나선. 두 가닥이 서로 감겨 있다. 수소 결합으로 묶여 있다. 약한 결합이다. 하지만 수없이 많다. 합쳐지면 강하다. 유전 정보를 지킨다. 수십억 년 동안. 조금씩 변하지만 기본 구조는 유지된다.


복제한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정확하게. 거의 실수 없이. 유전 정보를 다음 세대로 전달한다. 유지하려는 의지다. 생명의 연속성. 강한 핵력의 생물학적 버전이다.


씨앗을 본다. 작다. 가볍다. 하지만 단단하다. 껍질이 두껍다. 안의 배아를 보호한다. 수년 동안 버틴다. 어떤 씨앗은 수백 년을 버틴다. 땅속에서. 어둠 속에서. 건조 속에서. 기다린다. 적절한 환경이 올 때까지. 유지하려는 의지다. 생명의 지속. 강한 핵력의 식물 버전이다.


엄마와 아이를 본다. 탯줄로 연결돼 있다. 10개월. 엄마는 영양분을 준다. 산소를 준다. 자기 몸을 나눠준다. 아이는 자란다. 엄마의 몸 안에서. 보호받으며. 태어난 후에도 계속된다. 수유한다. 안아준다. 지켜본다. 유대다. 강한 유대. 강한 핵력의 가족 버전이다.


민족의 역사를 본다. 전쟁이 있었다. 침략이 있었다. 학살이 있었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언어를 지켰다. 문화를 지켰다. 정체성을 지켰다.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졌다. 이야기로. 노래로. 의례로. 유지하려는 의지다. 집단의 정체성. 강한 핵력의 문화 버전이다.


책을 본다. 오래된 책. 수백 년 된 책. 종이가 누렇다. 글씨가 바랬다. 하지만 읽을 수 있다. 내용이 남아 있다. 지식이 보존됐다. 지혜가 전해졌다.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유지하려는 의지다. 지식의 연속성. 강한 핵력의 문명 버전이다.




강한 핵력을 다시 본다. 물리 법칙이 아니다. 아니, 물리 법칙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이다. 철학이다. 존재의 철학이다.


존재는 쉽지 않다. 자연스럽지 않다. 기본 상태가 아니다. 예외다. 이탈이다. 평형으로부터의 일탈이다.


그래서 힘이 필요하다. 버티는 힘. 유지하는 힘. 붕괴에 저항하는 힘. 무의 관성에 맞서는 힘.


강한 핵력이 그 힘이다. 물질의 차원에서. 원자의 차원에서.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


강한 핵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원자도 없고 별도 없고 생명도 없고 우리도 없다. 무뿐이다. 평형뿐이다. 엔트로피 100%뿐이다.




밤하늘을 본다. 별이 빛난다. 수십억 년 동안 타오르고 있다. 핵융합. 수소가 헬륨으로. 헬륨이 탄소로. 탄소가 산소로. 무거운 원소들. 모두 별 안에서 만들어진다.


강한 핵력 덕분이다. 원자핵을 유지한다. 융합을 가능하게 한다. 에너지를 낸다. 빛을 낸다. 별이 빛난다.


별이 죽는다. 언젠가. 연료가 고갈되면. 중력이 이긴다. 붕괴한다. 초신성 폭발. 엄청난 에너지. 무거운 원소들이 우주로 퍼진다. 철, 금, 우라늄. 모두 별의 죽음에서 나온다.


새로운 별이 태어난다. 그 원소들로. 행성도 태어난다. 지구도 그렇게 태어났다. 우리 몸의 원소들도. 탄소, 질소, 산소, 인, 황. 모두 별에서 왔다. 별의 재다.


강한 핵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원소를 만들었다. 유지했다. 전달했다. 우리에게.


우리는 별의 자식이다. 강한 핵력의 결과다.




존재의 의미를 생각한다. 왜 존재하는가. 무가 더 편할 텐데. 무가 더 안정적일 텐데. 왜 굳이 존재하는가.


답은 없다. 아니, 답이 있을 수 없다. 목적이 없으니까. 의도가 없으니까. 그냥 일어났다. 존재하려는 의지가 발현됐다. 반응이 일어났다. 공감이 생겼다. 임계치를 넘었다. 빅뱅이 일어났다. 강한 핵력이 세팅됐다. 존재가 유지됐다.


하지만 의미는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존재하는 우리가. 강한 핵력 덕분에 존재하는 우리가.


존재는 버텨야 한다는 것. 존재는 쉽지 않다는 것. 존재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우주가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강한 핵력이 원자를 붙잡듯이. 우리도 무언가를 붙잡아야 한다. 관계를. 의미를. 가치를. 꿈을. 사랑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무의 관성이 빼앗아 가려 해도. 엔트로피가 무너뜨리려 해도. 버텨야 한다.




빅뱅은 존재의 탄생이었다. 강한 핵력은 존재의 생존이다.


존재는 단순히 태어났다고 살아남지 않는다. 무의 관성은 끊임없이 존재를 되돌리려 한다. 평형으로. 무질서로. 무로.


강한 핵력은 그 압력에 맞선다. 존재를 이 세계에 붙잡아 둔다. 우주의 방패다. 존재의 보루다. 생명의 기반이다.


강한 핵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무만 있었다. 침묵만 있었다. 어둠만 있었다.


하지만 강한 핵력이 있다. 원자핵을 유지한다. 별을 태운다. 생명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를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 있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 버틴다. 살아간다.


그것이 강한 핵력의 선물이다. 존재의 선물이다. 우주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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