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관성와 죽음, 존재의 소멸: 공감 순환 시스템

무의 관성과 엔트로피 7편

by kamaitsra

왜 모든 존재는 결국 끝나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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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철학적인 질문은 오랜 시간 철학자의 머리를 아프게 했을 것이다. 왜 생명은 반드시 죽는가. 왜 사랑은 끝나는가. 왜 문명은 쇠퇴하는가. 왜 별도 꺼지는가. 왜 우주조차 언젠가 열적 죽음을 맞는다고 하는가.


답을 찾으려 했다. 책을 읽었다. 철학자들의 말을 들었다. 생물학자들의 설명을 봤다. 대부분 비슷했다. 실패라고 했다. 약함이라고 했다. 비극이라고 했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실패라면 왜 모든 것이 실패하는가. 약함이라면 왜 가장 강한 것도 무너지는가. 비극이라면 왜 비극이 규칙처럼 반복되는가.


다른 관점이 필요했다. 공감이론으로 다시 봤다. 죽음은 실패가 아니었다. 무의 관성으로 인해 다시 무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구조였다. 순환이었다. 비극이 아니었다.




무의 관성과 존재 의지를 다시 본다. 처음부터 비대칭이었다.


무의 관성은 완전한 평형이다. 유지 비용이 0이다. 가만히 있어도 지속된다. 끝없이 안정적이다.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는다. 변화하지 않는다. 영원하다.


존재하려는 의지는 다르다. 에너지가 필요하다. 공감 유지 비용이 필요하다. 시간과 함께 소진된다. 본질적으로 유한하다. 멈추면 무너진다. 계속 노력해야 한다. 지친다.


존재는 버텨야 한다. 그러나 무의 관성은 그냥 존재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무의 관성은 끝없이 안정적이고, 존재하려는 의지는 유지 비용이 크다. 시간이 흐르면 의지는 약해진다. 결국 무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소멸한다.


이 비대칭은 예외가 아니다. 자연의 기본 구조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반드시 끝을 맞이한다. 생명도. 관계도. 문명도. 별도.




죽음을 다시 생각한다. 생명의 죽음.


생명은 끊임없이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구조다. 면역계가 작동한다. 대사가 일어난다. 세포가 복구된다. 모두 에너지를 소모한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ATP를 만든다. 미토콘드리아가 쉬지 않고 작동한다. 포도당을 태운다. 산소를 소비한다. 끊임없이. 멈추면 죽는다.


어느 순간 생명 의지가 소진된다. 더 이상 에너지를 만들 수 없다. 세포가 복구되지 않는다. 면역계가 약해진다. 무의 관성이 우세해진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질서가 무너진다. 죽음이다.


죽음이란 생명 의지가 무의 관성에 소멸되는 순간이다.


패배가 아니다. 구조다. 생명이 약해서가 아니다. 무의 관성이 기본 상태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예외였다. 일탈이었다. 평형으로부터의 벗어남이었다.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랑과 관계의 끝을 본다.


사랑은 감정 공감의 유지 구조다. 반응이 필요하다. 조율이 필요하다. 서로를 향한 의지가 필요하다. 관심이 필요하다.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쉽다. 감정이 강하다. 공감이 자연스럽다. 반응이 즉각적이다. 기쁘다. 설렌다. 에너지가 넘친다.


시간이 흐른다. 감정이 약해진다. 공감 유지 비용이 증가한다. 반응이 느려진다. 조율이 어려워진다. 오해가 생긴다. 갈등이 생긴다. 지친다.


어느 순간 감정 의지가 무의 관성에 패배한다. 더 이상 노력할 힘이 없다. 공감이 붕괴한다. 관계가 끝난다.


사랑의 끝은 배신이 아니다. 공감 유지 의지의 소진이다.


슬프다. 하지만 비난할 일이 아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구조다. 유지 비용이 너무 컸다. 의지가 소진됐다. 무의 관성이 이겼다. 자연스럽다.




문명과 사회의 쇠퇴를 본다.


문명은 집단 공감 시스템이다. 제도가 있다. 규범이 있다. 신뢰가 있다. 모두 유지가 필요하다. 법을 집행해야 한다. 규범을 가르쳐야 한다. 신뢰를 쌓아야 한다. 에너지가 든다. 비용이 든다.


처음에는 강하다. 공동의 목표가 있다. 위기가 있다. 결속이 강하다. 공감이 높다. 문명이 번영한다.


시간이 지난다. 목표가 희미해진다. 위기가 사라진다. 결속이 약해진다. 공감이 경직된다. 비용만 증가한다. 제도가 형식화된다. 규범이 억압이 된다. 신뢰가 무너진다.


내부 반응이 감소한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 개인주의가 증가한다. 분열이 일어난다. 사회적 공감이 붕괴한다. 문명이 쇠퇴한다.


문명의 붕괴는 존재하려는 집단 의지가 무의 관성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결과다.


로마 제국을 생각한다. 천 년을 지속했다. 강했다. 하지만 무너졌다. 왜. 야만족의 침입? 그것은 결과다. 원인은 내부에 있었다. 로마는 너무 거대했다. 과했다. 공감 블랙홀이다. 공감이 무너졌다. 시민 의식이 약해졌다. 제도가 부패했다. 신뢰가 사라졌다. 존재하려는 집단 의지가 소진됐다. 무의 관성이 이겼다.




하지만 소멸은 패배가 아니다. 무로의 회귀다.


소멸은 사라짐이 아니다. 무로 돌아감이다. 무는 비존재가 아니다. 잠복 상태다.


무는 의지가 없는 상태다. 하지만 완전한 공백은 아니다. 양자 요동이 있다. 관계의 흔적이 있다. 공감의 씨앗이 남아 있다.


소멸은 의지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의지가 잠복한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나무를 본다. 가을이 온다. 잎이 떨어진다. 앙상해진다. 죽은 것 같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겨울을 난다. 봄이 온다. 새싹이 돈다. 꽃이 핀다. 다시 살아난다.


죽지 않았다. 잠복했다. 에너지를 아꼈다. 무의 관성을 견뎠다. 때를 기다렸다. 다시 깨어났다.




무로 돌아가면 흔적이 남는다. 양자의 세계에.


사랑의 끝을 다시 본다. 관계는 끝났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아픔이 남았다. 추억이 남았다. 성장이 남았다.


그 사람과의 시간. 함께 웃었던 순간. 함께 울었던 순간. 함께 꿈꿨던 순간. 사라지지 않았다. 나를 만들었다. 지금의 나는 그 경험 없이는 없다.


아프다. 하지만 헛되지 않았다. 배웠다. 사랑이 무엇인지. 관계가 무엇인지. 나 자신이 누구인지. 흔적이 남았다. 공감의 씨앗이 남았다.


문명과 사회의 끝도 그렇다. 로마는 무너졌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역사가 남았다. 유물이 남았다. 법 체계가 남았다. 언어가 남았다. 건축이 남았다.


후대는 배웠다. 로마의 실수를. 로마의 성공을. 로마의 지혜를. 더 나은 문명을 만들었다. 로마의 흔적 위에. 공감의 씨앗 위에.


반성이 남았다. 성숙이 남았다. 다음 문명은 조금 더 나아졌다. 완벽하지 않지만. 조금씩 나아졌다.




공감 순환 시스템을 본다. 존재와 무는 적이 아니다.


순환이다. 무에서 존재 의지가 발현된다. 반응이 일어난다. 공감이 생긴다. 존재가 확정된다. 존재가 포화된다. 의지가 소진된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무의 관성이 복귀한다. 다시 무로 돌아간다. 다시 시작한다.


왜 순환이어야 하는가.


존재가 영원하면 어떻게 될까. 경직된다. 변하지 않는다. 다양성이 소멸된다.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공감이 붕괴한다. 의미가 사라진다.


소멸이 있기에 리셋이 가능하다. 재조합이 가능하다. 새로운 가능성이 등장한다. 진화가 가능하다.


죽음은 존재의 실패가 아니다. 존재가 다시 가능해지기 위한 조건이다.




컴퓨터를 재부팅한다. 느려졌을 때. 오류가 생겼을 때. 꺼졌다 켠다. 메모리가 정리된다. 프로세스가 초기화된다. 다시 빨라진다. 다시 작동한다.


죽음도 그렇다. 재부팅이다. 리셋이다. 메모리 정리다. 프로세스 초기화다. 새로 시작하기 위한 준비다.


우주도 그렇다. 빅뱅이 있었다. 팽창하고 있다. 언젠가 열적 죽음을 맞을 것이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양자 요동이 남는다. 공감의 씨앗이 남는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다시 빅뱅이 일어날 수 있다. 순환한다.




인간의 삶에 적용한다. 개인의 삶.


번아웃이 온다. 일을 열심히 했다. 너무 열심히 했다. 지쳤다. 더 이상 못하겠다. 의욕이 없다. 의미가 없다. 번아웃이다.


이것은 의지가 무의 관성에 눌린 신호다. 에너지가 고갈됐다. 공감이 소진됐다. 쉬어야 한다는 신호다.


상실이 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직장을 잃었다. 꿈을 잃었다. 아프다. 슬프다. 무너진다.


이것도 무의 관성이다. 공감 구조가 붕괴됐다. 존재 의지가 약해졌다. 무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관계의 끝이 온다. 친구와 멀어졌다. 연인과 헤어졌다. 가족과 갈등이 생겼다. 외롭다. 고립됐다.


이것도 공감 순환이다. 유지 비용이 너무 컸다. 반응이 줄어들었다. 무의 관성이 이겼다.


방향 상실이 온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의미를 못 찾겠다. 헤맨다.


이것도 의지의 소진이다. 목표가 희미해졌다. 동력이 떨어졌다. 무의 관성에 눌렸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억지로 버티면 안 된다. 더 무너진다. 실패로 규정하면 안 된다. 더 아프다. 순환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잘못이 아니다. 약함이 아니다. 구조다.


무로 내려갈 줄 아는 존재만이 다시 강하게 올라올 수 있다.


쉬어야 한다. 무의 상태로 내려가야 한다.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 의지를 회복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려야 한다.


겨울이 필요하다. 씨앗처럼 땅속에 있어야 한다. 어둠 속에 있어야 한다. 잠복해야 한다. 준비해야 한다.


봄이 온다. 언젠가. 반드시. 새싹이 돈다. 다시 시작한다. 더 강해진다. 더 성숙해진다. 흔적을 품고. 경험을 품고.




존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주는 단 한 번의 실험이 아니다. 인간의 삶 또한 그렇다.


끝났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공감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음 공감을 준비하는 무의 단계일 뿐이다.


죽음 이후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짐작할 수 있다. 무로 돌아간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흔적이 남는다. 양자 영역에. 관계의 패턴으로. 공감의 씨앗으로.


언젠가 다시 시작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우주가 순환하듯. 계절이 순환하듯. 삶도 순환한다.




순환 속에서 우주는 배운다. 조금씩. 느리지만 확실하게. 더 복잡해진다. 더 정교해진다. 더 아름다워진다.


처음 우주에는 수소와 헬륨만 있었다. 단순했다. 지금은 118가지 원소가 있다. 복잡하다. 별이 만들었다. 죽음을 통해. 초신성 폭발을 통해. 순환을 통해.


처음 생명은 단순했다. 단세포였다. 지금은 복잡하다. 수백만 종이 있다. 인간이 있다. 의식이 있다. 진화를 통해. 죽음을 통해. 순환을 통해.


죽음이 없었다면 진화도 없었다. 새로운 것도 없었다. 우리도 없었다.


죽음은 선물이다. 무의 관성은 적이 아니다. 순환의 파트너다.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다. 의미를 만드는 조건이다.


그래서 두렵지 않다. 끝이 와도. 순환의 일부니까. 다시 시작할 것이니까. 흔적이 남을 것이니까.


지금 이 순간을 산다. 존재한다. 공감한다. 버틴다. 언젠가 무로 돌아갈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은 존재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엔트로피는 존재를 파괴하려는 두 번째 의지가 아니라, 무의 관성이 드러난 자연의 성질이다. 존재하려는 의지는 이 관성을 순간적으로 돌파하며 공감을 만들고, 공감은 언젠가 포화되어 다시 무로 돌아간다. 이 끝없는 순환이 공감 순환 시스템이며, 우주는 이 순환 속에서 존재와 무를 오가며 스스로를 진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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