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 동위원소의 반감기: 무의 관성이 드러나는 시간

무의 관성과 엔트로피 8편

by kamaitsra

반감기를 처음 알았을 때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화학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그래프를 그렸다. 완만하게 내려가는 곡선.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 항상 일정하다고 했다.


이상했다. 왜 항상 일정한가. 왜 온도를 높여도, 압력을 가해도, 화학 반응을 시켜도 변하지 않는가.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가.


"확률적 붕괴입니다." 선생님이 말했다. 각 원자가 일정한 확률로 붕괴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예측 가능한 패턴이 나타난다.


납득되지 않았다. 확률이라는 말로 설명이 끝나는가. 왜 그런 확률을 가지는가. 무엇이 그 확률을 결정하는가.


세월이 흘렀다. 공감이론을 만들면서 다시 생각했다. 반감기가 보였다. 다르게 보였다. 반감기는 우연이 아니었다. 무의 관성이 시간을 통해 드러난 흔적이었다.




방사성 원소를 본다. 탄소14를 예로 들어본다. 반감기가 5730년이다. 생물이 죽으면 탄소14가 더 이상 보충되지 않는다. 기존의 탄소14가 질소14로 붕괴한다. 5730년이 지나면 절반으로 줄어든다. 또 5730년이 지나면 또 절반으로 줄어든다.


이것으로 연대 측정을 한다. 고고학자들이 사용한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 있다. 정확하다. 신뢰할 수 있다.


방사성 원소가 뭔가. 원자핵이 불안정한 원소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비율이 적절하지 않다. 에너지가 높다. 더 안정한 상태가 존재한다. 그 상태로 가려 한다.


따로 정해져 있는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원자핵이 너무 무겁거나, 양성자와 중성자의 비율이 맞지 않으면 불안정하다. 자연스럽게 방사성이 된다.


탄소14가 붕괴되면 어떻게 되는가. 질소14가 된다. 중성자 하나가 양성자로 바뀐다. 전자 하나가 방출된다. 베타 붕괴다. 더 안정해진다. 에너지가 낮아진다. 평형에 가까워진다.




원자핵을 다시 본다. 방사성 원소의 원자핵은 이미 무의 관성에 노출된 상태다.


무의 관성은 더 낮은 에너지, 더 평형적인 상태로 가려는 성질이다. 방사성 원소는 이미 무 쪽으로 기울어진 존재다. 에너지가 높다. 불안정하다. 버티기 어렵다.


강한 핵력을 생각한다. 6편에서 봤다. 강한 핵력이 원자핵을 붙잡아 둔다. 하지만 방사성 원소는 강한 핵력이 충분하지 않다. 완전히 붙잡지 못한다. 무의 관성을 완전히 상쇄하지 못한다.


반감기는 무의 관성이 새로 시작된 시점이 아니다. 안정에 실패한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관측되는 현상이다.


손에 물건을 든다. 무겁다. 팔이 아프다. 버티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팔의 힘이 약해진다. 결국 떨어뜨린다. 중력이 이긴다.


중력이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있었다. 팔의 힘이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며 버티지 못하게 된다. 떨어진다.


방사성 원소도 그렇다. 무의 관성은 처음부터 있었다. 강한 핵력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강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무너진다. 붕괴한다.




붕괴를 본다. 능동적 사건인가. 아니다. 수동적 복귀다.


방사성 붕괴는 외부 자극이 필요 없다. 스스로 일어난다. 가만히 놔둬도 일어난다. 무엇이 붕괴를 일으키는가. 아무것도 일으키지 않는다. 버티지 못할 때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붕괴를 일으키는 의지는 없다. 존재가 유지되지 못할 때 무의 관성이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붕괴는 공격이 아니다. 버티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기본 반응이다.


눈사람을 만든다. 추운 날. 잘 만들어진다. 단단하다. 하지만 봄이 온다. 기온이 올라간다. 눈사람이 녹는다. 무엇이 눈사람을 녹이는가. 태양? 아니다. 태양은 그냥 있다. 눈사람이 얼음 상태를 유지하지 못할 뿐이다. 온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물로 돌아간다.


방사성 붕괴도 그렇다. 무엇이 붕괴시키는 것이 아니다. 원자핵이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더 안정한 상태로 돌아간다. 자연스럽게.




반감기의 수식을 본다. N(t) = N_0 e^(-λt). 시간 t가 지나면 남은 원자 수 N(t)는 초기 원자 수 N_0에 지수 감쇠 인자를 곱한 값이다. λ는 붕괴 상수다.


반감기는 무의 관성이 작동하는 평균 속도다.


무의 관성은 즉시 전부를 무로 돌리지 않는다. 시간을 매개로 작동한다. 확률적으로 작동한다. 어떤 원자는 빨리 붕괴한다. 어떤 원자는 늦게 붕괴한다. 하지만 평균을 내면 일정하다.


반감기란 무의 관성이 존재를 회수하는 시간 상수다.


양초를 켠다. 불꽃이 타오른다. 밝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양초가 녹는다. 짧아진다. 언젠가 꺼진다. 얼마나 오래 타는가. 양초의 크기에 달렸다. 재질에 달렸다. 예측 가능하다. 일정하다.


반감기도 그렇다. 원자핵의 구조에 달렸다. 얼마나 불안정한가에 달렸다. 예측 가능하다. 일정하다.




왜 반감기는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가.


온도를 높여도 변하지 않는다. 압력을 가해도 변하지 않는다. 화학 반응을 시켜도 변하지 않는다. 핵 내부 구조만이 반감기를 결정한다.


이상하다. 화학 반응은 온도에 민감하다. 속도가 크게 변한다. 하지만 방사성 붕괴는 변하지 않는다. 왜.


핵과 전자 궤도의 차이다. 화학 반응은 전자 궤도에서 일어난다.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방사성 붕괴는 핵 내부에서 일어난다. 전자 궤도와 관계없다.


엔트로피로 본다. 반감기는 외부 엔트로피가 아니라 핵 내부의 엔트로피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반감기는 존재 내부 질서가 붕괴되는 속도다.


집을 본다. 오래된 집. 천천히 무너진다. 페인트가 벗겨진다. 나무가 썩는다. 지붕이 새기 시작한다. 무엇이 무너뜨리는가. 바람? 비? 아니다. 집 자체가 유지되지 못한다. 내부 구조가 약해진다. 외부 환경은 촉매일 뿐이다.


핵도 그렇다. 무너지는 것은 내부 구조 때문이다. 외부 환경은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반감기 붕괴를 엔트로피로 본다. 항상 엔트로피 증가 방향이다.


붕괴 전을 본다. 에너지가 밀집돼 있다. 가능한 상태 수가 적다. 질서도가 높다. 불안정하다.


붕괴 후를 본다. 에너지가 분산된다. 방출된다. 가능한 상태 수가 증가한다. 질서도가 낮아진다. 안정적이다.


방사성 붕괴는 열역학 제2법칙을 미시적 차원에서 구현한 현상이다.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자발적으로. 되돌릴 수 없게.


반감기는 엔트로피 증가가 시간에 따라 정량화된 결과다.


얼음을 꺼낸다. 냉동고에서. 상온에 둔다. 녹는다. 물이 된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고체에서 액체로. 분자 운동이 자유로워진다. 가능한 상태가 많아진다.


되돌릴 수 없다. 저절로 얼음이 되지 않는다. 냉동고에 넣어야 한다. 에너지를 써야 한다.


방사성 붕괴도 그렇다. 저절로 일어난다. 되돌릴 수 없다. 질소14를 탄소14로 바꿀 수 없다. 적어도 저절로는.




왜 반감기는 지수 함수 형태인가.


붕괴 확률은 시간에 독립적이다. 현재 상태에만 의존한다. 원자가 얼마나 오래 존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붕괴할 확률만 중요하다.


무의 관성은 특정 시점을 기다리지 않는다. 항상 동일한 압력으로 작동한다. 남아 있는 존재량에 비례해 무의 관성이 작동한다. 지수 감쇠가 나타난다.


동전을 던진다. 앞면이 나올 확률은 50퍼센트다. 매번 같다. 이전에 뒷면이 나왔어도 상관없다. 다음에도 50퍼센트다.


방사성 붕괴도 그렇다. 각 원자의 붕괴 확률은 매 순간 같다. 이전에 붕괴하지 않았어도 상관없다. 다음 순간에도 같은 확률이다.


이런 과정을 시간으로 누적하면 지수 함수가 나온다. 필연적이다. 수학적으로 증명된다.




개별 원자는 예측 불가하다. 언제 붕괴할지 알 수 없다. 확률만 안다. 집단은 정확하다. 반감기가 정확히 맞는다.


왜 그런가.


엔트로피는 개별 사건이 아니라 집단 통계에서 드러나는 성질이다. 무의 관성과 엔트로피는 확률의 언어로 작동한다.


주사위를 던진다. 한 번 던지면 예측 불가하다. 1이 나올지 6이 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천 번 던지면 각 숫자가 약 166번씩 나온다. 예측 가능하다.


방사성 붕괴도 그렇다. 개별 원자는 무작위다. 하지만 수많은 원자가 모이면 통계가 나타난다. 반감기가 정확히 나타난다.


이것이 통계역학의 본질이다. 개별은 혼돈이다. 집단은 질서다. 엔트로피도 그렇다. 무의 관성도 그렇다.




반감기는 존재의 수명이 아니다.


반감기는 절반이 되는 시간이다. 끝나는 시간이 아니다. 5730년이 지나도 탄소14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절반이 남는다. 또 5730년이 지나면 또 절반이 남는다. 무한히 계속된다. 이론적으로는.


무의 관성은 존재를 단번에 제거하지 않는다. 부드럽게 되돌린다. 천천히. 확률적으로.


반감기는 무가 존재를 회수하는 가장 비폭력적인 방식이다.


향을 피운다. 연기가 올라간다. 퍼진다. 천천히 사라진다.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농도가 점점 낮아진다.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낮아진다. 하지만 완전히 0은 아니다.


방사성 붕괴도 그렇다. 천천히 사라진다.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낮아진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남아 있다. 무한히 작은 양이.




왜 모든 원소에 반감기가 있지 않은가.


안정 원소에는 반감기가 없다. 탄소12는 안정하다. 영원히 탄소12로 남는다. 붕괴하지 않는다.


왜. 강한 핵력이 무의 관성을 완전히 상쇄하기 때문이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비율이 적절하다. 에너지가 최저다. 더 낮은 상태가 없다. 갈 곳이 없다.


방사성 원소는 다르다. 강한 핵력이 충분하지 않다. 무의 관성을 완전히 상쇄하지 못한다. 부분적으로 노출돼 있다.


반감기는 무의 관성에 부분적으로 노출된 존재의 특징이다.


산꼭대기에 바위가 있다. 평평한 곳에 있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안정하다. 경사진 곳에 있으면 굴러 떨어진다. 불안정하다. 중력에 노출돼 있다.


원소도 그렇다. 안정한 곳에 있으면 붕괴하지 않는다. 불안정한 곳에 있으면 붕괴한다. 무의 관성에 노출돼 있다.




반감기를 정리한다. 공감이론의 언어로.


방사성 원소의 반감기란 무의 관성과 엔트로피가 존재를 다시 평형 상태로 되돌리는 확률적이고 시간적인 메커니즘의 정량화다.


한 줄로 말하면 반감기는 무의 관성이 존재를 회수하는 자연의 평균 속도다.




다음 질문이 떠오른다. 반감기를 늦출 수 있는가. 조건이 있는가. 결합이 도움이 되는가. 상호작용이 도움이 되는가. 공감이 반감기를 연장할 수 있는가.


물리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핵 내부 구조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유적으로는 가능하다. 아니, 가능해야 한다.


생명의 반감기를 생각한다. 노화. 죽음. 이것도 일종의 반감기다. 늦출 수 있는가. 있다. 운동한다. 잘 먹는다. 스트레스를 줄인다. 관계를 유지한다. 의미를 찾는다. 수명이 늘어난다.


사랑의 반감기를 생각한다. 관계의 쇠퇴. 이것도 반감기다. 늦출 수 있는가. 있다. 대화한다. 공감한다. 함께 시간을 보낸다. 새로운 경험을 만든다. 관계가 오래간다.


문명의 반감기를 생각한다. 쇠퇴. 붕괴. 이것도 반감기다. 늦출 수 있는가. 있다. 제도를 개혁한다. 신뢰를 쌓는다. 교육한다. 혁신한다. 문명이 지속된다.


공감이 반감기를 연장한다.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하지만 늦춘다. 시간을 번다. 의미 있는 시간을.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명확하다. 공감하는 것이다. 연결하는 것이다. 함께하는 것이다. 무의 관성을 완전히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버틸 수 있다. 조금 더. 의미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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