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해 생명을 먹는 존재의 이유

무의 관성과 엔트로피 9편

by kamaitsra

하루 세끼를 챙겨먹는다. 식자재 장을 본다. 요리한다. 먹는 다. 설거지한다. 일련의 과정을 하루 세번하면 먹기만 해도 하루가 다 지나간다. 왜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속 먹어야 하는가.


어릴 때부터 이상했다. 물은 한 번 마시면 목마름이 해소된다. 잠은 한 번 자면 피로가 풀린다. 하지만 배고픔은 다르다. 계속 돌아온다. 몇 시간마다. 규칙적으로. 왜.


생물 시간에 배웠다.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세포가 ATP를 만들어야 한다고. 포도당을 태워야 한다고. 그래서 먹어야 한다고.


납득되지 않았다. 왜 에너지가 필요한가. 왜 계속 필요한가. 왜 저장할 수 없는가. 아니, 지방으로 저장된다고 배웠다. 그런데도 왜 계속 먹어야 하는가.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왜 먹는 것은 다른 생명인가. 식물은 광합성한다. 햇빛과 물과 이산화탄소로 포도당을 만든다. 효율적이다. 왜 동물은 그렇게 하지 않는가. 왜 다른 생명을 먹는가. 어렵게 사냥을 하고 위험을 무릅쓰는 가.


공감이론을 만들면서 알았다. 먹는다는 것은 에너지 섭취가 아니었다. 의지 섭취였다. 존재는 유한한 의지를 가지고 태어난다. 무의 관성이 그 의지를 끊임없이 소모시킨다. 그래서 보충해야 한다. 먹어야 한다.




존재에게 주어진 의지는 유한하다.


모든 존재는 태어날 때 무한한 의지를 받지 않는다. 유한한 총량의 의지를 부여받는다. 생명만이 아니다. 별도 그렇다. 문명도 그렇다. 관계도 그렇다.


별을 본다. 수소를 헬륨으로 태운다. 핵융합이다. 에너지를 낸다. 빛난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다. 연료가 고갈된다. 수소가 떨어진다. 꺼진다. 죽는다.


별에게 주어진 수소는 유한했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다 쓰면 끝이다. 보충할 수 없다. 의지의 총량이 정해져 있었다.


문명을 본다. 로마 제국. 천 년을 지속했다. 강했다. 번영했다. 하지만 무너졌다. 왜. 의지가 소진됐다. 시민 의식이 약해졌다. 제도가 부패했다. 신뢰가 사라졌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로마가 가진 집단 의지의 총량. 다 쓰면 끝나는. 보충할 수 없는.


관계를 본다. 사랑. 처음에는 뜨겁다. 열정적이다. 에너지가 넘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식는다. 왜. 감정이 소진된다. 공감 의지가 줄어든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그 관계가 가진 공감 의지의 총량. 다 쓰면 끝나는.




의지는 존재 기간 동안 사용된다. 가만히 보존되지 않는다. 세상과 공감하며 끊임없이 소모된다.


성장한다. 의지를 쓴다. 관계 맺는다. 의지를 쓴다. 생각한다. 의지를 쓴다. 감정 느낀다. 의지를 쓴다. 선택한다. 의지를 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의지를 태우고 있다는 뜻이다.


양초를 켠다. 불꽃이 타오른다. 밝다. 아름답다. 하지만 양초가 녹는다. 짧아진다. 불꽃이 양초를 태우고 있다. 언젠가 다 탄다. 꺼진다.


우리도 그렇다. 살아 있다는 것은 의지를 태우고 있다는 것이다. 타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의지의 총량은 제한되어 있다. 텔로미어를 생각한다.


1961년 레너드 헤이플릭이 발견했다. 인간 세포는 약 50회 분열 후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한다. 헤이플릭 한계다. 왜 그런가. 텔로미어 때문이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의 보호 구조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아진다. 한계에 도달하면 세포가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한다. 노화한다. 죽는다.


텔로미어는 처음부터 길이가 정해져 있었다. 분열 횟수가 정해져 있었다. 의지의 총량이 정해져 있었다.


존재도 그렇다. 공감하고 반응하고 유지할수록 의지의 총량이 감소한다. 의지는 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한계가 있다. 유한하다.




무의 관성은 끊임없이 의지를 무로 돌린다.


무의 관성은 어떤 순간에 시작되지 않는다. 항상 작동 중이다. 존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니, 존재하기 전부터. 무의 관성은 기본 상태다.


그 결과 존재는 가만히 있어도 의지가 줄어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숨만 쉬어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소모된다.


엔트로피를 생각한다. 고립계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질서는 무질서로 흐른다. 자발적으로. 막을 수 없다.


의지도 그렇다. 가만히 두면 줄어든다. 무의 관성이 끌어당긴다. 평형으로. 무로.


우리는 의지와 무의 관성 사이의 팽팽한 긴장 위에 존재한다. 줄타기하고 있다. 한쪽으로 기울면 떨어진다. 무로.




의지가 처음부터 최대치라면 비효율이다.


만약 태어날 때 최대 의지를 모두 가진다면 어떻게 될까. 갓난아기를 본다. 움직이지도 못한다. 걷지도 못한다. 말하지도 못한다.


만약 갓난아기가 성인과 같은 양의 의지를 가진다면. 활용할 수 없다. 낭비다. 비효율적이다.


자연은 비효율을 허용하지 않는다. 진화는 효율을 선택한다. 낭비하는 존재는 도태된다.


그래서 의지는 한 번에 다 주어지지 않는다. 유지되고 보충되고 관리되도록 설계된다. 필요에 따라 공급되도록.




그래서 의지는 유지되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의지는 한 번에 다 주어지지 않는다. 유지, 보충, 관리하도록 설계된다. 왜. 무의 관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방치된 의지는 즉시 무로 기울어진다. 그래서 계속 관리해야 한다. 보충해야 한다.


어떻게. 세 가지 경로가 있다.


첫째, 타자와의 공감. 다른 사람과 연결된다. 대화한다. 공감한다. 의지가 보충된다. 에너지가 생긴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둘째, 자연과의 공감. 산에 오른다. 바다를 본다. 별을 본다. 의지가 보충된다. 평화롭다. 충만하다.


셋째, 섭취. 먹는다. 가장 직접적이다. 가장 효율적이다.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생존 행위가 아니다. 의지 보충 행위다.




왜 먹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가.


동물은 가장 복잡한 존재다. 식물보다 복잡하다. 박테리아보다 복잡하다. 의지의 크기가 크다. 다양성이 크다. 복합성이 크다.


그런 존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먹는 것이다. 가장 복잡한 존재가 선택한 방식은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다.


식물은 광합성한다. 햇빛과 물과 이산화탄소로 포도당을 만든다. 효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느리다. 제한적이다. 복잡한 존재를 유지하기에는 부족하다.


동물은 다른 생물을 먹는다. 빠르다. 효율적이다. 복잡한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단순 영양 섭취라면 광합성이나 흡수 같은 방식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물은 다른 생물을 먹는다. 왜. 영양이 아니라 의지를 섭취하기 때문이다.


먹는 행위는 의지의 섭취다.




보양식을 생각한다. 왜 보양식인가.


장어를 먹는다. 힘이 난다고 한다. 뱀을 먹는다. 정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문어를 먹는다. 머리가 좋아진다고 한다. 닭을 먹는다. 회복이 빠르다고 한다.


공통점이 있다. 모두 생명력이 강하다. 회복력이 강하다. 반응성이 강하다. 의지가 강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의지가 강한 존재를 먹으려 한다. 그들의 의지를 섭취하려 한다. 보충하려 한다.


과학적으로 증명됐는가. 아니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믿어왔다. 경험했다. 느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왜 주기적으로 먹어야 하는가.


의지는 연속적으로 소모된다. 멈추지 않는다. 살아 있는 한. 따라서 섭취 역시 주기적이어야 한다.


단식을 해본 적이 있다. 3일. 처음에는 괜찮았다. 배가 고팠지만 버틸 만했다. 둘째 날. 배고픔이 줄어들었다. 이상했다. 몸이 적응한 것 같았다. 셋째 날. 배고픔은 없었다. 하지만 다른 것이 무너졌다. 의지였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생각하기 싫었다. 움직이기 싫었다. 존재하기 싫었다. 의지가 바닥났다.


단식이 길어지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의지다. 배고픔이 아니다. 의지다.




왜 생식이 가공식품보다 유리한가.


가공한다. 구조가 파괴된다. 열을 가한다. 분자가 변한다. 첨가물을 넣는다. 본래 구조가 사라진다.


의지 정보가 소실된다. 그 생명이 가졌던 의지의 패턴. 반응성. 생명력. 사라진다. 남는 것은 영양소뿐이다.


생식은 다르다. 의지의 구조가 가장 온전하다. 그 생명이 가졌던 의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섭취할 수 있다.


일본에서 회를 먹었다. 신선했다. 방금 잡은 생선이었다. 씹으면 탄력이 느껴졌다. 생명이 느껴졌다. 에너지가 느껴졌다.


구운 생선도 맛있다. 하지만 다르다. 부드럽다. 소화하기 쉽다. 하지만 생명력은 덜하다. 의지는 덜하다.




왜 어린 고기가 더 당기는가.


늙은 존재를 본다. 의지가 소진돼 있다. 무의 관성이 우세하다. 생명력이 약하다. 반응성이 낮다.


어린 존재를 본다. 의지 밀도가 높다. 반응성이 강하다. 생명력이 넘친다.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어린 고기가 더 많은 의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 당긴다.


혹시나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어리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가장 왕성한 의지를 가진 젋은 고기 일 것이다.


아무도 병아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계를 좋아한다. 송아지 보다는 젊은 소를 더 좋아한다.


우리는 안다. 늙은 미국 소고기 수입하지 않는다. 이것은 본능이다. 강한 왕성한 의지를 가진 고기를 좋아한다.




병든 사람의 식욕 저하. 아프면 밥맛이 없다. 왜. 의지가 감소했다. 섭취를 거부한다. 무의 관성이 가속된다. 더 약해진다. 악순환이다.


간병한 적이 있다. 어머니였다. 암이었다. 밥을 안 드셨다. 억지로 드시게 했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힘들어하셨다. 하지만 먹어야 했다. 의지를 보충해야 했다. 버텨야 했다.


우울증과 식욕. 우울하면 먹기 싫다. 의지가 고갈됐다. 먹는 행위조차 부담이다. 에너지가 없다. 의미가 없다. 무의 관성이 압도한다.


우울했던 시기가 있었다. 밥을 안 먹었다. 먹어도 맛이 없었다. 의미가 없었다. 점점 약해졌다. 의지가 더 줄어들었다. 더 우울해졌다.


친구가 억지로 밥을 먹였다. 맛있는 것을. 함께. 조금씩 나아졌다. 먹으니까. 의지가 보충되니까.


축제와 음식. 축제에는 항상 음식이 있다. 왜. 집단 공감과 의지 보충을 동시에 수행한다. 함께 먹는다. 공감한다. 연결된다. 의지가 보충된다. 축제는 집단 의지 충전소다.


추석에 가족이 모인다. 음식을 나눈다. 먹는다. 이야기한다. 웃는다. 연결된다. 의지가 충전된다. 다시 1년을 버틸 수 있다.


먹는 행위는 개인적 생존과 집단 공감의 교차점이다.




존재에게 주어진 의지는 유한하다. 무의 관성은 그 의지를 끊임없이 무로 되돌린다. 그래서 존재는 공감하고 먹고 섭취하며 의지를 보충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밥을 먹는다. 지금. 이 순간.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생존이다. 의지 보충이다. 존재 유지다.


씹는다. 맛본다. 삼킨다. 다른 생명의 의지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 소화된다. 흡수된다. 나의 의지가 된다. 나를 유지한다. 버티게 한다.


감사하다. 그 생명에게. 나를 위해 의지를 내어준. 나를 살게 한.


질문이 남는다. 언젠가 먹을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의지를 보충할 수 없게 되면. 무의 관성이 이기면. 끝인가. 아니면 다른 방식이 있는가. 먹지 않고도 의지를 보충할 수 있는가. 공감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그것도 결국 일종의 섭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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