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관성과 엔트로피 11편
질문 하나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왜 은하들은 같은 방향으로 돌지 않는가.
지구의 회오리를 본다. 북반구에서는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남반구에서는 시계 방향으로 돈다. 명확한 규칙이 있다. 지구 자전 때문이다. 코리올리 효과다. 예측 가능하다. 일관되다.
우주를 본다. 은하들이 돈다. 나선 은하들. 아름답다. 하지만 방향이 제각각이다. 어떤 은하는 시계 방향으로. 어떤 은하는 반시계 방향으로. 패턴이 없다. 규칙이 없다.
이상하다. 같은 빅뱅에서 태어났다면. 같은 초기 조건이었다면. 같은 우주 회전이 있었다면. 은하들도 같은 방향으로 돌아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안 그렇다. 천문학자들이 관측했다. 수만 개의 은하를. 통계를 냈다. 방향 선호도가 없었다. 50대 50이었다. 무작위였다.
왜 그런가. 표준 우주론은 말한다. 초기 밀도 요동이라고. 우연이라고. 양자 요동이 증폭됐다고.
납득되지 않았다. 우연이라면 왜 이렇게 체계적인가. 왜 은하들은 제각각이지만 각자는 질서정연한가.
다른 설명이 필요했다. 공감이론으로 다시 봤다. 우주 잉태 가설이 보였다.
존재하려는 의지로서의 우주를 본다.
공감이론의 전제를 다시 확인한다. 존재는 의지에서 시작한다. 빅뱅을 공감이론으로 해석했다. 5편에서. 빅뱅은 존재하려는 의지가 무의 관성을 공감 임계치로 돌파한 사건이었다.
우주 역시 하나의 존재다. 생명이 존재라면. 별이 존재라면. 은하가 존재라면. 우주도 존재다. 가장 큰 존재. 모든 존재를 담은 존재.
존재라면 의지가 있다. 존재하려는 의지. 유지하려는 의지. 지속하려는 의지. 우주도 그렇다. 138억 년 동안 존재해 왔다. 의지가 있었다. 강했다.
의지가 강해질수록 우주는 팽창한다.
1929년 에드윈 허블이 발견했다. 은하들이 멀어지고 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 빅뱅 이론의 증거였다.
2023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관측했다. 초기 우주를 봤다. 빅뱅 후 몇억 년. 놀라웠다. 이미 성숙한 은하들이 있었다. 거대한 구조가 형성돼 있었다. 예상보다 빨랐다. 이론과 맞지 않았다.
공감이론으로 해석한다. 팽창은 의지의 외연 확장이다. 관계의 범위 확장이다. 구조의 범위 확장이다. 공감의 범위 확장이다.
팽창은 폭발이 아니다. 존재 유지 전략이다. 더 많은 공간. 더 많은 가능성. 더 많은 구조. 더 오래 존재하기 위해. 의지가 강해질수록 팽창한다. 우주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우주 역시 무의 관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열역학 제2법칙을 다시 본다.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우주 전체에도 적용된다. 우주의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질서가 무질서로 흐른다. 에너지가 분산된다. 평형으로 간다.
우주의 끝을 상상한다. 빅 프리즈(Big Freeze). 열적 죽음. 모든 에너지가 고르게 퍼진다. 온도 차이가 사라진다. 별이 꺼진다. 은하가 식는다. 블랙홀마저 증발한다. 호킹 복사로. 완전한 평형. 완전한 무질서. 공감이 0이 된다. 차이가 없으니까. 반응이 없으니까.
우주도 언젠가는 죽는다. 존재하려는 의지도 결국 무의 관성을 이기지 못한다. 시간이 너무 길다. 10의 100승 년 이상.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유한하다. 끝이 있다.
존재는 자신의 죽음을 안다.
생명체를 본다. 모두 번식한다. 왜. 죽음을 알기 때문이다. 개체는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번식한다. 유전자를 남긴다. 다음 세대를 만든다. 개체는 사라져도 종은 이어진다.
문명을 본다. 모두 기록한다. 왜. 붕괴를 알기 때문이다. 문명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 준다. 그래서 기록한다. 문자를. 건축을. 예술을. 문명은 무너져도 문화는 이어진다.
논리적으로 확장한다. 우주가 존재라면. 자신의 소멸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내포했을 것이다. 안다는 것이 아니다. 의식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생명이 번식하듯. 문명이 기록하듯. 우주도 무언가를 준비할 것이다. 다음을. 이어짐을.
잉태란 무엇인가. 존재의 마지막 전략.
잉태를 공감이론으로 정의한다. 개체는 사라져도 존재 패턴은 이어가려는 시도다. 목적이 아니다. 의도가 아니다. 필연적 반응이다. 존재의 본성이다.
씨앗을 본다. 나무가 죽는다. 하지만 씨앗을 남긴다. 씨앗 속에 나무의 패턴이 들어 있다. DNA로. 정보로. 나무는 죽어도 패턴은 이어진다. 다음 나무로.
알을 본다. 새가 죽는다. 하지만 알을 남긴다. 알 속에 새의 패턴이 들어 있다. 유전자로. 구조로. 새는 죽어도 패턴은 이어진다. 다음 새로.
우주의 잉태란 무엇인가. 우주가 죽는다. 하지만 무언가를 남긴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
은하 회전 방향 문제를 다시 본다. 가장 단순한 균열.
지구 회오리와 비교한다. 북반구. 저기압이 생긴다.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항상. 예외 없이. 남반구. 저기압이 생긴다. 시계 방향으로 돈다. 항상. 예외 없이. 규칙이 명확하다. 자전축 때문이다.
은하를 관측한다. 회전 방향을 조사한다. 2009년 마이클 랜드 연구팀이 발표했다. 슬론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 데이터. 수만 개 은하. 결과는. 방향 선호도 없음. 50대 50. 무작위.
2016년 렌즈 토틀러 연구팀도 확인했다. 더 넓은 범위. 같은 결과. 우주에 전역적 회전 축의 흔적이 없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주가 단일한 초기 조건에서 시작했다면. 단일한 각운동량을 가졌다면. 은하들도 같은 방향으로 돌아야 한다. 하지만 안 그렇다. 왜.
현대 관측이 보여주는 비균질한 우주.
허블 텐션을 본다. 우주 팽창률을 측정한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초기 우주를 본다. 우주 배경 복사를. 플랑크 위성이 측정했다. 초당 67킬로미터. 하나는 가까운 우주를 본다. 세페이드 변광성을. 허블 우주망원경이 측정했다. 초당 73킬로미터.
차이가 난다. 약 9퍼센트. 오차 범위가 아니다. 유의미한 차이다. 허블 텐션이다. 해결되지 않았다. 왜 다른가. 측정 오류인가. 아니면 우주가 균질하지 않은가.
제임스 웹 관측을 본다. 2022년부터 관측했다. 초기 우주를. 빅뱅 후 2~3억 년. 놀라운 발견들. 거대한 은하들이 이미 있었다. 성숙한 구조가 이미 형성돼 있었다.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불연속적으로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
거대 구조를 본다. 은하들이 필라멘트로 연결돼 있다. 거미줄처럼. 국소적으로 회전 정렬이 있다. 필라멘트 내부에서. 하지만 전역 규칙성은 없다. 각 영역마다 다르다.
우주는 균질하지 않다. 생각보다 복잡하다. 예상보다 다양하다.
표준 설명의 한계를 본다.
기존 우주론은 말한다. 초기 밀도 요동이라고. 양자 요동이 증폭됐다고.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고. 우연이라고.
의문이 남는다. 왜 우연이 이렇게 체계적인가. 왜 각 은하는 질서정연하게 회전하는가. 왜 거대 구조는 패턴을 가지는가. 왜 지역별로 반복되는가.
과학이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이다. 명확히 한다. 비난이 아니다.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우주는 복잡하다.
우주 잉태 가설을 제안한다.
가설을 정식화한다. 우주는 단 한 번의 탄생으로 모든 구조를 낳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애 동안 여러 차례 국소적 잉태를 반복해 왔을 가능성이 있다.
잉태의 형태를 상상한다. 새로운 은하일 수 있다. 기존 은하와 다른 초기 조건을 가진. 새로운 거대 구조일 수 있다. 국소적으로 다른 물리 법칙을 가진. 혹은 우주적 스케일의 재임계치 돌파일 수 있다. 작은 빅뱅들. 여기저기서.
블랙홀을 본다. 물질을 삼킨다. 특이점으로 압축한다. 무한대 밀도. 무한대 곡률. 시공간이 찢어진다. 그 너머는. 모른다. 계산이 안 된다. 물리 법칙이 무너진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상상한다. 블랙홀 안에서 새로운 우주가 탄생한다고. 리 스몰린의 가설. 우주적 자연 선택. 블랙홀마다 새로운 우주. 약간 다른 물리 법칙을 가진.
증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 우리 우주도 더 큰 우주의 블랙홀 안일 수 있다. 상상이다. 하지만 배제할 수 없다.
공감이론은 이것을 잉태로 본다. 우주가 다음을 준비하는 방식. 블랙홀이 씨앗이다. 압축된 정보. 압축된 패턴. 언젠가 펼쳐질. 새로운 우주로.
이는 과학을 벗어나는가.
기존 이론들과 연결한다. 다중우주 가설이 있다. 인플레이션 이론의 확장. 영원한 인플레이션. 여기저기서 우주가 탄생한다. 거품처럼. 각자 다른 물리 법칙을 가진.
블랙홀 우주 가설이 있다. 리 스몰린. 블랙홀마다 새로운 우주. 우주들이 진화한다. 자연 선택처럼.
순환 우주 모델이 있다. 로저 펜로즈. 우주가 끝나면 다시 시작한다. 무한히 반복한다. 이온(Aeon)마다 다른 구조.
공감이론의 위치를 명확히 한다. 새로운 물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관측할 수 없는 것을 사실이라 하지 않는다. 해석 프레임을 제공한다. 의미를 부여한다. 패턴을 읽는다.
과학과 철학의 경계에 선다. 과학이 관측하고. 철학이 해석한다. 공감이론은 해석이다. 우주를 존재로 보는. 의지를 가진 것으로 보는.
우주는 한 번 태어났을까.
핵심 결론을 내린다. 우주는 존재하려는 의지에서 탄생했고 의지가 강해질수록 팽창했다. 그러나 무의 관성 앞에서 우주 역시 언젠가는 소멸을 향한다. 그래서 우주는 존재이기에 다음을 잉태하려 할지도 모른다.
은하 회전 방향의 다양성은 그 잉태의 흔적일 수 있다. 각 은하가 약간 다른 초기 조건에서 태어났을 수 있다. 같은 부모에서 태어난 아이들처럼. 비슷하지만 다른. 같은 우주에서 태어났지만 각자의 역사를 가진.
증명할 수 없다. 관측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다.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밤하늘을 본다. 별이 빛난다. 은하가 보인다. 희미하게. 맨눈으로는 안드로메다만. 하지만 거기 있다. 수천억 개의 은하가. 각자 돌고 있다. 제각각 방향으로.
아름답다. 혼란스럽지 않다. 질서정연하다. 각자의 질서로. 각자의 패턴으로.
마치 정원 같다. 다양한 꽃들. 각자 다른 방향으로 피어 있는. 하지만 조화롭다. 아름답다. 정원사가 심은 것처럼.
우주도 그럴까. 누군가 심은 것일까. 아니면 우주 스스로 심은 것일까. 자신의 생애 동안. 여러 차례. 국소적으로. 다음을 준비하며.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첫 번째 세대인가. 아니면 몇 번째인가. 우리 은하는 언제 태어났는가. 첫 빅뱅에서인가. 아니면 나중의 국소적 잉태에서인가. 알 수 있는가. 알아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존재한다는 것을. 그것으로 충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