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관성과 엔트로피 12편
의지는 정말 맹목적인가.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존재하려는 의지는 생존 본능이라고. 무작위적 충동이라고. 그냥 살고 싶은 거라고. 이유 없이. 목적 없이. 본능적으로.
하지만 관찰한다. 의문이 생긴다. 존재하려는 의지가 정말 맹목적이라면. 왜 모든 생명은 죽도록 설계됐는가. 왜 세포는 분열 한계가 있는가. 왜 텔로미어는 짧아지는가. 왜 영원히 살 수 없는가.
맹목적이라면 영원을 추구해야 한다. 죽지 않으려 해야 한다. 모든 수단을 다 써야 한다. 하지만 안 그렇다. 생명은 처음부터 유한하게 설계됐다. 죽음이 프로그래밍돼 있다.
질문이 떠오른다. 존재는 왜 처음부터 사라질 구조를 내장하고 태어났는가. 무를 몰랐다면 이렇게 설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다는 것이다. 의지가 안다. 무를. 죽음을. 끝을.
존재는 영속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흔한 오해가 있다. 생명은 영원히 살고 싶어 한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가능하면 영원히 존재하고 싶다고.
하지만 관찰되는 실제는 다르다. 모든 생명은 유한하게 설계됐다. 복구는 있다. 세포가 손상되면 복구한다. DNA가 손상되면 복구한다. 하지만 무한 유지는 없다. 한계가 있다. 반드시 죽는다.
나무를 본다. 수천 년을 산다. 세쿼이아. 브리슬콘 소나무. 오래 산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 죽는다. 벌레가 먹는다. 병이 든다. 쓰러진다. 썩는다. 흙으로 돌아간다.
거북이를 본다. 백 년을 산다. 이백 년을 산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다. 늙는다. 느려진다. 먹이를 못 잡는다. 죽는다.
인간을 본다. 의학이 발전했다. 평균 수명이 늘었다. 80년. 90년. 하지만 한계가 있다. 120년 정도. 그 이상은 어렵다. 왜. 텔로미어 때문이다. 세포 분열 한계 때문이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존재하려는 의지는 영원 지속이 아니라 유한 순환을 목표로 한다.
죽음이 외부 사건이 아니라 내부 기능인 이유를 본다.
생물학적 사실을 확인한다. 아폽토시스. 세포 자살. 프로그램된 세포 죽음. 세포가 스스로 죽는다. 왜. 손상됐을 때.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암이 됐을 때. 스스로 죽어서 전체를 보호한다.
텔로미어 제한도 그렇다. 세포 분열마다 짧아진다. 한계에 도달하면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한다. 세포가 늙는다. 죽는다. 왜. 암을 막기 위해서다. 무한 분열은 암이다. 제한이 필요하다.
철학적으로 전환한다.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기능이다. 설계된 것이다. 의도된 것이다. 아니, 의도는 아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졌다.
존재는 무를 예상하지 않았다면 죽음을 설계하지 않았을 것이다.
손가락을 베었다. 칼에. 피가 난다. 아프다. 며칠 지난다. 아문다. 새 살이 돋는다. 흉터가 남는다. 하지만 괜찮다. 복구됐다.
간을 다쳤다. 사고로. 일부가 손상됐다. 하지만 재생한다. 간은 재생 능력이 있다. 70퍼센트를 잘라내도 다시 자란다. 놀랍다.
신장이 두 개다. 하나만 있어도 산다. 폐도 두 개다. 하나만 있어도 산다. 중복이다. 왜. 안전장치다. 하나가 고장 나도 버틸 수 있게.
면역 체계가 있다. 복잡하다. 다층적이다. 백혈구. 항체. T세포. B세포. 여러 겹의 방어선. 바이러스가 들어온다. 막는다. 공격한다. 제거한다.
오류 허용 구조다. DNA 복제 오류가 생긴다. 복구 효소가 고친다.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고친다. 충분하다.
무의 관성을 알고 있기에 존재는 완벽 대신 복원 가능한 불완전함을 선택한다.
완벽을 추구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무의 관성이 너무 강하니까. 불완전하지만 복구 가능하게. 중복되게. 여러 겹으로. 그렇게 설계했다. 오래 버티기 위해.
번식과 기록을 본다. 사라질 것을 아는 존재의 선택.
번식을 본다. 개체를 포기한다. 나는 죽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패턴을 유지한다. DNA를. 다음 세대로. 나는 사라진다. 하지만 나의 방식은 남는다.
연어를 본다. 강을 거슬러 오른다. 산란한다. 죽는다. 모든 에너지를 다 쓴다. 알을 낳는 데. 부화시키는 데. 자신은 죽는다. 하지만 새끼는 산다. 패턴이 이어진다.
기록을 본다. 기억의 외주화다. 내 머릿속에만 있으면 나와 함께 사라진다. 밖으로 꺼낸다. 글로. 그림으로. 조각으로. 건축으로. 남긴다. 나는 사라진다. 하지만 기록은 남는다.
수메르인을 본다. 설형문자를 새겼다. 점토판에. 수천 년 전에. 지금도 읽을 수 있다. 수메르인은 사라졌다. 문명은 무너졌다. 하지만 기록은 남았다. 우리가 읽는다. 그들의 생각을. 그들의 방식을.
문명적 아카이브를 본다. 도서관. 박물관. 기록 보관소. 왜 만드는가.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남기려고. 다음 세대에게. 다음 문명에게.
나는 사라진다. 그러나 나의 방식은 남긴다. 이것이 존재의 전략이다.
공감을 본다. 가장 고차원적인 생존 전략.
먹이 섭취와 비교한다. 먹는다. 타자를 파괴한다. 분해한다. 흡수한다. 에너지를 얻는다. 물질을 소모한다. 타자가 사라진다. 나만 남는다.
공감은 다르다. 타자를 파괴하지 않는다. 그대로 둔다. 연결한다. 교환한다. 둘 다 유지된다. 오히려 둘 다 강해진다. 의지가 보충된다. 물질 소모 없이.
공감은 무의 관성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오래 저항하는 방식이다.
효율적이다. 지속 가능하다. 먹는 것은 한계가 있다. 계속 먹어야 한다. 끊임없이. 지친다. 공감은 다르다. 한 번 연결되면 오래간다. 비용이 적다. 효과가 크다.
왜 고차원 존재일수록 공감이 중요해지는가.
동물의 진화를 본다.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단순에서 복잡으로. 뇌가 커진다. 의식이 생긴다. 감정이 생긴다. 관계가 생긴다.
인간을 본다. 가장 복잡한 동물. 가장 큰 뇌. 가장 발달한 의식. 무엇이 중요한가. 관계다. 사랑이다. 의미다.
혼자는 못 산다. 먹을 것이 충분해도. 잠잘 곳이 있어도. 혼자면 무너진다. 코로나 격리 때 봤다. 먹고 자는 건 괜찮았다. 하지만 사람을 못 만나니까 무너졌다. 우울해졌다. 무기력해졌다.
존재의 복잡도가 높아질수록 의지는 혼자 유지되지 않는다. 공감이 필요하다. 연결이 필요하다. 타자가 필요하다.
의미, 예술, 종교의 정체를 본다.
생존과 무관해 보인다. 그림을 그린다고 배가 부르지 않는다. 음악을 듣는다고 몸이 따뜻해지지 않는다. 기도한다고 병이 낫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문명에 존재한다. 동굴 벽화. 3만 년 전부터. 음악. 모든 문화에. 종교. 모든 사회에. 왜. 쓸모없으면 사라져야 한다. 진화적으로. 하지만 안 사라진다. 오히려 중요해진다.
공감이론으로 해석한다. 의미는 사라질 것을 아는 존재가 남기는 공감의 잔향이다.
나는 죽는다. 안다. 하지만 의미를 만든다. 예술을 만든다. 종교를 만든다. 남긴다. 다음 세대에게. 나는 사라진다. 하지만 의미는 남는다. 공감의 패턴으로.
그림을 본다. 화가는 죽었다. 수백 년 전에. 하지만 그림은 남았다. 우리가 본다. 느낀다. 공감한다. 화가와. 수백 년을 건너서. 죽음을 건너서.
음악을 듣는다. 작곡가는 죽었다. 하지만 음악은 남았다. 연주된다. 우리가 듣는다. 감동한다. 공감한다. 작곡가와. 시간을 초월해서.
우주는 왜 완벽을 피했는가.
초기 우주를 본다. 빅뱅 직후. 거의 균질했다. 하지만 완전히는 아니었다. 미세한 요동이 있었다. 10만분의 1 정도. 작다. 하지만 있었다.
만약 완전 균질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변화가 없다. 구조가 안 생긴다. 별이 안 생긴다. 은하가 안 생긴다. 생명이 안 생긴다. 정지다. 무와 같다.
우주는 처음부터 흔들림을 허용했다. 불완전함을. 비대칭을. 요동을. 그래서 변화가 생겼다. 구조가 생겼다. 별이 생겼다. 우리가 생겼다.
우주는 무를 알았기에 완벽을 거부했다. 완벽은 죽음이다. 변화 없음이다. 공감 없음이다. 불완전함이 생명이다. 변화다. 공감이다.
엔트로피 속에서 질서가 계속 탄생하는 이유를 본다.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질서는 무질서로 흐른다. 법칙이다. 거스를 수 없다. 하지만 국소적으로는 거스른다.
별이 탄생한다. 성운이 뭉친다. 중력으로. 압축된다. 뜨거워진다. 핵융합이 시작된다. 빛난다. 질서가 생긴다. 엔트로피 증가를 거슬러서.
생명이 발생한다.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단순에서 복잡으로. 질서가 생긴다. 엔트로피 증가를 거슬러서.
문명이 등장한다. 무리에서 사회로. 본능에서 문화로. 질서가 생긴다. 엔트로피 증가를 거슬러서.
왜 가능한가. 무의 관성을 모르기 때문인가. 아니다. 알고도 선택한 것이다. 국소적 저항이다. 전체적으로는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감소한다. 잠시. 한시적으로. 의미 있게.
이는 무의 관성을 모르는 반항이 아니라 알고도 선택한 국소적 저항이다.
핵심 명제를 정식화한다.
존재하려는 의지는 무의 관성을 모른 채 태어난 충동이 아니라 무를 전제로 설계된 유한하고 지능적인 의지다.
맹목적이지 않다. 안다. 무를. 죽음을. 끝을. 그래서 영원을 추구하지 않는다. 순환을 만든다. 다음을 준비한다.
죽음을 설계에 포함했다. 아폽토시스로. 텔로미어로. 복구 시스템을 만들었다. 중복을. 면역을. 번식을 선택했다. 개체 대신 패턴을. 기록을 남겼다. 기억 대신 문자를. 공감을 택했다. 먹기보다 연결을.
모두 무를 전제로 한 선택이다. 지능적인 설계다. 의도는 아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그렇다. 작동한다. 효율적으로.
그래서 존재는 영원이 아니라 순환을 만든다.
윤회를 본다. 동양 사상. 죽어도 끝이 아니다. 다시 태어난다. 다른 형태로. 순환한다. 끝없이.
부활을 본다. 서양 종교. 죽어도 끝이 아니다. 다시 산다. 영생한다. 하지만 같은 형태가 아니다. 변화된 형태로.
다음 세대를 본다. 과학적 관점. 나는 죽는다. 하지만 자식이 산다. DNA가 이어진다. 패턴이 이어진다. 변형되지만. 조금씩.
다음 우주를 본다. 우주론적 관점. 이 우주는 죽는다. 열적 죽음. 하지만 다음이 있을지 모른다. 블랙홀에서. 양자 요동에서. 순환할지 모른다.
존재는 끝을 없애지 않는다. 대신 다음을 만든다. 순환을. 이어짐을. 변형된 지속을.
결론을 내린다.
존재하려는 의지는 무의 관성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영원을 꿈꾸지 않고 공감을 남기며 다음을 준비한다.
맹목적이지 않다. 지능적이다. 구조적으로. 무를 안다. 처음부터. 설계에 반영했다. 유한함을. 죽음을. 순환을.
영원을 추구하지 않는다. 불가능하니까. 무의 관성이 너무 강하니까. 대신 의미 있는 유한함을 추구한다. 공감을 남긴다. 패턴을 남긴다. 다음을 준비한다.
우리도 그렇다. 죽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산다. 의미를 만든다. 사랑한다. 창조한다. 남긴다. 다음 세대에게. 다음 사람에게. 다음 우주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