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관성과 엔트로피 13편
무의 관성은 항상 작동한다. 5편에서 봤다. 모든 존재는 무로 기울어진다. 천천히. 지속적으로. 멈출 수 없이.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대부분의 존재는 천천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빠르게 사라진다. 폭력적으로 사라진다. 갑자기 사라진다.
시체를 본다. 사람이 죽는다. 무의 관성만 작동한다면 천천히 분해되어야 한다. 수백 년. 수천 년. 하지만 안 그렇다. 며칠 만에 부패한다. 구더기가 생긴다. 악취가 난다. 빠르다. 폭력적이다.
건물을 본다. 사용하지 않는다. 무의 관성만 작동한다면 천천히 무너져야 한다. 수백 년. 하지만 안 그렇다. 몇 년 만에 금이 간다. 벽이 무너진다. 곰팡이가 핀다. 빠르다.
질문이 떠오른다. 왜 어떤 존재는 시간을 두고 소멸하지 않고 유난히 빠르고 폭력적으로 무로 밀려 들어가는가.
존재는 왜 자연 소멸을 선택하지 않는가.
자연 소멸을 상상한다. 시간이 지난다. 천천히 무너진다. 조금씩 사라진다. 평화롭다. 고통 없다. 폭력 없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너무 느리다. 순환이 지연된다. 패턴 갱신이 어렵다.
숲을 본다. 나무가 죽는다. 자연 소멸한다면 그대로 서 있어야 한다. 수백 년. 천천히 썩으면서. 하지만 그러면 문제다. 새로운 나무가 자랄 공간이 없다. 빛이 차단된다. 영양분이 묶여 있다.
존재는 정지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움직여야 한다. 변화해야 한다. 순환해야 한다. 그래서 자연 소멸을 선택하지 않는다.
존재는 사라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존재하기 위해 더 빠른 소멸을 선택한다.
빠르게 무로 돌아가야 순환이 유리해진다.
순환의 효율성을 본다. 느린 붕괴는 문제다. 잔존 구조가 과다하다. 새로운 존재를 방해한다. 빠른 붕괴는 다르다. 구조가 정리된다. 새로운 공감이 가능해진다.
썩지 않는 숲을 상상한다. 죽은 나무가 그대로 서 있다. 수백 년. 공간을 차지한다. 영양분을 가두고 있다. 새로운 나무가 못 자란다. 숲이 정지한다. 생명력이 줄어든다.
잘 분해되는 숲을 본다. 나무가 죽는다. 구더기가 생긴다. 세균이 분해한다. 빠르게 흙으로 돌아간다. 영양분이 방출된다. 새로운 나무가 자란다. 숲이 살아 있다. 생명력이 넘친다.
빠른 무는 파괴가 아니라 다음 존재를 위한 공간 확보다.
존재하려는 의지는 무의 관성을 이미 알고 있다. 유한함을 전제로 설계됐다. 죽음을 내장했다.
중요한 전환이 필요하다. 자연히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순환에 유리하게 사라진다고 봐야 한다.
존재는 무의 관성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무의 관성을 가속하여 활용한다.
충격적이다.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관찰된다. 자연에서. 생명에서. 우주에서.
무의 가속자를 정의한다.
무의 가속자란 무의 관성보다 더 빠르게 존재를 무로 밀어 넣는 구조, 환경, 존재, 사건이다.
특징이 있다. 외부 공격이 아니다. 내부 설계다. 존재가 스스로 허용한 장치다.
이것이 핵심이다. 무의 가속자는 적이 아니다. 도구다. 존재가 순환을 위해 만든. 혹은 허용한.
무의 가속자들의 특징을 살펴 본다. 공감해야 비로소 존재하므로 무의 가속자들은 공감이 안되는 쪽으로 열심이다.
첫째, 의지에 반응하지 못하게 만든다.
방사선을 본다. 세포를 파괴한다. 아무리 강한 의지도 소용없다. DNA가 끊긴다. 복구 시스템이 작동한다. 하지만 방사선이 너무 강하면 소용없다. 반응할 수 없다.
산화를 본다. 철이 녹는다. 의지가 있어도 막을 수 없다. 산소가 결합한다. 산화철이 된다. 원래 구조가 파괴되어 반응하지 못한다.
고열을 본다. 단백질이 변성된다. 효소가 작동을 멈춘다. 생명이 멈춘다. 의지가 있어도 반응이 없다.
둘째, 공감을 차단한다.
전쟁을 본다. 신뢰가 파괴된다. 증오가 생긴다. 공감이 차단된다. 문명이 무너진다. 빠르게.
혐오를 본다. 타자를 배척한다. 연결을 거부한다. 공감이 끊긴다. 사회가 분열된다. 붕괴가 가속된다.
연결이 끊기는 순간 무의 관성은 즉시 가속된다.
셋째, 공감 임계치에 도달하지 못하게 장시간 반대 공감에 노출한다.
만성 염증을 본다. 계속 자극된다. 회복되지 못한다. 염증이 지속된다. 조직이 손상된다. 암이 생긴다. 죽는다.
지속 스트레스를 본다. 코르티솔이 계속 분비된다. 면역이 약해진다. 회복이 안 된다. 우울증이 온다. 무너진다.
곰팡이를 본다. 음식에 핀다. 계속 자란다. 독소를 낸다. 먹을 수 없게 된다. 부패균도 그렇다. 계속 증식한다. 분해한다. 썩힌다.
넷째, 다양성을 제거한다.
과잉 효율 시스템을 본다. 하나의 방법만 선택한다. 최적화한다. 효율적이다. 하지만 취약하다. 조건이 바뀌면 무너진다. 다양성이 없으니까.
단작 농업을 본다. 한 가지 작물만 심는다. 효율적이다. 하지만 병충해에 취약하다. 한 번 퍼지면 다 죽는다. 다양성이 없으니까.
획일적 기술을 본다. 하나의 표준만 쓴다. 편리하다. 하지만 그 표준이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진다. 대안이 없다.
다양성 상실은 회복 불가능과 같다. 획일화하려는 세력 혹은 집단은 무의 가속 집단이다.
미시 세계의 무의 가속자들을 본다.
반물질. 물질과 만나면 소멸한다. 완전히. 에너지로.
방사성 붕괴 연쇄. 우라늄이 붕괴한다. 토륨이 된다. 또 붕괴한다. 라돈이 된다. 또 붕괴한다. 연쇄다. 멈추지 않는다.
활성산소. 세포를 공격한다. 산화시킨다. DNA를 손상시킨다. 노화시킨다.
촉매 반응. 아주 작은 양으로 엄청난 반응을 일으킨다. 가속시킨다.
미시에서는 결합을 끊는 속도가 곧 무의 가속이다.
생명 세계의 무의 가속자들을 본다.
구더기를 본다. 시체에 생긴다. 며칠 만에. 빠르게 먹는다. 분해한다. 흙으로 돌린다.
세균, 곰팡이를 본다. 어디에나 있다. 죽은 것을 분해한다. 빠르게. 효율적으로.
기생충, 바이러스를 본다. 숙주를 약화시킨다. 죽인다. 빠르게.
산화 스트레스를 본다. 활성산소가 쌓인다. 세포가 손상된다. 노화한다. 죽는다.
굶주림, 탈수를 본다. 며칠이면 죽는다. 빠르다.
생명은 생명에 의해 가장 빠르게 무로 돌아간다. 아이러니다. 생명이 생명을 가속한다. 무로.
환경, 자연의 복합 가속장을 본다.
물을 본다. 용매다. 녹인다. 부식시킨다. 침식시킨다. 계속.
산소를 본다. 산화시킨다. 녹슬게 한다. 타게 한다.
염분을 본다. 부식시킨다. 빠르게.
자외선을 본다. DNA를 손상시킨다. 플라스틱을 분해한다.
풍화를 본다. 바람. 비. 온도 변화. 돌을 깎는다. 모래로 만든다.
해상 환경을 본다. 복합 가속의 결정판이다. 물, 염분, 습기, 파도, 자외선. 모두 함께. 배가 빠르게 녹는다. 부식된다. 무너진다.
자연은 파괴자가 아니라 정리자다. 빠르게 정리한다. 다음을 위해. 자연은 생명을 줌과 동시에 빠르게 순환시킨다.
인간, 사회, 문명의 무의 가속자들을 본다.
고립을 본다. 연결이 끊긴다. 빠르게 무너진다. 10편에서 봤다.
의미 상실을 본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른다. 의지가 소진된다. 우울증. 자살.
중독을 본다. 도파민 회로가 망가진다. 정상적 공감이 불가능해진다. 무너진다.
전쟁을 본다. 신뢰 파괴. 증오 생성. 문명 붕괴. 빠르게.
정보 오염을 본다. 가짜 뉴스. 혐오. 분열. 사회가 약해진다.
환경 파괴를 본다. 생태계 붕괴. 기후 변화. 문명의 기반이 흔들린다.
과잉 효율화를 본다. 다양성 제거. 취약성 증가. 작은 충격에도 무너진다.
문명은 가장 정교한 공감 구조이자 가장 위험한 무의 가속기다.
우주적 규모의 무의 가속자들을 본다.
블랙홀을 본다. 모든 것을 삼킨다. 빛도. 시간도. 완전 소멸.
초신성을 본다. 별이 폭발한다. 순식간에. 빛의 속도로. 모든 것을 날려 버린다.
열적 죽음을 본다. 우주의 끝. 모든 에너지가 고르게 퍼진다. 차이가 없다. 공감이 0이다.
빅 립을 본다. 우주가 너무 빠르게 팽창한다. 모든 것이 찢어진다. 은하도. 별도. 원자도.
진공 붕괴 가능성을 본다. 진공이 불안정하다면. 어느 순간 붕괴할 수 있다. 빛의 속도로 퍼진다. 모든 것이 다시 쓰인다.
우주도 예외 없이 가속 장치를 내장한다.
결정적 통합 명제를 내린다.
무의 관성은 느리다. 그러나 순환을 위해 존재는 스스로 무를 가속한다.
충격적이다.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관찰된다. 미시에서. 생명에서. 사회에서. 우주에서.
무의 가속자들은 적이 아니다. 순환의 도구다. 존재가 다시 존재하기 위해 배치한.
최종 결론을 내린다.
무의 가속자들은 존재를 파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가 다시 존재하기 위해 스스로 배치한 가장 냉정한 순환 장치다.
잔인하다. 폭력적이다. 하지만 필연적이다. 순환을 위해. 다음 존재를 위해.
시체를 다시 본다. 구더기가 생긴다. 혐오스럽다. 하지만 필요하다. 빠르게 분해해야 한다.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새로운 생명이 자라야 한다.
건물을 다시 본다. 무너진다. 슬프다. 하지만 필요하다. 공간을 내놓아야 한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야 한다.
문명을 다시 본다. 붕괴한다. 비극적이다. 하지만 필연적이다.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