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관성과 엔트로피 14편
영생을 상상한다. 백만 년을 산다. 천만 년을 산다. 죽지 않는다. 늙지 않는다. 영원히 산다.
축복인가.
처음에는 그렇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한다. 배우고 싶은 것을 다 배운다. 가고 싶은 곳을 다 간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 만난다. 좋다. 행복하다.
백 년이 지난다. 아직 괜찮다. 천 년이 지난다. 조금 지루하다. 만 년이 지난다. 모든 것이 반복이다. 새로운 것이 없다. 감동이 없다. 모든 음악을 들었다. 모든 책을 읽었다. 모든 풍경을 봤다.
십만 년이 지난다. 사랑하는 사람이 바뀐다. 수백 번. 수천 번. 처음의 설렘이 사라진다. 익숙하다. 패턴이 보인다. 사랑도 반복이다.
백만 년이 지난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시간이 무한하니까. 내일 해도 된다. 내년에 해도 된다. 만 년 후에 해도 된다. 모든 선택이 유보된다. 모든 의미가 희석된다.
영생은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다. 직관적 반전이다. 영원한 삶은 이상향이 아니다. 감각의 마모다. 의미의 소멸이다.
존재는 왜 끝나야만 의미를 가지는가.
희로애락을 본다. 기쁨. 슬픔. 분노. 즐거움. 모두 유한함을 전제로 작동한다.
기쁨은 왜 기쁜가. 오래가지 않으니까. 끝나니까. 그래서 소중하다. 만약 영원히 기쁘다면. 기쁨이 아니다. 기본 상태다. 의미 없다.
슬픔은 왜 슬픈가. 영원할 것 같으니까. 하지만 끝난다. 시간이 지나면. 그래서 견딜 수 있다. 만약 정말 영원하다면. 견딜 수 없다. 무너진다.
선택을 본다. 왜 선택이 중요한가. 시간이 제한되니까. 모든 것을 할 수 없으니까. 골라야 한다.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의미 있다. 시간이 무한하다면. 선택은 무의미하다. 다 하면 되니까. 나중에 해도 되니까.
시간이 무한해지면 기쁨은 지연되고 고통은 누적되며 선택은 무의미해진다.
무한한 존재는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기계적 생존체가 된다.
암을 본다. 세포가 변한다. 통제를 벗어난다. 죽지 않는다. 계속 증식한다. 멈추지 않는다.
정상 세포는 죽는다. 아폽토시스. 프로그램된 세포 죽음. 필요하면 죽는다. 전체를 위해. 암세포는 안 죽는다. 텔로머라아제를 활성화한다. 무한히 분열한다.
좋은 것 아닌가. 죽지 않으니까. 아니다. 문제다. 통제 불가능하다. 계속 자란다. 영양분을 독점한다. 다른 세포가 죽는다. 장기가 망가진다. 숙주가 죽는다. 숙주가 죽으면 암세포도 죽는다.
역설이다. 죽지 않으려다 죽는다. 영원히 살려다 모두 죽는다.
암은 무의 관성을 거부한 존재의 최후 형태다. 공감이론으로 본다. 암세포는 공감하지 않는다. 다른 세포와. 전체와. 자기만 산다. 혼자 증식한다. 결국 모두 죽인다. 자신도 죽는다.
무의 관성을 다시 본다. 거부할 수 없다. 가속자들이 있다. 빠르게 무로 밀어 넣는다. 순환을 위해.
받아들여야 한다. 무의 관성을. 유한함을. 죽음을. 그래야 순환이 시작된다.
존재는 무를 부정할 때가 아니라 이해하고 수용할 때 진화한다.
불완전성의 가치를 본다. 죽음. 필요하다. 순환을 위해. 실패. 필요하다. 배움을 위해. 결핍. 필요하다. 선택을 위해.
완벽을 상상한다. 죽지 않는다. 실패하지 않는다. 부족하지 않다. 좋아 보인다. 하지만 문제다. 변화가 없다. 성장이 없다. 의미가 없다.
생명은 완벽해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기에 순환한다.
다양성을 본다. 왜 필요한가. 사고 실험을 한다.
불멸의 실험용 쥐 50마리를 상상한다. 죽지 않는다. 좋아 보인다. 하지만 번식한다. 늘어난다. 100마리. 200마리. 1000마리. 계속 늘어난다. 죽지 않으니까.
먹이가 부족해진다. 공간이 부족해진다. 싸운다. 모두 약해진다. 집단이 붕괴한다. 죽지 않는 개체들이 집단을 죽인다.
다른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불멸이지만 번식 불가능. 50마리로 고정. 변화 없다. 적응 없다. 환경이 바뀐다. 대응하지 못한다. 멸종한다.
유한함이 없으면 다양성도 없다. 새로운 개체가 안 나온다. 새로운 유전자가 안 나온다. 적응이 안 된다. 진화가 안 된다.
죽음이 필요하다. 세대 교체가 필요하다. 그래야 다양성이 생긴다. 그래야 생존한다.
인류를 본다. 인구가 늘었다. 80억. 계속 늘어날까. 아니다. 선진국 출산율이 떨어진다. 한국 0.7명. 일본 1.3명. 유럽도 낮다. 왜.
경제적 이유라고 한다. 양육비가 비싸다고. 맞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지구의 수용력. 한계가 있다. 100억. 120억. 어딘가에 한계가 있다. 무한 팽창은 불가능하다. 자원이 제한되니까. 공간이 제한되니까.
인구 조정이 일어난다. 출산율 감소. 자발적으로. 사회적으로. 구조적으로. 이것은 실패가 아니다. 적응이다. 조절이다.
인구 조정은 생존 실패가 아니라 자기 조절 능력의 발현이다. 공감이론으로 본다. 지구와 공감한다. 자원과 공감한다. 미래 세대와 공감한다. 그래서 조절한다. 스스로.
인간이 암 같은 존재가 되는 순간이 있다.
자연을 착취만 할 때. 나무를 벤다. 심지 않는다. 물고기를 잡는다. 회복을 기다리지 않는다. 석유를 뽑는다. 대안을 준비하지 않는다.
회복을 허용하지 않을 때. 숲이 재생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리지 않는다. 계속 벤다. 어장이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리지 않는다. 계속 잡는다.
다양성을 제거할 때. 단작 농업. 하나만 심는다. 효율적이다. 하지만 취약하다. 병충해에. 기후 변화에. 획일적 기술. 하나만 쓴다. 편리하다. 하지만 위험하다. 그것이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진다.
자연과 공감하지 않는 존재는 스스로를 숙주로 삼는 암이 된다. 암세포가 숙주를 죽이듯. 인간이 지구를 죽인다. 지구가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수명을 본다. 과학이 발전했다. 의학이 발전했다. 평균 수명이 늘었다. 100년 전 50세. 지금 80세. 좋다. 하지만 충분한가.
노년을 본다. 오래 산다. 하지만 고통스럽다. 병이 많다. 외롭다. 의미가 없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모르겠다.
요양원을 방문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오래 사셨다. 80세. 90세. 하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멍하게 앉아 계셨다. TV를 보셨다. 대화가 없었다. 의미가 없었다.
사회가 변하고 있다. 정신 치료. 심리 상담. 늘어난다. 돌봄. 케어. 중요해진다. 존엄사. 논의된다. 연명 치료. 거부할 권리. 인정된다.
생존 연장은 목적이 아니라 조건에 불과하다. 오래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의미 있게 사는 것이 목적이다. 공감하며 사는 것이 목적이다.
스스로 무로 돌아가는 선택을 본다. 조력 자살. 스위스에서 합법이다. 존엄사. 네덜란드, 벨기에에서 합법이다.
논란이 있다. 윤리적 문제. 종교적 문제. 하지만 선택한다. 어떤 사람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느낄 때. 고통만 남았을 때. 존엄을 지키고 싶을 때.
충동적 죽음과는 다르다. 우울증. 절망. 순간적 선택. 그것은 막아야 한다. 도와야 한다. 하지만 깊이 고민한 끝의 선택. 존엄을 위한 선택. 다르다.
공감이론으로 다시 본다. 이는 삶의 부정이 아니라 존재 순환에 대한 능동적 이해다. 나는 충분히 살았다. 이제 다음에게 자리를 내주겠다. 무의 관성을 받아들이겠다. 순환에 참여하겠다.
두렵다. 슬프다. 하지만 이해한다. 모든 존재가 가는 길이니까. 나만 예외일 수 없으니까.
유한함 속에서만 가능한 것들을 본다.
시간이 제한될 때 관계는 깊어진다. 영원히 만날 수 있다면. 오늘 안 만나도 된다. 내일 만나도 된다. 대충 대한다. 하지만 시간이 제한되면.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으면. 진지해진다. 깊어진다.
할머니를 뵀다. 아흔이셨다. 오래 못 사실 것 같았다. 매번 만날 때마다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진지하게 들었다. 말씀을. 손을 꼭 잡았다. 기억하려 했다. 얼굴을. 목소리를. 그분이 돌아가셨다. 슬펐다. 하지만 후회 없었다. 최선을 다했으니까.
선택이 진지해진다. 시간이 제한되면. 모든 것을 할 수 없으면. 골라야 한다. 신중하게. 무엇이 중요한가. 무엇이 의미 있는가. 깊이 생각한다. 선택한다.
사랑이 절실해진다. 영원히 함께할 수 없으면. 지금이 소중하다. 이 순간이 전부다. 더 사랑한다. 더 표현한다. 더 함께한다.
공감은 유한한 존재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끝이 있기에 소중하다. 사라지기에 의미 있다. 영원하면 당연해진다. 의미 없어진다.
정리한다.
존재의 가치는 오래 사는 데 있지 않다. 유한함을 알고 무의 관성과 조화를 이루며 타인과 공감하는 데 있다.
오래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의미 있게 사는 것이 목적이다. 무한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유한함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적이다.
암을 다시 본다. 무한을 추구했다. 죽지 않으려 했다. 결국 모두 죽였다. 자신도 죽었다. 무한을 향해 도망친 존재의 최후다.
생명을 다시 본다. 유한함을 받아들였다. 죽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한다. 번식한다. 공감한다. 다음 세대를 남긴다. 유한을 받아들인 존재의 완성이다.
존재는 무한을 향해 도망칠 때 붕괴하고 유한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