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이렇게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일까요. 막연히 걱정과 고민만 하기보다는 진취적인 사고와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입대 전 경험한 작은 성공은 군에서의 자격증 취득, 독서 50권 등의 자기 계발로 이어졌고 자신감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채 군에서 전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복학해서는 주변 환경이 이 전과 많이 달랐습니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과의 경쟁이 아닌 군에서 전역한 복학생들과 경쟁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매 수업 강의를 듣는 태도가 바른 학생들을 보며 확실히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와야 철이 든다는 것을 이때 느꼈습니다. 그 결과 신입생 시절보다 더 많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점은 올랐지만 등수가 다시 200명 중 18등으로 떨어져 70만 원의 장학금만 받게 되었습니다. 운동을 그만두고 계획한 것들을 차근차근 이루어 나가다 잠시 주춤하게 된것이죠.
2학년 1학기를 마친 여름방학 ‘지금 내가 갖고 있는 학벌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대로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경기대학교, 야간대학, 체육대학, 선수 출신이라는 저의 환경과 배경만 고려하면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초점을 환경보다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 맞추어 보니 실력만 갖추면 선수 출신이라는 배경은 체육과 스포츠 분야에서는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자 선수 출신이라는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탐색하게 되었고, 영어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어공부를 초등학교 이 후로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 완전 초보였지만 '공부는 하면 된다.'는 것을 경험한 후였기에 자신감을 갖고 영어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3살 여름방학은 친구가 추천해 준 단어책과 기초문법책과 함께 뜨겁게 보냈습니다. 이때 시작한 영어공부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전액 장학금을 목표로.
영어 단어와 씨름하며 뜨거운 여름을 보낸 후 2학기 개강을 하며 다시 한 번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전 과목 A+, 수석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자기 계발서를 보고 만들었던 전 과목 A+를 받은 성적표를 지갑에 넣어가지고 다니며 학교 가는 길마다 혼잣말로 ‘나는 전액 장학생이다, 나는 전액 장학생이다.’를 되뇌며 공부를 했습니다. 2학년 1학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과 미래에 대한 고민은 목표를 향한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해주었습니다.
'나는 수석장학생이다.' 끊임없이 자기 암시를 하며 보낸 2학기를 마치고 받아들인 성적표에는 A+학점이 가득했지만 아쉽게도 한 과목에서 B+의 학점이 나와 4.5점 만점의 수석이라는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평균 평점은 4.3, 석차는 4등을 기록하여 70%의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다시 시작했던 공부에서 2년 4학기 동안 매 번 장학금을 받게 된 것입니다. 첫 학기 일관된 노력으로 시작된 작은 행운과 성공경험이 연속적인 성공경험으로 이어진 것이죠.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 인생에 인생에 큰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을 했던 경험들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축구선수로서의 실패가 다른 실패가 아닌 학업에서의 작은 성공들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경기대학교에서의 2년을 돌아보면 항상 목표에 약간 못 미치는 결과를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가 나온 후에는 늘 기뻐했습니다. 후회가 없었죠. 운동을 그만두었을 때도 비록 축구선수라는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성실했고 그로 인한 성장을 경험했기에 미련이나 후회가 남지 않았습니다.
스무 살 운동을 그만둔 후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과 새 출발에 대한 약간의 설렘 그리고 성취의 기쁨을 느끼며 군생활을 포함한 4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20대 중반의 초입인 24살,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영어공부'를 통한 인생을 건 큰 도전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