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창희 Aug 08. 2020

스무 살에 은퇴한 축구선수,
잘 살고 있습니다.(4)

도약과 좌절의 시기, 고등학교

도약과 좌절의 시기고등학교                                                  

  2002년 부평고에 입학했습니다. 그 해 3학년 선배들은 전국 대회 우승과 3위를 차지하였고, 2학년 선배들은 본인들이 3학년이 되었을 때 전국 대회 3관왕을 차지했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천수, 최태욱, 김정우, 조용형, 김형일, 이근호, 하대성 등 여러 명의 국가대표를 배출한 상황이었으니 부평고는 명문을 넘어 황금기를 구사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왜 ‘명문이 명문이 되었는지'를 부평고에 진학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내부 경쟁에서 이기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훈련에 집중하는 선배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해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해였기에 김남일, 이천수, 최태욱을 배출한 부평고등학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최고조에 달해 부평고에 속해있다는 것만으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최고참에서 다시 막내로 돌아가 숙소 생활의 궂은일을 도맡아 해야 했고 선배들이 시합을 갈 때는 학교에 남아 1학년들끼리 자체 훈련을 해야 했으므로 1학년은 어영부영 보내다가 본격적인 겨울 동계훈련 시즌이 찾아왔습니다. 이 시기에 내 년을 위한 구상과 계획이 이루어지기에 안일했던 마음을 고쳐먹고 열심히 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만큼 열심히 했습니다. 3학년 경기에 교체로라도 따라가는 것을 목표로 1차, 2차, 3차 전지훈련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즐겁게 운동을 했습니다.


딱 한 번,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감독님께서도 팀 미팅 시간에 가장 실력이 향상된 선수로 저를 꼽으며 칭찬을 해주셨기에 자신감을 갖고 3학년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매일 밤 팀 미팅을 통해 다음 날 훈련 스케줄이 발표되었습니다. '3학년은 어디서 경기를 하고, 2학년 중에서 누구누구는 거기에 따라간다. 나머지는 어디에서 운동을 한다.' 코치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제발 한 번만 3학년 경기에 따라갈 수 있기를, 제 이름이 불러주기를 기대했지만 감독님의 구상에 저는 없었는지 한 번도 3학년 경기에 올려 뛰지 못한 채 동계훈련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면담을 신청해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무릎이라도 꿇었을 텐데요. 그때는 그런 용기가 없었나 봅니다. 

 

  ‘올려 뛰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선수가 될 수 있을까.’ 동계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이 고민만 했습니다. 같은 훈련 시간에 3학년과 올려 뛰는 2학년이 운동장 한쪽 면을 쓰고, 나머지 2학년과 신입생들이 나머지 면에서 운동을 했습니다. 올려 뛰어도 불투명한 미래인데 후배들과 운동을 하고 있으니 마음의 심란함은 커져만 당연히 운동도 설렁설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마음의 심란함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은 저를 무기력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2학년 4월에 감독님께 다른 학교로 이적을 권유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머니와 함께 이야기를 들었는데 얼마나 죄송하고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 말을 듣고 명문학교이지만 내부 경쟁에서도 이기지 못하는데 길게는 10년에 걸쳐서 잘하는 사람만 선발되는 ‘국가대표’라는 궁극적인 꿈을 이루기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모님께는 "운동을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봐서라도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라고 말씀드리며 축구부 숙소에서 짐을 뺐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스무살에 은퇴한 축구선수, 잘 살고 있습니다.(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