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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희 Aug 08. 2020

스무 살에 은퇴한 축구선수,
잘 살고 있습니다.(5)

방황을 끝낸 아버지의 노력

방황을 끝낸 아버지의 노력                                             

  고물상을 하셨던 저희 아버지는 시간의 여유가 있어 대회 때마다 쫓아다니셨고, 학교 근처 거래처에 들리는 날에는 늘 운동장 한 편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가시곤 했습니다. 그때는 부모님이 학교에 와서 수고하고 애쓰시는 모습이 너무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부모님의 자식사랑의 표현이자 여가의 수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평고에서 운동을 그만두고 한 달 정도 일반학생과 같이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5년 만에 제대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 한 달의 시간 동안 학창 시절 처음으로 반 친구들과 이화여대로 소풍도 가보며 심란했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는 평범하게 공부해서 대학에 가겠다고 말은 했지만 한 달 정도 앉아있어 보니 학교 공부는 따라가기 힘들어서 자퇴한 후 검정고시를 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거듭되는 설득과 부탁

  그러나 1년 6개월이 지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야 하는 상황에서 부모님은 지금까지 해왔던 운동을 통해 대학이라도 가기 바라셨습니다. 처음에는 운동을 하기 싫다고 했지만 직접 발 벗고 나셔서 테스트 자리를 마련하신 아버지를 위해서 정명고등학교에서 며칠 훈련을 했습니다. 

     

  비록 부평고에서는 자리를 잡지는 못했지만 실력에 자신은 있었는데 거절을 당했습니다. 또다시 좌절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당시 정명고 감독님께 받아달라고 부탁하시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제가 월등하게 잘하지 않았으니 자리가 차 있는 상황에서 받아줄 수는 없었겠지만 다시 한번 선수가 되기 힘들겠다는 확인을 받은 셈이었기에 검정고시를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자퇴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시지 못한 부모님께서 애를 쓰셔서 운봉공고(현 인천 하이텍고) 감독님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만남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될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같은 지역에 있었기에 운봉공고 감독님은 저를 잘 알고 계셨고 마침 선수층도 얇은 상황이라서 운봉공고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자퇴와 검정고시만을 생각했었지만 애쓰신 부모님을 봐서라도 이 전 보다 더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3개월 정도의 공백을 극복하고, 실력으로만 인정받는 각오로 개인훈련을 이전보다 더 체계적으로 했습니다. 그 결과 열심히 하는 저를 따르는 후배들도 생겨 저녁 개인 운동시간에는 제가 코치가 되어 동기, 후배들과 훈련을 했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성실하게 운동을 한 결과 몸이 만들어졌고 여름이 지나면서 3학년 경기에 올려 뛰게 되었습니다. 부평고보다 전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많은 기회를 잡게 되었고 성적은 별 볼일 없었지만 경기를 나갈 수 있다는 데 만족하며 개인의 성장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적으로 인한 3개월의 출전 정지 기간이 끝나고는 3학년 대회에 올려 뛰며 팀으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제 자신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었고 자신감을 갖고, 3학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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