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이, 그 아늑한 며칠.

자연 속 방갈로에서 마주한 가장 단순한 평온.

by 나들레



치앙마이에서의 7일 여행을 마치고,

나는 다시 빠이로 행했다.


번잡한 쇼핑몰과 카페, 시장의 소란을 뒤로하고, 이번엔 조금 더 느긋하게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험난했던 3시간의 산길을 지나 마침내 도착한 그곳. 다섯 해 만에 다시 마주한 빠이의 공기엔 묘한 익숙함이 섞여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지난번과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방갈로 숙소'를 예약했다. 도시 생활이 길든 나에게 자연 속 숙소는 모험이었다. 하지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어, 큰맘 먹고 예약 버튼을 눌렀다.


...




빠이 미니밴 정류장, 그러니까 빠이 야시장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였다.

날씨는 푹푹 찌고, 택시는 지나치게 비쌌으며, 기사님들은 굳이 내 옆에 와서 호객 행위를 일삼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바일 교통 앱을 켜봤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곧 삶은 달걀이 될 것 같은 더위를 감수하며, 튼튼한 몸뚱이를 믿고 씩씩하게 걸어가기로 했다.


뜨거운 날씨 탓에 휴대전화도 나처럼 열받았는지, 갑자기 얘도 과열되면서 보고 있던 지도 앱이 먹통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숙소 사장님에게서 안부 연락이 왔고, 먹통인 핸드폰을 들고 체크인 시간이랑 현재 내 상태만 간략하게 전달했다.


다행히 지도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대략 어느 방향인지 알고 있었다. 감에 의지해 거의 다 달았을 때쯤, 회색빛 차가 내게 다가왔다. 낯선 사람이라 멀찍이 떨어지려는데, 운전석에는 반갑게 맞아주는 사장님 남편, 조수석에는 환하게 웃어주는 사장님이 앉아 있었다.


"더우니까 어서 타요!"


알고 보니 연락이 끊긴 동안 나를 태우려고 열심히 찾고 계셨다고 했다. 남은 거리는 5분 남짓이었지만, 그때 시원한 에어컨 바람은 천국 같았다.


...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정신을 쏙 빼놓는 '극기 훈련' 같았지만, 이런 고생이 있어야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니까.





나를 데리러 온 부부는 이곳 방갈로와 자연을 정성으로 가꿔온 주인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느꼈던 건, 정말 자연 그 자체였다. 도어록 대신 자물쇠 하나, 들려오는 건 새소리와 바람 소리뿐이었다. 숙소에는 기성품들이 거의 없었는데, 알고 보니 직원 한 분이 방갈로, 가구, 오두막 등 숙소에 있는 대부분을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내 숙소 앞 나무 의자도 그분의 작품이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그의 실력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민트색 벽과 나무 가구가 어우러진 실내는 앤티크 하면서도 아늑했다. 물 두 병, 냉장고, 커피포트, 멀티탭까지. 예상외로 센스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첫날밤 씻고 나니, 있어야 할 드라이기가 없었다. 말씀드리자, 다음날 아침 바로 가져다주셨다.

뿐만 아니라, 체크인 직후에는 숙소 와이파이 비밀번호와 배달 앱을 정보까지 바로 알려주셔서, 작은 편의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신경 써주시는 느낌이 들었다. 덕분에 여행 시작부터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그제야 나는 이 아늑한 방갈로 내부를 천천히 둘러볼 여유를 찾았다.


거실에는 작업용 테이블, 푹신한 쿠션이 깔린 나무 의자, 원형 탁자, 스탠드 조명, 그리고 전신 거울이 배치되어 있었다. 실내에 그려진 벽화는 사장님이 직접 그리신 작품으로, 섬세한 색감과 그림 솜씨가 돋보였으며, 전체적으로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더했다.





침실은 분홍빛 벽과 접이식 문으로 거실과 자연스럽게 구분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뽀얗고 호텔 침대 같은 침대, 시원한 에어컨과 리모컨, 옷걸이와 세탁 바구니, 커다란 샤워용 수건 두 장이 있었다. 벽에는 라탄 장식이 붙어 있었는데, 접착력이 약해 며칠 사이 하나둘씩 침대 쪽으로 떨어졌다. 소소한 불편함은 있었지만, 숙소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와 오히려 잘 어울렸다.





다음 화장실 겸 샤워실은 반 야외 구조였다. 천장만 덮여 있어 새소리, 바람 소리, 오토바이와 차 소리까지 있는 그대로 들렸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어릴 적 할머니 댁의 낡은 야외 화장실을 떠올리며, 점차 익숙해졌다.


온수기도 있었고, 샴푸와 바디워시도 기본제공되었지만, 방갈로인 숙소의 특성상 챙겨 왔던 샤워기 필터가 금세 까맣게 변했다. 이렇게 빨리 변하는 걸 보니, 새 필터로 바꿔도 소용없을 거 같아, 결국 이곳 환경에 맞춰 적응하기로 마음먹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숙소의 진짜 주인들이 나타났다.


도마뱀, 개미, 이름 모를 팅커벨(= 벌레).

첫날엔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 소리 지르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이틀째부터는 조금씩 익숙해져 '아, 너희 또 왔구나' 하며 인사할 수 있게 되었다.


벌레들이나 동물을 무서워하는 편이라 등장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들이 토박이 주민이고 난 잠시 머무는 여행자일 뿐이니....서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공존하기로 했다.


과거에 벌레들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벌레 퇴치제(살충제). 진드기 시트, 돌돌이, 물티슈 등 퇴치용품을 꼼꼼하게 챙겨갔다. 객관적으로는 이런 준비물까지 챙겨서 갈 정도면 이런 숙소를 피하는 게 맞다. 하지만 나는 사람 많고 번잡한 곳보다, 자연 친화적인 곳이 주는 위안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로컬식 공용 부엌이 있었다. 조리도구, 식기류,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싱크대, 조미료까지 없는 게 없었다.


나는 해외에 오면 누가 만들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해 이곳에 자주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초록빛 풍경과 한가로이 풀 뜯는 소들을 구경하려고 내려왔다.


...




사실 이 숙소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이 풍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벌레들 때문에 걱정이 많았지만, 한국에서부터 꼼꼼히 준비하고 왔기에 괜찮았다. 그리고 그 풍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낮엔 푸르고 밤엔 감성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꿈꾸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했다.





숙소도 만족스러웠지만,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사장님 부부의 친절함이었다. '슈퍼 호스트'라는 타이틀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첫 방갈로 경험이 너무 좋아, 방갈로마다 인테리어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자, 다음에는 꼭 다른 곳에서도 머물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그때도 변함없이 이 자연이
나를 반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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