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이까지 3시간, 멀미보다 깊었던 순간.
2019년에도 배낭 여행객의 성지라 불릴 만큼 이미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험난한 여정이 기다린다. 한국의 고속도로처럼 반듯하지 않은 길을, 특정 좌석 외에는 불편한 차를 타고 좌우 심하게 흔들리는 미니밴에 몸을 맡기며 약 3시간 동안 이동해야 했다.
5년 전, 더 낡은 미니밴으로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겪어봤던 터라 이번에는 조언 없이도 미리 대비했다. 하루 전 약국에서 멀미약을 처방받았고, 약사님은 말하셨다.
"빈속에 먹어도 괜찮고, 출발 전 최소 30분~1시간 전에 1정 먹고 차에서 자면 돼요."
...
덕분에 멀미는 피했지만, 태국 멀미약의 독함은 여전했다. 5년 전 경험과 같았는데, 약 먹은 후 몸은 무겁고 정신이 몽롱했다. 나뿐만 아니라 빠이에서 만난 한국인 한 분은 웃으며 말했다.
"두 알 먹으라고 해서 먹고 차에 타자마자 기절하듯 잤는데, 도착해서도 하루 종일 잤어요"
이처럼 멀미약이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셈이었다. 한 알만 먹어도 몽롱하고 피곤할 수 있으니 이점을 참고해서 복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 터미널 옆 편의점에서도 멀미약을 구매 가능.
* 멀미약 종류마다 복용량 확인 필요.
약사님 조언대로 멀미약을 잘 챙겨 먹고 미니밴을 타러 갔다.
빠이행 미니밴은 치앙마이 아케이드 버스터미널(Chiang mai Acade2)에서 출발한다.
이름이 비슷한 터미널이 여러 곳 있어 헷갈리기 쉽다. 지도 앱에서 아케이드 2 표시를 꼭 확인해야 한다. 나 역시 초행길이라 처음 찾을 때 한참을 헤맸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은 무거운 짐 들고 방황하지 않기를 바란다.
빠이행 터미널을 찾는 과정에서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편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이유로 모바일 교통 서비스를 이용해 터미널로 향하던 중, 조금 이상한 기사님을 만났다. 하마터면 미니밴을 놓칠 뻔했다.
문제는 잔돈 때문이었다. 기사님은 터미널과 떨어진 편의점에서 잔돈 바꿔 오라고 요청했다.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분주하게 편의점으로 달려갔다가 돌아왔다. 그 사이 기사님은 느긋하게 차 안에서 쉬고 있었고 결제도 엄청 느긋하게 처리했다. 게다가 약속한 장소보다 조금 멀리 내려주었으면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안내해 주지 않았다. 짐을 내리고는 자기 차 고치기에만 바빴다. 여러 기사님을 만나봤지만 이렇게 예의 없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 당시 기분은 나빴지만, 덕분에 모바일 교통 이용하기 전에는 꼭 넉넉한 잔돈을 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길렀다.
시간이 촉박했기에,
결국 무거운 짐을 챙겨 부랴부랴 달려갔지만...
그곳은 빠이행 터미널이 아니었다.
근처 현지인들에게 물어물어 정신없이 반대편으로 달렸다. 다행히 내가 예약한 미니밴은 출발 전이었고, 아직 짐도 싣지 않은 상태였다. 땀구멍이 다 열렸던 그때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정신을 바짝 차린 덕도 있지만
운이 좋았다. 정말로.
5년 전, 빠이로 떠날 때 입었던 추억의 바지를 그대로 입고, 조수석에 다시 한번 착석했다. 이 자리는 넓고, 시야가 탁 트여 있어 멀미가 있거나 몸이 불편하다면 무조건 예약하기를 추천한다. Prempracha 차량은 깔끔했고, 기사님도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계셨다. AYA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프리미엄 미니밴' 느낌이었다.
*조수석 예약은 출발 2일 전이면 무리 없이 선점 가능.
차량이 깨끗한 이유도 이해가 갔다.
차 안에서 음식 섭취와 흡연이 금지였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여긴 워낙 자유로운 여행자들이 많다 보니 안내문을 여러 개 붙여둔 듯했다.
오랜 시간 이동하는 만큼, 빠이행 미니밴 좌석 선택은 생각보다 중요했다. 좌석마다 편차가 크기 때문에, 편하게 가려면 '파워 J'의 계획 능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 1A 좌석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기사님 옆 조수석이 가장 넓고 편안하다.
다리 공간도 여유롭고 창밖 시야도 좋아 장거리 이동에 최적이다.
‣ 2A 좌석
문 바로 앞이라 타고 내리기엔 편하지만, 옆 좌석(2D)과 딱 붙어 있고, 사진과 같이 짐을 옆에 묶어놓기 때문에 매우 좁다.
‣ 3A 좌석
부득이하게 뒷좌석에 앉아야 한다면 3A를 추천한다.
조수석 다음으로 넓고, 시야가 트여 있어 답답하지 않다.
돌아오는 길에 앉아 보니 여러모로 편했다.
‣ 그 외 좌석
가능하면 최대한 피할 수 있으면 피하자.
조수석을 제외한 다른 자리는 위 사진처럼 좌석표가 걸려 있었다. 빠이로 가는 차에는 없었지만, 돌아오는 차에는 걸려 있어 자리 찾기가 한결 쉬웠다.
...
빠이로 가는 모든 승객이 착석하고 짐을 실은 후, 드디어 빠이로 떠났다. 처음에는 평탄한 도로였지만, 빠이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점점 꼬불꼬불해졌다. 멀미약을 먹었지만 차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고 몸이 계속 움직여 쉽게 잠을 들 수가 없었다.
처음엔 놀이기구 타는 듯 즐거웠지만, 시간이 길어지자 점차 피로가 몰려왔다.
...
이리저리 흔들려 정신이 아득해지고, 피로가 서서히 몰려올 즈음이었다. 우린 산 중턱의 작은 휴게소에 잠시 멈췄다. 3시간 여정 중, 중간쯤에서 15~ 20분 남짓한 휴식이 있었다.
휴게소는 허름했지만, 어딘가 운치 있었다. 그곳은 현지인과 여행자가 함께 뒤섞여 있었고, 가격은 약간 비쌌지만, 그 풍경이 값을 했다.
기사님은 이곳 물가를 잘 아시기에 이동하던 중간에 도시락을 미리 포장해 오셨는데, 가성비를 원한다면 미리 간식을 챙겨 오고, 여유롭고 낭만적인 경험을 원한다면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 마셔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나라와 다른 게 화장실 사용료가 있었고, 양변기가 아니었다. 사용료는 5밧에 휴지 포함이니, 입구 앞에 있는 휴지를 챙겨 들어가면 되고, 동전만 받으니 미리 준비하면 편하다.
...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다시 차로 돌아오려는데, 한 서양인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너 앞자리에 앉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직감했다.
'아! 이 여자 자리 바꿔 달라고 말하겠구나.'
즉시 거절하려는 마음이 스쳤지만, 우선 그녀의 말을 차분히 들어보기로 했다.
"내 자리는 뒷자리인데, 토할 것 같아요. 지금 뱃속에 아이가 있는데, 이 자리가 너무 좁고 불편해서요.... 자리 바꿔 줄 수 있을까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그녀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상의는 탱크탑이었고 배가 볼록하게 불러 있었다. 내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을 투자해 이 앞 좌석을 예약했기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뱃속의 아이가 있다는 말에 마음이 약해져 결국 조수석을 양보하기로 했다.
그 결과, 나는 좁고 답답한 뒷좌석 2인석 안쪽에 앉게 되었다. 누구라도 피하고 싶어 할 자리였다. 다행히 이동 시간은 1시간 반 정도였지만, 만약 3시간을 꼬박 이동해야 했다면, 어떤 이유가 있어도 단호히 거절했을 것이다. 평소에는 멀미가 거의 없는 나였지만, 그 좁은 자리에서는 멀미 비슷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하차 후 그녀는 여러 번 감사 인사를 건넸다.
솔직히 시간과 돈을 내고 예약했음에도 불편한 자리에 앉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 뱃속의 아이 덕분에, 흔치 않은 특별한 경험을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예상치 못한 소중한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따뜻했다.
만약 내가 그녀처럼 눈에 띄게 배가 불러 있었다면, 조심했을 텐데. 차량도 불편하고, 길도 험하고, 이동 시간도 길어, 같은 여자로서도 혼자 여행하는 사람으로서도 이해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사연이 있을 것이고, 우리 문화와 다른 상황이라는 점에서 있는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자리를 양보한 지 벌써 1년 가까이 되었다. 그때 그녀와 뱃속의 아이가 지금쯤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을까. 문뜩 안부가 궁금해진다.
...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갈 때 헷갈리지 않도록 정류장 간판을 꼭 확인하길 바란다. 바로 옆 AYA 회사 정류장이 있어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헷갈리기 쉽다.
도착의 설렘보다 중요한 건,
무엇보다 돌아가는 길을
잊지 않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