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페 게이트에서 만난 청춘들의 땀방울, 그리고 탕후루의 온기.
치앙마이에서 가장 큰 축제답게 타페 게이트(Thapae Gate)는 이미 인산인해였다. 평소에는 여행자들의 전유물 같던 광장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도시의 모든 이들이 쏟아져 나온 듯했다. 주황빛 가사를 걸친 스님부터 오순도순 나들이 나온 가족들, 손을 잡은 노부부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기대를 품고 밤의 공기를 촘촘히 채우고 있었다.
러이크라통 축제라고 하면 흔한 강가에 꽃 배를 띄우거나 하늘로 수만 개의 등불을 날리는 장면을 떠올린다. 하지만 여행자들을 위해 마련된 그 화려한 행사의 입장료는 꽤 현실과는 아득히 거리가 멀었다. 한국에서 이런 행사 있다고 해도 선뜻 지갑을 열기 힘들 만큼의 금액이었다. 나는 그 비싼 등불 하나를 날리는 대신, 무료로 누를 수 있는 거리의 소란을 선택하기로 했다. 축제의 진짜 민낯은 격식을 차린 행사장 안이 아니라, 누구나 스며들 수 있는 이 시끌벅적한 길 위에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나이트 바자 근처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거대한 퍼레이드 차가 웅장한 음악과 함께 등장하며 도로는 거대한 무대로 변했다. 화려한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탄성이 터졌다. 5시간 넘게 이어진다는 퍼레이드는 흡사 놀이공원의 퍼레이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눈부시고 흥미진진했다.
이 행렬은 태국 전역의 대학교들이 이름을 걸고 참여하는 축제였다. 그래서일까, 유독 눈길을 끌었던 것은 대열을 메운 학생들의 생동감 넘치는 얼굴이었다. 세월의 흔적 하나 없이 매끄럽고 팽팽한 그들의 미소를 보며 나는 속으로 나직이 읊조렸다.
'역시, 청춘보다 더 화려한 장식은 없구나.'
하지만 그 화려한 옷매무새 뒤에는 묵직한 프로 정신이 숨어 있었다. 무거운 장식물을 착용하고 들고도 미소를 잃지 않는 여학생들과, 웃통을 시원하게 드러낸 건장한 남학생들. 문득 아주 오래전 좋아했던 5인조 시절 동방신기의 잔근육이 섞인 등판 이후로, 이렇게나 정직하고 건강한 등 근육을 마주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국적을 초월한 그 건강미 앞에 나는 잠시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공들여 빚어낸 듯한 건강한 몸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몇 시간째 행진을 멈추지 않는 청춘들. 그 맑은 미소 뒤에는 경련이 일어날 듯한 근육의 비명이 숨어 있을 터였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무거운 전통 의상을 견디며, 높은 굽 위에서 꼿꼿하게 걷는 모든 이들의 애씀이 내 눈에는 너무나 투명하게 읽혔다. 그 정직한 노고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일뿐이었다.
혼자 시작한 구경이었지만, 어느새 나의 곁은 사람들의 온기로 금세 채워졌다. 내 바로 앞에는 수줍음 많은 꼬마 아이를 둔 현지인 가족이 서 있었다. 아이는 화려하게 지나가는 행렬 속 형과 누나들에게 손을 흔들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쑥스러운지 발만 동동 굴렀다.
아이들을 유독 좋아하는 나의 '오지랖'이 발동한 건 그때였다. 평소 극내향인(I)을 자처하며 낯가림의 성벽 뒤에 숨던 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이를 위해 기꺼이 가면을 벗기로 했다. 아이 대신 힘껏 손짓하고, 온갖 '매력 발산'을 하며 행렬의 시선을 우리 쪽으로 끌어모았다. 결국 화려한 주인공들의 다정한 눈길이 아이에게 가닿았고, 아이의 얼굴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미소가 말갛게 번졌다.
그 작은 사건 하나로 우리는 금세 식구가 되었다. 축제를 구경한 뒤, 낯선 이방인에게 탕후루를 기꺼이 사주며 근처 야시장을 구경시켜 주던 다정한 엄마. 그리고 핑강 근처에 산다며, 딸아이가 너무 피곤해한다며 밤늦게 조용히 떠난 그들의 뒷모습까지.
3시간 넘게 서 있느라 다리는 이미 감각이 무뎌진 지 오래였지만, 그들과 나누었던 소소한 대화와 방울토마토 탕후루의 달콤함은 피로를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유명한 등불을 올리지도, 강가에 꽃 배를 띄우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밤, 타페 게이트의 길 위에서 치앙마이의 가장 깊은 온도를 보았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멀리 떠나오는 걸까. 하늘로 날려 보낸 등불의 궤적일까, 아니면 예상치 못한 길 위에서 마주친 다정한 시선들일까.
내 손을 떠난 꽃 배는 없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미 이름 모를 이들이
띄어준 온기가 은하수처럼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