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마신 건 버블티가 아니라 골목의 온도였다.

닫힌 문 앞에서 우연히 마주한, 치앙마이의 정직한 식탁.

by 나들레



이방인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싶어질 때면, 나는 그들의 일상이

가장 가감 없이 흐르는 골목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었다.


마지막 숙소 앞, 현지인들의 참새 방앗간이라던 버블티 가게도 그렇게 만났다. 호스트가 입이 마르게 칭찬했던 그곳은 근사한 테이블 하나 없었지만, 벽 한편에 무심히 붙은 작은 간판 하나가 이곳이 가게임을 조용히 알리고 있었다. 따로 문 열고 들어갈 필요도 없이 길 한복판에 툭 불거진 카운터가 전부였는데, 그 앞은 늘 메뉴를 고르는 현지인들의 정겨운 웅성거림으로 길과 가게의 경계가 모호했다.


메뉴판 앞에 서자 수십 가지 선택지가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결정장애가 도진 여행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무심한 듯 다정한 여사장님이었다.


"이거랑 이게 제일 잘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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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의 안목을 온전히 믿고 건네받은 버블티는 놀라웠다. 단것을 즐기지 않는 내 입맛에도, 눅진하고 진한 그 맛은 '적당함'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착한 가격에 믿기지 않을 만큼 푸짐한 양까지. 사람들이 왜 이곳에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건지, 한 모금의 달콤함으로 단번에 이해가 갔다.


어느 늦은 저녁에는 가게 앞에서 뜻밖의 소소한 풍경을 마주하기도 했다. 사장님은 버블티뿐만 아니라 가게 한편에서 소소한 생활 잡화와 폭죽도 함께 팔고 계셨다. 누군가 산 폭죽이 밤하늘로 쏘아 올려질 때면,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불꽃들이 가게 앞을 환하게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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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대를 타고 올라오는 타피오카 펄의 톡톡 터지는 식감처럼, 그 밤의 공기도 불꽃의 온기를 빌려 경쾌하게 터지고 있었다. 달콤한 음료 한 잔과 밤하늘의 불꽃. 그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 묘하게 어우러지던 그곳의 밤은 유독 길게 기억에 남았다.


주변에 워낙 먹거리가 많아 배를 비워둘 틈이 없었다는 건 변명이었을까.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날, 문득 그 진한 달콤함이 그리워 다시 찾았을 때 가게는 굳게 닫혀 있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그 앞을 서성였지만, 주인장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우연으로 시작되어 결국 두 번은 허락되지 않았던 맛. 유독 현지인들의 웃음소리가 자욱했던 그곳은 나에게 신기루 같은 기억으로 남았다.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진심은 왜 늘 예고 없이 찾아왔다가, 준비된 재방문 앞에서는 자취를 감추는 걸까.


그날 내가 마신 것은 단돈 몇 푼의 버블티였을까, 아니면 다신 돌아오지 않을 그 골목의 온도였을까.


우연이 닫아버린 문은 때때로 미처 짐작하지 못한 다른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버블티 가게 근처, 원래 가려던 식당이 굳게 닫힌 것을 보고 허탈하게 발길을 돌렸던 날이었다. 아쉬운 대로 노선을 틀어 근처 골목을 기웃거리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식당 하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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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외국인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오직 생활감이 묻어나는 차림의 현지인들이 익숙한 듯 자리를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평소 태국 음식을 즐기지만, 관광객의 입맛에 맞게 정제된 식단보다는 거친 매력이 살아있는 날것 그대로의 현지식을 유독 편애했다. 어긋난 계획이 선물한, 비로소 마주한 '진짜'들의 식탁이었다.


점심시간의 소란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식당은 나른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듬성듬성 자리를 지키던 현지인 아저씨 몇 분만이 그 고요한 공기를 나누어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메뉴판은 친절했다. 태국어와 영어, 그리고 큼지막한 사진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평소 메뉴판 앞에서 유독 작아지던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고민의 무게를 덜고 맘 편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정확한 이름은 몰라도 상관없었다. 손가락 끝에 의지해 고른 메뉴들이 테이블에 놓이는 순간, 이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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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는 한국의 제육 덮밥을 닮은 매콤한 볶음 요리와 식욕을 돋우는 선명한 주홍빛의 해물 똠얌꿍이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치앙마이의 인심이 유독 넉넉해서, 이곳의 식당들은 대개 메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왠지 모를 욕심이 차올랐다. 어긋난 계획 끝에 마주한 이 뜻밖의 식탁을 온전히 누리고 싶었을까. 혼자 먹기에 과한 주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기꺼이 두 가지 음식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버거운 양만큼이나 묵직하게 차오르는 만족감. 그것은 여행자가 부릴 수 있는 가장 무해한 사치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요리들이 식탁 위를 가득 채우자, 주변에 있던 아저씨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내게로 쏟아졌다. 혼자 온 여행자가 식탁 가득 음식을 펼쳐놓는 광경이 그들에겐 꽤 진귀한 풍경이었던 모양이다. 그 무해하고도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시선들 덕분에 내가 진짜 그들의 일상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실감이 났다. 나는 그 낯선 응원을 반찬 삼아 씩씩하게 숟가락을 들었다.


치앙마이의 넉넉한 인심은 예상보다 훨씬 두터웠다. 결국 다 비워내지 못하고 많은 양을 남겼지만, 식탁 가득 펼쳐진 다채로운 맛들을 탐험할 수 있어 그 자체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분명 낯선 이국의 향을 품은 현지식이었으나, 어쩐지 한국의 칼칼한 감칠맛이 겹쳐 보여 젓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그 풍성한 맛을 음미하는 동안, 나는 잠시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착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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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입맛이 어느덧 결국을 허물고 세계화된 것일까, 아니면 이곳의 공기와 온기에 내가 온전히 스며든 것일까. 숙소 근처 이름 모를 식당에서 마주한 그 멋 부리지 않은 정직한 식탁은, 치앙마이가 내게 허락한 가장 넉넉한 환대였다.


가끔은 텅 빈 배를 채우는 포만감보다, 넘치도록 차려진 식탁 앞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곤 한다. 다 비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두 접시를 주문하게 했던 그날의 그 마음은, 대체 무엇을 그토록 갈구하고 있었던 걸까.


우리가 여행에서 끝내 얻어오는 것은 말끔히 비워낸 그릇의 바닥일까, 아니면 다 담지 못해 남겨두고 온 그 넉넉한 여백일까.



식탁 위에 남겨진 음식들 사이로,
치앙마이의 오후가 느릿하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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