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박제가 아닌 살아있는 파동이었다.

5년 만에 다시 마주한 치앙마이, 변해버린 풍경조차 여행의 일부였음을.

by 나들레



타페 게이트를 가득 채웠던

청춘들의 땀방울과 러이 크라통의

화려한 온기가 공중으로

흩어진 다음 날 낮,

나는 다시 올드시티를 찾았다.


이번 여행에선 줄곧 올드시티의 메인 거리를 비껴갔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5년 전 내가 수없이 발자국을 남겼던 그 길 위로 나를 기어이 데려다 놓고 싶었다.





마침,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낡은 성벽 안쪽을 가로지르는 큰 길은 곧 열릴 선데이 마켓을 예고하듯, 무언가를 준비하는 활기로 기분 좋게 들썩이고 있었다. 내가 올드시티를 편애했던 이유는 명료했다. 고개를 젖혀야 끝이 닿는, 드높고 화려한 사원부터, 골목 어귀에 수줍게 들어앉은 소박한 사원까지. 걷는 발걸음마다 신(神)의 집들이 줄을 서 있는 그 정갈한 밀도가 좋았다.





숙소에서 엄마처럼 다정했던 일본인 친구, 그리고 동갑내기 친구와 보낸 오전의 소란을 뒤로하고 홀로 사원 투어를 시작했다. 5년 만에 다시 마주한 올드시티는 어딘가 낯설었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건지, 아니면 그사이 새로이 둥지를 튼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기자기한 사원들이 골목 곳곳에 예고 없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이름난 대형 사원의 웅장함보다는, 층고가 낮고 색감이 다채로운 작은 사원들에 마음이 머물렀다. 유명세가 덜한 곳일수록 사람들의 말소리는 잦아들었고, 그 빈자리를 고요한 공기와 적당한 습기, 그리고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채웠다. 화려함 뒤에 숨겨진 그 소박한 형체들은 가만히 눈에 담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왓 프라싱'에 닿았다. 5년 전 이곳은 발길이 뜸해 잠시 명상하기 참 좋은 곳이었는데, 주말의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변화한 시간 탓인지 입구부터 인파로 북적였다. 사원 안은 푸릇한 자연과 무지개색 종이 등불들이 어우러져 치앙마이만의 색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변해버린 분위기에 낯섦을 느끼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다채로운 조형물을 하나하나 망막에 새기느라 분주했다.





태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뜨겁게 달아올랐고, 공기는 눅진한 습기를 머금어 몸에 착 감겼다. 시원한 밀크티 한 잔으로 타들어 가는 목을 축이며 숨을 고를 찰나, 거리 위 상인들의 손길이 눈에 띄게 가팔라졌다. 스님과 현지인, 그리고 나 같은 여행자들이 하나둘 섞이더니 어느새 '선데이 마켓'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으로 유영하듯 함께 흘러갔다.





다시 마주한 타페 게이트 앞 너른 마당은 과거의 기억보다 훨씬 더 복작거리는 '만남의 광장' 그 자체였다. 거대한 행사가 뿜어내는 소란함은 마치 휴일의 명동이나 홍대 거리를 옮겨놓은 듯 치열하고도 뜨거웠다. 낭만을 찾아온 여행자의 눈에 비친 활기는, 때로는 설렘으로 때로는 아득한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저녁 약속 장소로 향하던 길, 우연히 내가 사랑하던 소규모 사원과 올드시티를 포근하게 감싸안은 수로를 만났다. 핑강으로 흘러 들어갔다 다시 돌아 나오는 저 물결처럼, 나의 기억도 과거의 자락들을 되새김질하며 고요히 일렁였다.


그렇게 운명처럼 발길이 닿은 곳은 5년 전 내가 9일 동안 머물렀던 정든 동네였다. 베드버그 때문에 서둘러 짐을 싸야 했던 애증의 숙소, 몸이 아파 매일 같이 드나들며 저렴한 가격에 마사지를 받고 선생님들과 소소한 정을 나누었던 물리치료 병원, 그리고 오후 4시 반이면 코끝을 간지럽히던 야시장의 맛있는 냄새까지.





5년 전엔 미처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병원과 투박한 남자 전용 바버샵 같은 일상적인 장소들. 그제야 깨달았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잠시 머물다 가는 화려한 여행자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오늘을 버텨내는 간절하고도 소중한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땀에 흠뻑 젖은 채 올드시티의 인파 속 구석구석을 누빈 하루였다. 내가 사랑했던 로컬의 순수함은 세월의 때가 타 조금 옅어졌지만,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생의 활기가 가득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무심하게 흘러가는 현지의 일상이었다.


상업적인 색채가 짙어진 듯해 못내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 또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그 낯섦까지 기꺼이 받아들이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추억은 박제된 풍경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파동치며 변해가는 생물 같은 것이니까.



어쩌면 우리가 다시 찾은 장소에서
마주한 것은 과거의 내가 아니라,
그 시간을 견디고 다시 그 자리에
선 지금의 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