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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Sep 08. 2022

나만의 방

    어릴 때는 하루 종일 나로 있을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뭔가를 끄적거리고 영화를 보고 싶으면 영화를 볼 수 있었고, 내 생각 속에 빠져있을 수 있었다. 그때는 내가 나로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나 박수종으로 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부터는 내가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똑같이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었어도 완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없었고 늘 내 신경은 아이들에게 쏠리게 되었다. 그것은 아이들에 대한 건강한 관심과 애정이 아니고 나의 강박적인 마음이라 더 힘이 들었다. 

   아까도 노트북과 책을 싸들고 카페로 걸어오면서 이제 드디어 나를 만나러 가는구나, 나로 있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모두 자고 있어서 거실에서 혼자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면서도 많은 휴식시간이 있었어도 진정한 휴식의 느낌이 아니었고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 어려웠다. 버지니아 울프의 < 자기만의 방 >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가 의미하는 자기만의 방이 무엇인지 너무나 이해가 된다. 


   내가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오피스텔이나 사무실 하나를 얻어 나만의 방을 갖고 싶다. 모든 엄마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일하러 나가는 시간이 싫지 않았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나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하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학생들과 수업하면서 교감하고 좋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할 때 사는 느낌이 들었다. 내 수업을 들으며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행복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하고 더 열심히 강의했다. 처음에는 주어진 직업에 어쩔 수 없이 임했다. 허둥지둥 그 시간만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며칠간 수업 준비를 해도 3시간 수업을 채우기 어려웠다. 생각보다 수업이 일찍 끝나버렸을 때 등에서 진땀이 흐른 적도 많았다. 서툴렀고 나에게 질문하는 학생은 나에게 도전하는 것같이 느껴서 분노한 적도 많았다. 실제로 어린 강사가 만만해 보인 나이 많은 현직 원장 선생님들이 그런 투로 이야기한 적도 많았다. ‘교수님이 너무 이상적이다. 현장을 아느냐’ 이런 식의 이야기 한 분들도 많았다. 그때는 발끈해서 정말 이상적인 말들만 내뱉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미워했다. 

   이제는 그런 질문에도 느긋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현실에서 어떤 점이 어려운지, 이런 방법을 적용하기에 문제 되는 부분이 어떤 건지 들어보고 같이 논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강의를 하다 보니 그 과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알고 있는지도 중요하겠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특히 유아교육이라는 학문을 강의하다 보니 내 아이들을 육아하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부분이 많았고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나는 초등학생인 아이를 선행시키려고 수학학원을 보내면서 학생들에게 너무 일찍 학원에 보내지 말라고 이야기해도 될까? 나는 아이들한테 이렇게도 화를 잘 내면서 화내지 말고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다면 되도록 지켜보라고 하는 이야기들이 참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강의하는 일이 나의 육아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제는 공부 안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화가 났지만 학생들에게 아이들이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꼭 공부가 아니라도 아이의 장점을 발견해 거기서부터 칭찬과 격려로 아이가 자신감을 갖고 생활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같이 듣게 되었다. 강의하고 돌아온 나는 아이들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었고 내가 강의하는 사람처럼 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강의 준비하느라 다시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고 아이들을 대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부족하고 실수한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난 아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엄마가 되었을 거고 그 잘못을 깨닫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배움의 과정 중에 지난날 잘못했던 거를 지금도 뜬금없이 사과한다. 그때는 엄마도 잘 몰라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그때 이런 과정 중에 엄마도 사정이 있어서 그랬던 거라고 너를 미워하고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고 설명을 해준다.


    지금도 도서관에 가면 새로 나온 육아서가 있으면 빌려보거나 구입해서 읽어본다. 아이들이 26, 21 세지만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지금도 때가 늦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상처를 다 치유해줄 수는 없더라도 아이들이 알 수 없는 혼돈 속에서 자신을 탓하며 머물러있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독서를 하고 나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기 전까지 나의 늘 불쾌한 기분, 무기력 감등의 원인을 몰라서 혼란스러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과 고통의 정체를 알 수 없어 괴로웠다. 그냥 세상이 이 모양이라고 허무주의에 빠져 이래도 저래도 괜찮다는 냉소적인 자세로 살았다. 부모님들은 사랑이 넘치는 좋은 분들인데 내가 나쁘다, 엄마가 저렇게 화를 내는 거는 내가 잘못해서다라고 생각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내가 잘못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늘 잘못했다고 먼저 사과하고 그 요구를 맞추려 노력하며 살았다. 

   이상하게 억울한 감정, 분노가 일 때도 내가 나쁜 건가 늘 나를 의심했다. 그렇게 풀리지 않는 마음을 갖고 이유 없는 분노가 치밀 때 아이들에 그 화를 푼 적도 많았다. 방향을 잘못 잡은 화는 그렇게 나보다 약한 존재에게 향하는 법이다. 내가 싫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나를 보고 깨달았다. 엄마가 늘 시집식구들에게 힘든 시집살이를 당한 이야기를 나에게 하고 화를 푸는 감정 쓰레기통 역할에 고통을 겪으면서 나도 똑같이 아이에게 엉뚱하게 화를 푼 격이 되었다. 그렇게 방향을 잘못 잡은 분노는 나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이제는 나의 분노와 억울함이 평생 나의 의견을 묵살하고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긴 엄마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렇게 인정하는 게 불효고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천편일률적인 도덕적 잣대는 이렇게 위험하다. 부모는 절대적이고 우리가 이해해야 하고 무조건 순종하고 잘해야 하는 게 아니다. 부모도 잘못할 수 있고 나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다. 내가 책도 많이 읽고, 남들의 상황에서는 잘 판단하고 이해했지만 그것을 나에게 적용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나 자신을 깊이 있게 통찰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한 결과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감정을 잘 들여다보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 감정이 올라올 때 편하게 여러 가지 기분전환 거리로 흩어버리는 과정을 반복할 때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거기 그대로 있으면서 나를 괴롭히다    잘못된 대상에 폭발하기를 반복하고 현실의 인간관계까지 망치게 된다. 엄마에게 그런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여러 번 그 분노를 표출했다. 아직도 다 풀린 건 아니지만 그 과정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엄마가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치매에 걸려서 사과도 할 수 없고, 원래 성격상 본인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는 성격이 아니다, 이상하게 마음이 말랑해지는 느낌이 들고 분노가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부정적인 에피소드에 가려져 있던 엄마의 따뜻했고 좋았던 순간들이 드러났다. 늘 엄마 때문에 힘들었던 사건들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분명히 있었던 좋았던 사랑스러웠던 순간은 기억도 나지 않았었다. 그러다 억눌려 있던 분노와 서운함, 억울함을 내가 원하는 만큼 풀어내고 인정해주자 신기하게 좋았던 일들도 기억났다. 마음의 불편한 감정은 반드시 살피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도 이제는 뭔가 본인도 알 수 없는 힘에 휘둘리는 거라고 한 번 더 이해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도 그랬으니까. 많이 그랬다. 별 말도 아닌 친구의 말도, 아무 의미 없는 지적에도 발끈하고 몇 날 며칠 잠을 설칠 만큼 고통스러웠던 거는 나의 깊은 문제가 건드려져서였다. 그때 조금 더 깊이 들어갔어야 하는데 그냥 그런 말을 한 사람에게 분노하고 미워했다.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들추고 판단하면서 인간관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아직도 그런 습관이 남아있지만 저 사람의 저 행동이나 말이 왜 나를 불편하게 할까 생각해보려고 노력한다. 불편한 지점의 나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 해결책이었다. 상대를 비난하는 것으로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 필요한 것이 나만의 공간이다. 바쁘게 휘몰아치는 일상에서 아침시간이든 저녁 시간이든 나만의 공간에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닦는 일이 꼭 필요하다. 매일매일 운동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 이상으로 필요한 것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찌꺼기를 그때 그때 씻어내는 일, 그렇게 몸과 마음이 가벼워질 때 사는 게 행복해지는 것 같다.


   다 큰 아이인데도 아직도 통제하려는 마음이 넘쳐나고 나의 두려움이 아이들을 숨 막히게 하는 일이 많다. 나의 통제하려는 마음,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마음을 다스려야지 아이들을 통제하고 내 마음에 드는 행동만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긴다. 새기고 새겨도 또 제자리인 것 같아 절망스럽지만 하루라도 새기지 않으면 다 큰 아이들에게 자꾸 나의 문제를 떠넘기게 된다.

   이제는 아이를 온전히 독립시키고 떠나보내는 과정에 있다. 그리고 다시 나로 돌아오는 연습의 과정에 있다. 그 일이 참 슬프다. 어릴 때의 아이 얼굴과 아이의 말들을 많이 떠올린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나에게 살갑게 대하고 귀여웠던 오동통한 얼굴의 그때로 잡아두고 싶은 마음과 매일매일 싸운다. 

   자신의 세계가 생겨서 밖에 나가면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사는 아이들에게 익숙해져야 하는 일에 많은 두려움과 슬픔이 교차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믿고 그들의 세상을 인정해야 하는 일이다. 알고 있지만 어렵다. 그래서 더욱 나 자신의 세상을 잘 세워 보려 한다.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내가 있어야 아이들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25년 동안 접어둔 나를 다시 펼칠 시간이다. 나를 접어두고 나를 잃어버린 채 아이들에게 집중한 시간을 보상받으려 하지 말자. 

   사실 온전히 아이를 바라보고 집중했다면 아무 아쉬움이 없을 것이다. 난 눈으로는 아이들을 바라봤지만 불편한 내 마음 때문에 늘 현실을 떠나 어딘가를 헤매며 살았던 것 같다. 온전히 아이와 놀아주지도 눈을 맞추지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인생의 과정을 잘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잘 떠나보내기 위해 난 나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아이들을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인생길에 힘들지 않게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만 하겠다. 

   내가 되는 시간이다. 내가 나로 서야 하는 때이다. 이제부터 나의 모든 관심과 에너지를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앞으로 나의 인생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 배우고 알아나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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