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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Sep 08. 2022

피아노 치기에 대하여

한 5년 전부터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요즘 아이들이 배우는 시기를 보면 늦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피아노를 처음 배웠다. 늦게 시작해서인지 배우는 속도가 빨랐고 잘한다고 칭찬을 들었다. 체르니 100번은 건너뛰고 바로 30번을 배워도 되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1년쯤 배우다 30번 후반에 어려워지고는 재미가 없어져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곡들의 낱장 악보를 구해 치기도 하고 시험기간에 피아노를 치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렇게 또 잊고 지내다 중 3 때쯤 다시 피아노가 배우고 싶어졌다. 다시 피아노 학원을 다녔지만 한 두 달 만에 또 어렵고 힘든 고비가 왔고 그만두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기악 실습이 필수과목이어서 다시 레슨을 받았는데 그때도 몇 개월 치지 못하고 또 그만두었다.


이렇게만 들으면 피아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피아노를 좋아했기에 여러 번 다시 시도를 했지만 어려운 과정을 극복할만한 의지가 부족했던 거 같다. 그때 체르니 같은 교재로만 시도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곡 위주로 흥미를 유지하면서 진행했다면 계속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유아교육 강사가 되어 교수법에 대해 알게 되니까 그때 내 피아노 선생님들께 조금 원망스러운 마음이 든다. 정말 좋아했다면 그리고 재능이 있었다면 그것도 스스로 극복했겠지 라는 편견이 떠돈다. 그래서 아이들이 조금 하다가 그만둘 때는 재능이 없나 보다, 싫어하나 보다 하고 쉽게 포기한다. 아니면 싫다는 걸 꾸역꾸역 시켜서 다시는 피아노 뚜껑도 열어보지 못하게 만든다.


내 경우만 봐도 그건 아니다. 여러 번 시도하고 아직도 피아노를 놓지 못하고 늘지 않는 실력으로 오늘도 더듬거리며 피아노를 치고 있는 거를 보면 난 피아노 치기와 내가 연주해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를 너무도 사랑한다. 그런데 그 어려운 고비고비를 같이 넘어줄 친절한 선생님이 계셨다면 이 좋은 악기를 더 많은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꼭 재능 있는 천재만이 아니라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연구하고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어쨌든 이런 히스토리를 거쳐서 지금은 일본 애니메이션 곡들을 중급 정도가 칠 수 있도록 편곡해놓은 악보로 신나게 치고 즐거워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오래 즐겨도 머리 아프지 않고 후유증이 없는 몇 안 되는 즐거움이 됐다. 더 나이 들어 집이 단출 해지면 야마하 피아노를 하나 사고 싶은 꿈을 꾸면서...

중급 애니메이션 곡이나 치면서 야마하라니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런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중급 수준이니 더 좋은 피아노로 쳐야 그나마 들어줄 만하겠지라고...


어린 시절 치던 소나티네를 치면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의 나로 돌아간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어릴 때 살던 주택, 밖에 마당이 있고 강아지가 있던 그 시절 어린 나로 돌아간다. 그때의 기분이 그대로 살아난다. 어린 나를 만난다. 텔레비전에서 본 말괄량이 삐삐 주제곡 멜로디를 쳐보고 유행하던 가요의 멜로디를 쳐보며 잊지 않기 위해 계이름을 적어보고 그랬던 때가 생각난다.


세상에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것이 기쁘다. 그 모든 것을 즐기기에도 인생이 정말 짧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책들, 음악들, 가보지 못한 장소들 이제부터라도 그런것들을 즐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사람들 앞에서 들려줄 정도로 실력이 늘지 않아도 좋다. 이제는 생활 속의 예술가가 좀 더 알려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비웃고 조롱하고 무시하는 소리에 움추러 들어 그 예술의 대한 사랑을 접고 내 주제에 뭐, 내가 뭐라고 하는 내면의 비판자를 떠나보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모든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들이 우리를 사로잡고 고통스럽게 했다. 그래서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안정되다는 이유로 선택하고 천재들이 만들어 낸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네플릭스를 보며 공허함을 달래고 있다. 이제는 그냥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것을 즐기고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나마 행복하게 의미 있게 인생을 살아나가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일들이 이런 일들이었다. 재능이 없다고 나 자신이 먼저 비판하고 판단해서 그 마음을 접지 않도록...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남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구경하는 것으로만 보내지 않도록


TV, 넷플릭스, 스마트폰으로 볼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난다. 그러나 그 많은 즐길 거리가 나에게 충만감을 주지는 못한다. 중급의 더듬거리는 실력이라도 내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더 많은 기쁨을 줬다. 그래서 난 죽을 때까지 피아노를 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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