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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Sep 08. 2022

명동돈가스에서 신해철까지

   혼자 명동돈가스를 먹으러 왔다. 1년에 5~6번 정도 혼자 와서 먹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돈까스다. 두툼한 돼지고기 안심을 바삭하게 튀기고 양배추와 단무지, 미소된장국이 곁들여 나온다. 튀김옷이 자꾸 벗겨지는데 벗겨진 튀김옷 하나도 버릴 수 없이 맛있다. 키토 제닉 식단을 하고부터 밥은 거의 남기고 양배추와 국을 다 먹는다.

    명동 돈까스를 처음 먹어본 것은 대학 4학년 때였다. 그때 같이 유치원 교사가 아닌 다른 길을 찾아보는 몇 안되는 동기로 뒤늦게 친해진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내 생일이라고 ‘귀여운 여인’ LP를 선물로 주면서 명동 돈가스집으로 데려가주었다. 그 친구의 외삼촌이 기형도라고 했다. 그때는 기형도를 잘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시집과 책을 찾아보니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 친구는 대단치 않은 듯 이야기해서 나도 잘 몰랐다. 그 당시가 대학 4학년때인 1990년이었으니 그 이후에 더 유명해졌다. 그리고 그 당시는 그가 죽은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너무도 담담하게 이야기해서 지금은 사실 잘 믿기지도 않는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친구와 연락이 끊어져서 물어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근 27년 만에 연락해서 “기형도가 정말 네 외삼촌이었어?”라고 묻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되어 읽어본 그의 산문은 너무도 취향에 맞았다. 장정일이 소년일 때 만났던 에피소드는 나도 인상 깊게 봤는데 그 후 누군가의 에세이에서도 등장해 너무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책을 좋아하고 읽는 사람들끼리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 유병욱의 < 평소의 발견 >을 읽다가 신해철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현실의 누구와도 공감할 수 없었던 그 감정을 비슷하게 느낀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너무 기뻤다.

    나도 대학가요제에 나온 그 순간부터 좋아하고 <날아라 병아리>를 듣고 오랫동안 좋아했었는데 생활에 치여 그의 죽음을 알게 되기까지 잊고 있었던 것도 똑같았다. 심지어 같은 동네에 산적도 있어서 아들의 친한 친구 엄마로부터 그를 만난 이야기까지 들었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 그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날아라 병아리에서 멈춰버린 그를 다시 소환해냈다. 그 이후의 노래들을 다시 듣고 다시 발견했고 미안했다. 그런 감정을 느낀 나와 같은 세대들이 있다는 걸 여러 책속에서 알게 되었다. 기뻤다.


   내가 날아라 병아리를 그토록 좋아했던 이유 중에는 내가 키우던 강아지 복실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주택에서 살 때 키우던 개였는데 무척 사랑스러워서 너무 좋아했었다. 처음 고모네에서 데려올 때의 그 작고 귀여운 모습과 믹스견이라 외모는 볼품없는 바둑이였지만 기품 있는 성품이었다. 먹는 거를 밝히지 않고 사람을 더 좋아했다. 언제나 나를 반기는 사랑스러운 개였다. 친구들에게도 늘 복실이 이야기를 했고, 내가 우울하고 답답 할 때마다 날 위로해 주었다. 몇 년 후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마당에서 풀어 키우던 개를 데려갈 수 없다고 그냥 그 집을 산 주인이 개도 같이 키우겠다는 조건으로 파셨다고 했다. 난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된 것이 좋아 그냥 복실이를 잊고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좋아해놓고 아파트로 간 뒤에는 정작 복실이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어떻게 지내는지 개장수에 팔리지는 않았을지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냥 기억에서 지워져 버렸다. 오랜 시간 주택에 살다 아파트로 가니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대학생 시절이라 밖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다보니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개도 마당도 다 잊고 지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날아라 병아리’를 듣게 되었다. 그 때 내가 사랑했던 복실이가 생각났고 그 곡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난 내가 복실이를 그토록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후에 한 번도 보러가지도 않았고 쓸데없이 바쁘고 번잡스러운 생활 속에 있었다. 사랑하는 것을 제대로 사랑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이사 후에 두어 번 오징어 튀김을 사서 복실이를 보러 가셨다고 하셨다. 복실이는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두고도 쳐다보지도 않고 아빠만 반가워했다고 하셨다. 난 그때 도대체 뭐에 그토록 정신이 팔려있었을까?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친구들과 락카페나 가고 몰려다니며 미팅이나 했을 텐데 뭐가 바빠서 단 한 번도 찾아가지 못했을까. 정체도 알 수 없는 괴로움에 혼자 심각한척하고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도 복실이에 대한 죄책감과 안타까움을 잊지 못하고 있다.

   신해철은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사랑했던 병아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며 내는 삐약 소리를 기억하고 만졌을 때 느껴지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기억하며 저런 멋진 노래까지 만들었다. 사랑하는 것을 사랑할 줄 아는 어린아이였다. 그래서 그 노래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고 이토록 큰 울림을 주는 것이리라. 난 오랫동안 주변을 살피고 마음을 온전히 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 마음을 빼앗고 에너지를 빼앗는 부정적 기운에 정신 못 차리고 있었다. 그냥 내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들도 잘 볼 줄 몰랐고 좋은 사람이 좋은 줄도 모르고 살았다. 내 감정을 무디게 하고 세상을 온전히 살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런 삶의 자세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이어졌다. 자식은 그냥 저절로 사랑하는 거고 아이도 알거라고 생각해서 내 식대로 사랑하며 살았다. 사랑하는 대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기 보다 내 틀이 먼저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통해 그 가수가 어린 시절 사랑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통해 힌트를 얻었고 나의 사랑의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예술의 힘은 이렇게 강하다. 나의 감정을 움직이는 것만이 힘이 있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아이의 성장을 위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스스로 하길 원한다면 그것을 강요해서는 되지 않는다는 거를 20년이상 아이들을 키우면서 깨달았다. 오로지 사랑만이 진심으로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만이 그 진심이 가 닿는 걸 경험했다. 아이를 위한다고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아이의 성취로 내가 엄마 노릇을 잘 했다는 인정을 받기 위함이었는지 아이가 제대로 한 사람으로 경제활동을 못해 평생 나한테 빌붙을 것 같은 불안감인지를 구분해 내야 한다. 그런 이기심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일 때 아이는 자신을 위해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모는 당연히 아이를 사랑하니 아이를 위해 하는 이야기지 라는 보편적 생각들이 있다. 그러나 부모 자식 관계에도 이런 이기심이 얼마든지 끼어든다는 걸 많은 순간 깨달았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의 실체를 확인하고 아이에게 순수한 마음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순수한 사랑만을 주는 사랑의 화신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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