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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Jul 26. 2023

엄마에게 옷은 어떤 의미였을까?

-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얼마전 명절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엄마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갑자기 엄마가 확 이해되는 부분이 생겼다.


시간만 나면 동대문 시장에 가서 천을 끊어다가 옷을 만들던 엄마에게 불만이었다. 나와는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서 옷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게 불만이었는데 그 글을 쓰면서 어려운 큰며느리의 삶에 파묻혀 살며 그것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에서 친구도 가족도 없는 서울로 시집와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옷 만드는 일을 하며 다시 자신을 찾을 수 있겠다는 희미한 꿈을 꾸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자주 이야기했듯 하이힐 신고 예쁘게 꾸미고 다니던 젊은 시절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거라는 헛되지만 버릴 수 없는 희망을 쥐고 있었을 거라는 게 갑자기 이해가 되었다. 대가족의 큰 며느리로 자신을 점점 잃어가고 아무도 감정적으로 다독여주지 않은 냉정한 서울내기들 틈에서 그렇게 병들어가고 있었고 유일하게 잡은 희망이었겠다.


엄마는 시간이 나면 천을 사 와서 쵸크로 재단을 하고 커다란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고 발로 구르는 구식 재봉틀로 옷을 만들어 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홈드레스나 내 옷을 만들어주셨다. 똑같은 디자인의 홈드레스나 바지들을 끝도 없이 만들어서 주변 지인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던 거 같다. 다 만들면 놀아주겠다고 했지만 그 일은 끝나지 않았고 겨우 끝나면 또 식사준비나 다른 집안일로 바쁘셨다.


난 엄마가 만들어주는 이상한 디자인의 옷이 싫었다. 그냥 상점에서 는 다른 아이들이 입는 평범한 옷이 좋았는데 ‘넌 진짜 예쁜 것도 모른다’며 억지로 입히곤 했었다. 엄마가 만든 옷을 입고 심술 난 얼굴로 찍은 사진들이 남아있다.


난 엄마 옆에서 자투리 천을 가지고 놀거나 작은 가위로 엄마 흉내를 내면 천을 자르곤 했지만 금방 싫증이 나서 주로 혼자 놀곤 했다. 엄마의 눈은 나에게 머물지 않고 늘 옷에만 머물렀고 그럴 때만 즐거워 보였다.


난 엄마의 옷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폄하하고 싫어했다. 나한테나 그렇게 관심을 좀 가져보지 그런 마음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 세 식구만 살게 되자 엄마의 옷에 대한 집착은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집에서 만드는 것에서 벗어나 옷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집에서 패션쇼를 자주 하셨다. 이 옷 저 옷 입어보고 어떠냐고 매일 물어보셨다. 내 눈에는 아줌마 옷이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아서 시큰둥하게 대답했던 거 같은데 ‘넌 뭘 몰라서 그런다’며 매일 지치지 않고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렇게 차려입고 사진을 찍으라고 시켰다. 내 사진은 별로 없는데 엄마가 집안에서 어울리지 않는 정장에 스카프를 이렇게 저렇게 매고 찍은 사진들이 많다. 엄마가 요즘 세상의 젊은이였다면 인스타그램에 패션 인플루언서가 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님 셀카를 끝없이 찍어 대는 사람이나. 세상을 잘못 타고났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우리 집에서 같이 살게 되면서 집 정리를 했는데 엄청난 양의 엄마옷을 마주하게 되었다. 택도 떼지 않은 똑같은 옷들이 어마 어마 하게 나왔고 몇 십 년간 버리지 않고 모은 옷들이 집 정리 해준 사람의 말에 의하면 5톤은 되었다. 세 개의 방이 모두 엄마 옷으로 가득 차 있었고 방 하나는 바닥이 보이지 않게 옷 산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동안도 옷이 많다고는 알고 있었고 그 방을 그냥 잡동사니 모아 놓는 곳으로만 알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루말로 할 수 없는 양의 옷이 점령해 있었다. 그 광경은 처음에는 분노로 다가왔다. 저렇게 옷 살 돈을 마련하느라 아빠와 나를 힘들게 했는지, 집안의 가전이나 고장 난 물건들은 바꾸지 않고 불편하게 살아서 내 마음을 힘들게 했는지 화가 났다.


몇십 년 된 냉장고를 새로 사라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괜찮다고 하더니 어느 날 한 여름에 냉장고가 멈추어버렸다. 그 안의 어마어마한 음식들을 버리고 결국 내가 급하게 냉장고를 주문해서 보냈다. 가스 레인지나 고장 난 싱크대는 고칠 생각도 안 하고 결국 내가 사거나 고쳐야 했다. 물론 이건 엄마가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은 시점부터 10년간의 일이었다. 병에 걸리기 전에는 옷도 좋아했지만 깔끔하게 살림도 잘 하셨다.


엄마의 인생은 무엇일까? 엄마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도 크게 존재하지 않는 거 같았다. 그래서 내 마음이 더 멀어졌다. 엄마도 쌀쌀맞은 딸에게 실망했겠지. 그 헛헛한 마음에 또 백화점으로 달려갔겠지. 아빠는 원가족에게는 훌륭한 아들이고 훌륭한 오빠, 형이었지만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항상 엄마나 나보다는 할머니와 동생들이 우선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외로움과 공허함을 옷으로 채우셨다는 걸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


엄마가 꾸미고 나서면 모두들 멋지고 예쁘다고 칭찬을 하고 친구들은 어디서 산 옷인지 사다 달라고 요구하곤 했었다. 그렇게 본인의 존재가치를 찾고 있었고 그래서 더 매달리게 되었으리라. 치매에 걸리고는 판단력이 떨어져 경제사정에 넘어서는 쇼핑을 하셨다. 아빠도 엄마가 가정에 충실했고 대가족 살림에 고생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뒤늦게 사과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엄마의 쇼핑이 도를 지나쳤다는걸 알았지만 그냥 두신거같다.


백화점에서 산 좋은 옷 위주로 추려왔는데도 우리 집 방 한 칸을 채우고도 넘쳤다. 엄마는 치매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본인의 옷을 챙기느라 늘 바쁘셨다. 방을 들여다보면 어느새 옷을 다 꺼내 새로 정리하고 어떤 옷이 없어졌다고 찾으시고 그런 일의 연속이었다. 베란다 박스에 넣어둔 다른 계절 옷도 다 꺼내고 그야말로 엄마에게 남은 것은 옷 밖에 없었다.


난 그런 엄마에 대한 불만과 억울함, 원망의 마음이 많았다. 그걸 극복하느라 많은 심리학책과 영성책들을 읽었다. 내가 움켜쥐고 있던 마음은 오로지 억울한 내 마음뿐이었다. 엄마를 이해하기도 싫었다. ‘엄마라면 이래야지. 엄마가 어떻게 저래’라며 이상적 엄마의 상을 마음에 품고 그 틀에서 벗어난 엄마를 싫어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글을 쓰면서 책임과 의무만 가득한 쳇바퀴 같은 삶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일에 집착하게 된 젊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에너지가 넘치고 활발한 성격이다. 그 에너지를 정말 좋아하는 옷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분출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일로 만족감을 얻고 주변의 인정을 받았다면 엄마는 그렇게 이상한 성격으로 변하지 않았을 텐데... 엄마는 지금 생각하면 우울증이나 화병이었던 거 같다. 나중에는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엄마의 화를 돋우게 되었다. 정상이 아니었다. 그게 결국 엄마를 이른 나이에 치매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병에 걸린 거라고 생각했다면 조금 여유 있게 엄마를 대했을 텐데 난 이상한 엄마의 말들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화가 나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옛날 어른들 다 그렇게 시집살이하고 가사 노동으로 어렵게 살았지만 사랑에 넘치는 좋은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생각이었다. 엄마가 다른집 살가운 딸과 날 비교하는 거에 치를 떨며 화를 냈으면서 나도 그런 이상적인 엄마와 비교하며 엄마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엄마가 요양원에 가시고 나서야 엄마를 한 인간으로 이해할 여유가 생겼다. 같이 살 때는 아직 해결되지 않는 엄마에 대한 마음 때문에 엄청 화를 많이 냈다. 평생 직접 하지 못한 말들을 쏟아내고 한풀이를 했다. 엄마가 듣고 바로 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온전한 정신일 때는 단 한마디도 나의 불평을 듣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난 그냥 꾹꾹 눌러 참고 겉으로만 순종하는 그런 관계였다.


엄마와 진정한 대화로 푼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하고 싶던 말과 마음을 표출해서인지 원망과 미움의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렇게 엄마를 한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예쁘고 화려한 것을 좋아했던 엄마가 집에 갇혀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했기에 나에게까지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렇게 엄마와 화해하고 사랑의 마음만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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