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맛 집 좋아하는 남편이 광화문 미진이라는 식당에 가보자고 했다. 네이버에 찾아보니 미쉐린 가이드 식당이라고 나와 있기에 가겠다고 했다. 일찍 나섰는데도 식당 앞에는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그래도 회전율이 빨라 금방 들어갈 수 있었다.
메밀국수와 전병과 보쌈을 시켰다. 맛은 있었지만 특별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가격도 싸고 유명한 식당에서 한 끼 먹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한 번쯤은 더 가볼 의향이 있다. 다음엔 주변 사람들이 많이 먹고 있던 돈가스를 주문해야겠다. 요새 디즈니플러스에서 <무빙>을 보고 있는데 볼 때마다 옛날 돈가스가 그렇게 먹고 싶다. 전날에 이미돈가스를 먹었기 때문에 못 시켰는데 다음에는 꼭 이곳 돈가스를 먹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소극적이고 취미도 별로 없는 남편이지만 먹는 거에는 적극적이라 주변 카페도 검색해 보더니 창덕궁 근처에 가자고 했다. 일요일인데도 창덕궁 담장 주변에 주차할 곳이 있었다. 회화나무라는 카페다. 카페에 앉아있으면 창덕궁이 다 내려다보이는 뷰가 무척 좋은 카페였다. 그전에도 와 봤는데 주인이 바뀌었는지 인테리어가 달라져 있었다.
아직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창덕궁이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앉을 수 있았다. 커피잔과 컵받침도 예쁘고 커피 맛도 좋았다. 커피를 마시고 창덕궁에 들어가 보자고 했는데 남편은 여기서 보는 거로 충분하다고 그냥 집에 가자고 했다. 전 날 술을 많이 마셔 피곤하단다. 난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창덕궁에 들어가서 비원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우겼다.
카페에서 바라본 창덕궁
표를 사면서 물어보니 비원에는 예약 없이는 바로 들어가기 힘들고 몇 시간 후에나 자리가 있다고 했다. 피곤한 남편 때문에 기다리기는 힘들 것 같아 그냥 창덕궁 산책만 하기로 했다. 2년 전 3월에 혼자 와보고 두 번째다. 3월의 창덕궁은 황량한 느낌이었는데 9월 초의 이곳은 초록이 한창이라 너무 아름다웠다. 피곤하다던 남편도 나무들이 멋있고 좋다고 감탄을 했다. 오히려 걸으며 땀을 흘렸더니 알코올기가 다 빠져나가는 거 같아 개운하다고 했다.
안으로 계속 들어가다 보니 창경궁 입구가 나왔다. 또 표를 사야 했지만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지 몰랐다. 늘 창경궁에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창경궁에서 찍은 어릴 적 사진이 생각났다. 어떻게 변했을지 아니면 그대로인지 궁금했다. 내가 24개월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 모습으로 할머니, 부모님과 찍은 사진, 삼촌들과 놀이기구들을 타던 사진이 남아있다. 할머니 환갑기념으로 식구들이 놀러 갔던 거라고 들었다. 사진으로 남아있어 알 뿐이지 내 기억에는 없다.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창경궁은 과거 일제가 우리나라 왕실의 위엄을 훼손하기 위해 창경원으로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다고 들었다. 동물원 및 유원지의 역할을 했어 선지 궁궐의 느낌보다는 산책하기 좋은 아름다운 정원 같았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숲길을 걷다 보니 춘당지라는 연못이 나왔다. 물은 맑지 않았지만 잉어들이 살고 있었고 주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남편하고 이 근처로 이사 와서 천 원의 입장료를 내더라도 매일 와서 산책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춘당지
감탄하며 즐겁게 걷다 보니 드디어 그 장소,어릴 적 사진 속에 있던 창경궁 대온실 앞에 도착했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온실화원이라고 한다. 일제가 안 좋은 의도로 지었다지만 정말 예쁜 온실이었다. 온실 앞에 있는 구조물까지 사진 속에 있던 그대로였다.
'1909년에 건립한 국내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철골 구조와 유리, 목재가 혼합된 건축물이다. 창경궁 식물원은 일제가 순종을 창덕궁에 유배시킨 뒤 왕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동물원과 함께 지은 것이다.
일본 왕실 식물원 책임자였던 후쿠와가 1907년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에서 시공했는데 당시에는 동양 최대 규모였다. 처음에는 대온실 후면에 원형 평면의 돔식 온실 2개를 서로 마주 보게 세웠으나 후에 돔식 온실 2개는 철거하여 현재 대온실만 남았다.'
- '그래도 아직은' 블로그에서
어제 창경궁에 다녀와서 예전 사진을 찾아보았다. 대온실 앞에 있는 구조물에서 찍은 사진과 똑같은 구도의 사진을 찾았다. 거기에는 우리 할머니와 엄마, 아빠가 너무나도 젊은 모습으로 있었고 어린 내가 원피스를 입고 개구진 표정으로 서 있었다.
대온실앞에서
50년도 더 지났는데도 그 구조물은 예전 모습 그대로 있었다. 위의 설명처럼 그 당시에는 남아있던 돔식 온실의 모습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내가 그 사진 속 부모님 보다 훨씬 많은 나이로 서있다는 점이 다르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 옛날 할머니와 부모님이 내 삶의 커다란 기둥이던 시절의 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 시절을 기억도 못 하던 아기였던 나와 인생에서 한창 큰 역할을 하며 살고 계시던 부모님의 모습을 사진으로 다시 만나니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된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요즘처럼 사진이 많지도 않고 부모님과 대화가 많지도 않았던 시절이라 별로 남아있지 않은 희미한 기억에 기대어 옛날을 떠올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부모님이 가끔 하시던 옛날이야기들도 어릴 때는 관심 없이 그냥 흘러들었었는데 이제는 그 작은 기억들조차 그렇게 귀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