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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Oct 29. 2023

글쓰기는 놀이다.

글쓰기에는 이야기를 모으는 과정, 책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 기록하고 그 기록들을 찾아보고 서로 연결 지어보는 과정이 포함되고 그 일들이 재밌다. 별것 아닌 바로 앞의 글을 쓰기 위해서도 2017년도에 찍은 여행 사진과 수첩도 찾고, 책의 관련 내용을 필사하고 다시 읽어보았다. 그런 과정과 시간이 너무 재밌고 좋다. 몰입감과 충만감이 나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글을 쓰는 일은 가만히 앉아 있다 떠오르는 영감을 받아 적는 것만이 아니라 여러 경험과 자료를 모으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고 그 마음을 실현시키기 위해 자료들을 모으고 상관없을 것 같던 현실의 장면하나, 기억 한 조각이 한 편의 글 속에서 만나기도 한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음에 남거나 감정을 움직였던 곳에서 글이 써지기도 했다. 책을 읽다가 ‘아 나도 그랬는데’ 하며 공감하는 내용을 나의 상황에 대입해 보다가 이야기가 써지기도 했다.


얼마 전 정지우의 <고전에 기대는 시간>이라는 책에서 장 그르니에의 <섬>에 관한 글을 읽고 나에게도 장 그르니에에 대한 오래전 시작된 이야기가 있음이 떠올랐다. 대학생 시절까지 주로 소설만 읽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이런 멋진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 후에 이 책을 보물처럼 간직했다. 살아가다가 이 책이 떠오르는 순간들이 꽤 많이 있었다. 특히 부산스럽고 바쁜 생활 속에 있을 때 이 책의 담담하고 차가운 샘물 같은 서늘함을 느껴보고 싶어 아무 곳이나 펼쳐 읽곤 했었다.

알라딘에서 가져온 사진


<섬>을 좋아하게 된 후 장 그르니에의 다른 책들도 읽었는데 비교적 읽기 쉬운 서간집 한 권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르쥬 뻬로스라는 작가가 젊은 시절에 장 그르니에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은 간집이었다. 편지에는 가벼운 일상적 내용부터 진지한 생각들에 대한 의견을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진실 되게 주고받는 모습이 너무 부럽고 좋았다.

알리딘에서 가져온 사진


그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 찾아봤더니 절판된 책이었다. 청하 출판사에서 나온 그 옛날 책들을 미니멀 라이프하면서 버린 걸 후회하며 인터넷에서 찾아 헤맸다. 중고는 있었지만 한 권은 팔지 않고 서간집 1,2,3 세 권을 묶어서 팔고 있었다. 필요 없는 다른 두 권까지 사야 하나 고민 중이다.


<섬>의 그 유명한 카뮈의 서문도 다시 읽다 보니 카뮈에 대해서도 다시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대학교 때 카뮈의 <이방인>과 <반항인>, <시지프스의 신화> 등 꽤 여러 권을 읽었지만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대학교 때 쓴 일기에서 장 그르니에와 까뮈에 대해 쓴 내용을 찾아냈는데 까뮈에 대해서 아주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장 <이방인>을 다시 읽었는데 그 당시와는 다른 감상이 생겨났다.


이런 과정 중에 있다 보니 장 그르니에의 <섬>에 대한 글이 언제쯤 완성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렇게 나의 관심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 날 써지겠지 하고 느긋하게 생각한다. 글로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닌 세상 재밌게 하는 놀이다.


그 과정들이 무엇보다 재밌고 즐거운 놀이가 된다. 그렇게 찾아가는 길들이 즐겁다. 그렇게 모으고 정리해서 나올 글은 어떨까 기대도 되고 나의 보물창고가 된다. 나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 짓는 과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의 30년 전 읽었던 책을 다시 찾아 읽으면서 내 인생을 다시 돌아보고 연결 짓고 현재의 나를 재발견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나의 이 작은 세계에 들어가서 이 일들을 조용조용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나만의 정원을 가꾸듯 할 일이 생각난다. 오늘은 이 나무에 물을 주고 또 다음 날에는 우울하게 만드는 잡초를 뽑아내고 잡초에 대한 글을 써서 훌훌 털어버리기도 한다. 오랜 시간 잘 가꾸어 드디어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정원에 들어서는 날은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리라 생각하다. 매일매일 성실하고 즐겁게 가꾸고 있는 나의 정원에서의 놀이가 즐겁다.


남들에게는 다 보여줄 수 없는 이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를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늘 공허감에 시달리고 권태로웠는데 그 감정들이 사라져 간다.


전에는 정원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허름한 마른땅 한 조각이었다. 거기서 뭘 할까? 생각했지만 너무 삭막하고 심심했다. 그래도 그 공간을 버릴 수는 없었다. 생각날 때 가끔 들어와 발로 땅을 다듬기도 하고 어느 날은 씨를 뿌리기도 했다. 하지만 자주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 싹은 피어나지 못했고 다시 잠들어버렸었다.


지금은 그래도 정원이라도 불러줄 수 있는 공간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곳은 나의 안식처, 놀이터, 나만의 세계다. 작고 보잘것없지만 이런 일터이자 놀이터를 만들게 되어 너무 기쁘다.


이 재밌는 놀이는 평생 할 수 있고 돈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성장시켜 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놀이니 더 자주 많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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