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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Mar 29. 2024

글쓰기가 어려워질 때

1년 6개월간 열심히 글을 썼다. 글을 쓰며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좋았다. 이렇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쁜 감정들도 많이 버리고 비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냥 나아가면 되는데 텅 비웠더니 그 홀가분한 시간을 잘 누리지 못하고 뭔가 잘못된 거 같은 느낌과 글과 나 자신이 동일시되면서 내 글들이 너무너무 싫었다. 내 인생의 중요하다고 생각한 추억과 취향, 감정들에 대한 글들이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꼴 보기 싫어졌다.


막연히 마음속에 품고 있을 때는 뭔가 근사하고 대단한 취향과 추억이라고 생각했는데 꺼내놓고 나니 내 비루한 글 솜씨 때문인지 애초에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을 부풀려 품고 있었던 것인지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었다. 보잘것없는 빛바랜 종이 조각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실체를 마주하고 보니 생각보다 내 인생이 보잘것없고 시시한 것이었다는 자괴감이 찾아왔다.


늘 이런 식이다. 나쁜 감정과 부정적 생각들을 잘 정리하고 홀가분하게 살아가면 되는데 그 빈틈을 견디기 힘들어 자꾸 다시 주워온다. 너무 오랜 시간 고 살아서 없으면 홀가분해지는 게 아니라 뭔가 잘못된 거 같은 공허감과 불안감이 찾아온다.


갖지 않아도 될 수치심, 죄책감, 열등감, 생각보다 많은 인정욕구 등등을 불러들이고 글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바라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마음이라는 걸 알지만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쓸데없는 글을 쓴다는 자괴감이 이번에는 아주 크게 밀려와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사실 이 정도의 괴로움이면 그만두면 되는데 그만둘 수도 없다는 게 나의 고민이다. 그냥 쓰는 시간이 즐거운데 그 시간을 즐기게 됐는데 왜 이런 마음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지 괴롭다. 인정받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나 자신을 좀 더 사랑스럽게 바라보면 된다는 교과서적인 해답을 알고 있지만 극복하기 어렵다.


이런 징징거리는 글은 그만 쓰고 싶었지만 이렇게 쓰고 다시 힘을 내보려고 한다.


17년째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용감하게 써나가는 작가의 책을 두 번째로 빌려와 읽는다. <슬픔은 쓸수록 작아진다>에서 조안나 작가도 이런 내 마음을 알기나 하듯이 다음 같은 글을 소개한다.

“나는 책을 쓰는 저자가 아니다. 내 과제는 내 삶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직업이며 유일한 소명이다” - 미셸 에컴 드 몽테뉴


나도 이런 생각으로 즐겁게 매일매일 쓰고 있었는데 감정의 파도가 밀려들면 내 이성은 마비되고 그 감정 속에서 길을 잃는 나날이 이어진다.


“글은 찬사를 받으려고 쓰는 것도 아니고 읽는 사람을 생각해서 쓰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다. 자신과 펜 사이에서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들을 글로 써내는 것이다.” -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원작자 브렛 이스턴 엘리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글들을 모아 들려준다.  역시 책 속에 답이 있다. 주변에 말하기도 어렵고 사소한 고민과 우울함에 늘 이렇게 답을 얻는다. 책이 가장 믿음직스러운 친구이자 지지자다.


이것도 나를 찾고 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절망스러운 감정이 드는 주기가 좀 더 넓어졌다는 게 그 증거다. 내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오랫동안 내 몸처럼 지니고 다닌 그 감정들이었다. 버렸다가 다시 집어오고, 또 버리고 데려오는...  언제나 확실하게 버릴 수 있을까? 영원히 버리기는 힘들 것이다.


글을 쓰면서 답을 찾고 조금씩 나아지는 기분을 기억해야겠다. 그 기분을 솔직하게 일기장에 적었다. 그렇게 쓰다 보니 생각만큼 심각하거나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성이 가동되면서 그 정도는 아니라고 조목조목 스스로를 일깨운다. 그러면서 서서히 기분이 나아졌다.


내 글로 인해 자괴감이 밀려왔지만 글을 쓰면서 다시 그 마음을 극복하고 있다. 이번에는 저 깊은 곳에서 삐죽이 올라오는 한줄기의 자신감을 발견하기도 했다. 가늘지만 쉽게 부러질 것 같지 않은 단단한 줄기가 생겼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그래도 괜찮다는 희미한 마음을 담고 있다.


예전에는 그냥 파스스 무너져 내리는 비스킷 같은 느낌이었던 내 마음에 힘이 생겼다. 그 힘을 확실히 느꼈다. 이젠 이런 감정들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다. 세차게 흔들렸지만 부러지진 않았다. 계속 가도록 힘을 더 내보겠다.



* 안나 작가님의 <내 다리가 더 날씬해서 미안해요> 글에 소개된 일자 샌드의 <나의 수치심에게>라는 책도 읽고 있는데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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