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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Dec 11. 2023

좋아하는 놀이 하나씩 찾아보세요.

- 놀이의 중요성

남편은 여행을 좋아한다. 별 취미가 없던 사람인데 뒤늦게 좋아하게 된 일이 여행과 여행지에서 맛있는 음식 먹기다. 그래서 그런지 TV도 여행 프로나 일드 <고독한 미식가>만 반복해서 본다. 어제도 EBS의 <세계테마여행>의 독일/슬로바키아편을 보고 있었다. 거의 10년 전쯤 동유럽 여행 중 독일 로텐부르크에 잠깐 들렀었는데 그곳이 나와 반가운 마음에 끝까지 보게 됐다.


“와 경치 좋다. 독일도 좋은 곳이 많구나. 저런 데서 한 달 살기하고 싶다." 감탄하면서 보고 있었다. 그런 그림 같은 마을이 펼쳐진 독일 남부를 돌아보던 중 정원이 아름다운 집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왔다. 그 집에는 손재주가 좋은 부부가 자연 염색한 퀼트 작품과 미니어처 기차가 움직이는 디오라마 등 독특하고 아름다운 소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 소시지를 만드는 남편의 모습도 인상 깊었다. 직접 고기를 손질해서 수제소시지를 만들어 바로 숯불에 구워 독일식 김치인 사우어크라우트와 맥주를 대접해 주었다. 기분이 좋아진 여행객 고희전 성악가가 멋진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부인은 여러 색의 나뭇잎들을 헝겊 위에 놓고 꽁꽁 싸맨 후 찜통에 쪄서 자연의 색과 모양이 배어 나온 작품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신나서 자신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중년 부부의 모습에서 내가 가르쳤던 유치원생들과 내 아이들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하루 종일 뭔가를 만들거나 신나게 놀 때 몰두하고 있는 상기된 맑은 모습을 그 부부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유아기 때의 놀이를 다시 찾으면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와 청소를 누가 하니 마니, 아이를 누가 더 많이 돌보았는지 남녀가 다투고 누가 돈이 더 많은지 잘났는지로 구분하고 나누는 각박한 우리의 삶이 떠올랐다.


모두들 현실의 빠듯하고 각박한 생활에 사소한 집안일도 구분 짓고 정확히 나눠야 할 만큼 지친 우리들의 모습이 서글펐다. 여유가 생기면 넷플릭스나 먹방을 보면서 술과 야식 먹는 것이 최상의 행복이 된 우리의 생활이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면서도 그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독일의 그 부부는 놀이처럼 일상을 살아나가는 거 같았다. 일과 놀이가 일상과 어우러져 제대로 편안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일상이 일의 방해가 되는 성가신 어떤 것이 아니라 일상과 일과 놀이가 어우러져 행복해 보였다.


지금 우리는 먹고사는 직업을 그것도 가장 돈을 많이 벌고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유아기부터 모든 것을 희생하는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공부하나에 모든 것이 희생됐다. ‘엄마가 다 해줄 테니 너는 공부나 해’, ‘책 그만 읽고 공부해’, ‘그만 놀고 공부해’, 너무나 흔하게 들을 수 있고 내 입에서도 나온 말들이었다.


영유아기 아니 사실은 초등학교 시절까지 몰입해서 놀아봐야 평생 곁에 둘 놀이를 찾을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알 수 있다. 먹고사는 일 정말 중요하다. 평생 자신의 힘으로 먹고살고 좋아하는 천직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당연히 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이 몇 가지 직업에 한정되는 느낌이다. 모든 게 돈을 많이 버는지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인지가 기준이 된 거 같다. 우리 때도 그랬는데 점점 그 폭이 자꾸 좁아지고 있다. 다양하고 새로운 직업이 많아지는데도 모든 부모가 원하는 일은 여전히 다섯 손가락에 꼽아진다.


인간은 놀이의 존재다. 나이가 어리나 많으나 놀 때 가장 행복하고 자신의 본 모습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중요하고 인간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놀이가 핸드폰 하나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핸드폰으로 노는 거에 익숙해지고 그 강렬한 영상은 아이들의 뇌에 너무도 크게 영향을 미쳐 흙 놀이, 자연에서 마주치는 식물과 동물들, 친구들과 엉키며 싸우고 웃으며 노는 순간의 즐거움을 시시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수동적으로 펼쳐지는 영상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놀이, 내가 직접 창의적으로 몸을 이용해서 하는 놀이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영유아기는 몸으로 놀고 감각을 이용해 직접적으로 만지고 경험하면서 모든 발달을 이룰 수 있는데 그 중요한 시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이들이 밥 먹고 영향 섭취하는 것만큼 중요한 직접경험의 시간이 줄어드는 게 걱정이다.


자연스럽게 친구들을 사귀고 주변에서 재료들을 구하고 모든 것이 갖추어지지 않은 결핍의 상황에서 오히려 창의력이 발휘되는데 많은 것이 갖추어진 곳에서 계획적으로 놀아야 하는 학습을 교묘하게 감춘 가짜놀이가 유아기까지 점령했다.


내가 잘하지는 못해도 그림 그리기, 글쓰기, 피아노 치기 같은 소소한 취미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거의 중학교 때까지 아무 방해 없이 실컷 놀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부에는 전혀 압력을 주지 않으신 모님께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조용히 책 읽거나 피아노, 피리를 연주하고 종이인형이나 만화를 그리며 부모님 귀찮게 하지 않고 혼자 잘 놀았다. 그렇게 혼자서도 몰입해서 놀고 사촌동생, 친구들과도 어스름하게 해가 질 때까지 동네에서 뛰어놀았던 기억이 가장 행복한 기억들이다. 외동딸이라 형제도 없고 어른만 있는 집에서 심심하다 보니 그러고 놀았는데 누구도 방해하지 않아 몰입할 수 있었다.


반면 남편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아버님의 엄격한 감시 하에 삼 남매가 밤 12시까지 공부를 했다고 한다. 어떻게 반항 한번 하지 않고 그렇게 따랐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서 모두 공부는 잘했지만 이렇다 할 취미가 없고 취향이랄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이 없다. 공부만 잘하는 사람으로 컸다. 그것이 너무 안타까워 지금이라도 취미를 가져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야 은퇴 후 노년에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도 즐거울 수 있다고 이것저것 권했다. 사실 나에게 너무 의지할까 봐 그러긴 했다.


그러자 얼마 전부터 요리학원에 등록해서 일주일에 한 번 다니는데 아주 재밌다고 한다. 꼼꼼한 성격으로 요리과정 하나하나 차분히 해나가는 일이 맞나보다. 요리에서도 작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예술작품 만들기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먹으며 진짜 맛있다고 하니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여줬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 멀었는데 아무래도 식당을 내야겠다는 둥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야겠다고 들떴다. 남편 얼굴에서 오랜만에 활기가 생겼다.

남편이 학원에서 만든 요리-사진 찍고 저대로 싸와서 먹었다


남편의 그런 활기차고 해맑은 표정을 보는 게 좋다. 요리하는 순간 몰입하면서 일에서의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다고 퇴근하고 힘든 중에도 빠지지 않고 간다. 그게 바로 놀이의 힘이다. 여행을 좋아 하지만 매일 갈 수 없다. 요리나 악기연주처럼 틈틈이 자신을 마주하고 몰입할 수 있는 놀이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나중에 남편이 해주는 삼시 세 끼를 먹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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