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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Dec 07. 2023

아이가 27세이지만 육아는 끝나지 않았다.

- 내면아이 상처 치유하기

난 요즘도 관심 가는 육아서가 있으면 구입해서 본다. 읽다 보면 다 아는 내용이라도 다시금 깨달아지는 게 많다. 최근에도 육아강연계의 스타라고 하는 김선미의 <육아내공 100>이라는 책을 봤다. 경험에서 우러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육아의 핵심을 다소 거칠지만 정신이 번쩍 들게 알려준다. 쉬운 말로 쓰여 있지만 이 작가의 육아내공이나 독서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내용 하나 없지만 그 쉬운 말을 행동으로 옮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은 다 알 거다. 그 책을 보면서 ‘그래 그래 나도 이렇게 책육아 했고 영어도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큰 힘 들이지 않고 잘하게 됐지’라며 뿌듯한 부분도 있었지만 작가가 군대육아라는 표현으로 3년(옛날식으로) 군대 갔다 생각하고 그 아이에게만 온 관심과 사랑을 쏟아부으라는 내용에서는 자신이 없어졌다.


특히 큰 아이에게는 미안한게 너무 많았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혼자서 사랑과 관심을 받다가 동생이 태어나고 나의 모든 관심이 둘째에게로 갔다. 변명을 하자면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토피가 온몸을 뒤덮을 정도로 심해서 24개월까지 모유를 먹이고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긁어서 진물이 나고 귀가 갈라지는 심한 상태였다.


둘째 아이 아토피가 다 낫고 일을 시작하면서 큰 애는 다고 생각했다. 자기 할 일쯤은 알아서 할 거라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자기 암시를 했던 거 같다. 워낙 조숙하고 엄마에게 불평한마디 없는 착한 아이라 그냥 나 편한 대로 그렇게 믿었다.


그냥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지내다 잘 못하는 일이나 부족한 부분이 보일 때에만 관심을 보이고 비난을 하고 상처를 줬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나에게 멀어져 갔다.


가장 힘들었을 사춘기 시절에 옆에서 든든한 보호막이 돼주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아이의 반대방향에 서서 다른 사람이 하는 목소리로 비난과 압력을 줬다. 그게 뒤늦게 사무치게 미안하고 괴롭다. 그때 혼자 서있었을 아직도 어리고 여린 아이를 생각하면 견디기 힘들다.


내가 아직도 육아서를 보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잘못했던 거를 더 늦기 전에 만회하고 관계를 재설정하고 싶어서 인 거 같다.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때 충분히 주지 못한 사랑과 관심을 지금이라도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뉘우치고 그 시간을 보상하고 싶다. 아이가 초등학생, 중학생일 때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고 여린 아이였는데, 아니 나이가 50, 60이라도 상처받은 그 시간 그대로 머물러 있는 내면아이가 있다고 하는데. 상처 준 엄마가 그 내면아이를 소환해 달래주고 그때 충분히 주지 못한 사랑과 관심을 준다면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해결하고 싶은 내 인생의 문제가 바로 그거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서 화를 풀지 못하고 옹졸하게 삐져서 불안한 눈빛으로 뒤돌아 있는 나의 내면 아이를 찾아내 엄마가 사과해 주고 위로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한다. 난 이제 불가능하기 때문에 스스로 그 과정을 해내느라 힘들다.


그런데 그 과정 중에 아이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도 같이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야 상처받아 서 있는 내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그때는 다 컸다고 생각하고 다 큰 아이가 왜 저렇게 자기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누워만 있나, 핸드폰만 보나하고 다그쳤는데 상처받아 다리가 꺾인 거였는데 그걸 보지 못한 미안함에 가슴이 저려온다.


내가 다시 그 아이를 찾아가 그 시간을 만회하고 싶다. 이제는 내 식대로 내 감정대로가 아니라 아이를 여유 있게 잘 관찰하고 상처받지 않을 말을 고르고 아이가 가장 좋은 기분인 시간을 찾아 말을 건넨다.


예전에는 내 감정에 못 이겨 억지로 참다 참다 폭발했다면 이제는 아이가 가장 좋아할 방식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내 관심을 나의 내면아이의 불행과 해결에 골몰하는 대신 아이에게 그 관심과 사랑을 주면서 우리 둘 다 회복되길 기대한다.


마침 아이가 가장 바쁠 시간이 지나 여유가 있고 둘째 아이가 군대에 가서 옛날처럼 우리 둘 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를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그때 만나지 못했던 아이와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중간에 조금 느슨해졌던 유대감이 다시 강력해지길 바란다.


27세로 이제 독립시켜 떠나보내야 할 나이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채워 넣으면 저절로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독립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난 50세가 넘었어도 의존하고 싶은 만큼 의존하지 못했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날 아직도 독립하지 못한 어린아이로 남게 했다. 지금도 단 하루도 부모님 생각에서 떠나 본 적이 없다.


내 아이들은 그렇게 애정과 죄책감의 복잡한 감정을 갖고 남아있지 않길 바란다. 나를 생각하면 산뜻하게 좋은 추억만을 안고 잘 떠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난 첫째 아이와의 그 빈 시간을 지금이라도 채워 넣으려고 한다.


내가 미성숙하고 부족해서 어리고 상처투성이의 멍청이 같은 엄마여서 감당해야 했던 숙하고 착한 우리 큰아이의 고통을 지금이라고 알아주고 되돌리고 싶다.


내 목숨보다 사랑하면서도 내 관점에서만 옳은 방식을 결정한 후 아이를 바라봤기에 그렇게 상처와 고통을 줬다. 이제는 정말 아이를 잘 관찰하고 존재 자체로 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보기 시작하니 아이가 너무 아름답다. 처음 태어났을때 경이로움만으로 바라봤던 아이와 유아기의 그 뽀얗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그대로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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