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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Oct 15. 2024

타임머신은 필요 없다.

나는 타임 슬립물을 좋아한다. 30년도 더 전에 나온 백 투더 퓨쳐부터 시작해서 어바웃 타임, 미드나잇 인 파리와 우리나라 드라마인 내일 그대와, 고백부부, 너의 시간 속으로, 재벌 집 막내아들, 시그널, 내 남편과 결혼해 줘, 어쩌다 마주친 그대, 열녀 박 씨 계약 결혼전, 라이프 온 마스, 인현왕후의 남자, 최근의 선재 업고 튀어 까지 요즘 타임 슬립물이 넘쳐나고 있다.


이런 영화나 드리마를 보면 나도 과거 언제로 돌아갈까를 정말 진지하게 생각한다. 집 사던 때로 돌아가서 이 아파트 대신 저 아파트를 샀었야 했는데, 애들 키울 때 힘들었어도 좀 정신 차리고 쓸데없는데 낭비하지 말고 실속 있게 살았어야 했는데 이런 생각도 하고 더 과거로 돌아가 대학생 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한 번이라도 시도해 봤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지금부터라도 후회 없이 살아서 70세 80세가 되어서도 회귀물을 보며 이런 헛된 상상을 그만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원하는 일, 그때 하지 못해 후회했던 일을 차근차근해나가면 된다.


오히려 지금 더 홀가분하게 원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일 수 있다. 아직 아이들이 독립하지 못해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더 좋겠지만 이제는 진짜 내가 원했던 일 그때 잘못 선택해 아직까지 후회하는 일들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다.


청소년기에는 아직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세상이 어떤지도 잘 몰랐기에 부모님과 주변의 이야기에 휘둘리기 쉬웠다. 그냥 세상에서 좋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기 쉽다.


내 의지와 다른 일들을 하며 열심히 돈을 벌고 나보다는 주변을 돌보고 신경 쓰는 삶을 살았다면 지금부터는 좀 이기적으로 오직 나만을 생각해도 되는 시기다. 늘 부모님과 자식들을 먼저 생각하고 나는 뒷전이었다. 시간과 돈 모두 가족들에게 할애했다. 나를 위해 돈을 쓸 때면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벌어서 쓰는데도 그랬다. 늘 부모님께 더 잘해야 하는데 못하는 내가 나쁜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하는 일은 별거 아니라 생각하고 가족, 주변 사람들의 요구가 우선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지쳐 그냥 널브러져 흘려보냈다. 제2의 사춘기라고 할 수 있는 50대 중반 이제는 이기적으로 나만을 생각하며 미래를 계획해 볼 수 있는 시기다.


십 대 때처럼 주변에서 성급하게 권하는 것들, 남들이 한다는 것들을 시도할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공들여 진짜 나로 살 준비를 하고 진지하게 찾아봐야 한다. 내가 요즘 그걸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릴 적 추억들, 내가 계속 좋아하는 것들,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을 돌아보는 일들을 하고 있다.


사춘기 아이들의 급격한 신체적, 정신적 변화 못지않게 변화하는 몸과 감정에 적응하느라 당황하는 현실에 아직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런 사춘기 아이들을 몰아세우면 안되듯 왜 아직도 길을 찾지 못하냐고 평생 그래놓고 지금도 지지부진하게 그 모양이냐고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기다려주고 따뜻한 공감과 사랑만 주는 엄마처럼 나를 돌보아줘야 할 차례다.


나는 사춘기가 없는 아이였다. 그건 고민해야 할 내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냥 부모님의 뜻이 내가 가야 할 길이었고 외동딸인 내가 부모님을 힘들고 속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부모님이 흡족해할 만한 최소한의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나머지 시간엔 반항심으로 시간을 허무하게 탕진하는 가짜 삶을 살았던 거 같다.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냥 날 가만히 놔두기만을 바랬다. 고등학교 때 쓴 일기를  보면 ‘수녀원 같은 데 가서 아무도 날 방해하지 말고 놔두었으면 좋겠다’, ‘대학이나 전공은 어디든 상관없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책 읽게 놔두면 좋겠다’라고 써놓은 걸 봤다. 부모님의 요구에 맞는 최소한의 것을 겨우 하고 나면 날 놔두니까 그 숙제를 해내는 일에만 신경을 썼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사춘기가 지나가 버렸다.


잠깐씩 그런 생각들을 하긴 했지만 어차피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거라는 생각으로 가끔 일기장에 끄적이는 걸로 끝내고 엄마가 요구하는 끝없는 숙제들을 해내느라 에너지를 다 쓰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면 엄마의 요구에 너무 마음 쓰고 그걸 해내려 노력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 당시 과외 알바를 해서 돈을 꽤 벌었기에 독립을 하려면 할 수 있었을 거다. 그 돈을 모아 가고 싶던 배낭여행이나 유학을 갈 수도 있었을 거다. 물론 몸은 더 힘들고 결국엔 실패했을 수도 있지만 내 의지대로 살아봤기에 후회가 남지 않았을 거다.


지금 다시 한번 갖게 된 두 번째 사춘기에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도 후회스러웠던 선택을 다시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갑자기 20대로 돌아간 거 같고 힘이 불끈 솟는다.


늦지 않았다. 두 번째 사춘기로 다시 한번 인생의 기로에 설 수 있다. 오히려 그때보다 상황이 좋다. 개인적으로 상황이 다르고 시기별로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덜 할 수도 있고, 주변의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제는 돌봐야 할 사람도 줄었다.


좀 빠르거나 늦을 수는 있지만 이런 시기가 한 번은 더 찾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제 현직에서 물러나 늙어 죽을 날만 남았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이한 청년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그 옛날 후회스러웠던 선택을 다시 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볼 수 도 있는 시간이다. 난 그렇게 생각하고 살기로 했다.


이제 글을 쓰기 시작해서 뭐 할까, 이제 그림 그리기 시작해서 뭘 할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은 첫 번째 사춘기 때 넘치도록 했다. 그래서 50년을 낭비하고 살았다. 이제는 그냥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생각이다.


부모님에 대한 의무감과 죄책감, 자식들에 대한 책임감, 사람들 눈치 보는 것 모두 내려놓을 생각이다. 할 만큼 했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 마음과 다르게 남의 말을 따르면서 그 사람들을 좋아하기 힘들었다. 사랑의 마음으로 관계를 맺지 못했다. 족쇄처럼 느껴졌다.

내가 행복해야 진짜 사랑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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