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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기 위해서 뭘 해야 할까?

by 박수종

현재를 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책에서도 텔레비전에서도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사람들이 그러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다. 현재를 산다는게 쉽다면 그런 가르침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잠깐의 빈 시간이 생기면 쓸데없는 생각들, 내가 어쩔수 없는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의문, 비난, 미래에 대한 걱정, 과거의 상처들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가만히 집에 앉아 있으면 그런 생각들에 잠식당하기 일쑤다. 그럴 때는 일단 박차고 나가서 찬바람을 맞으며 걷는다. 그렇게 걷다 보면 신선한 생각이 떠오르고 주변의 예쁜 것들을 찾느라 잠시 생각을 멈출 수 있게 된다.


며칠 전에도 검은 그림자가 내 머리 한쪽으로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하자 바로 옷을 갈아입고 서촌으로 향했다. 한동안 못 와본 새 새로운 가게들이 생겼고 우리 은행 쪽 골목길은 여전히 걷기에 좋았다.


가보고 싶던 시노라 카페까지 꽤 먼 거리를 걸어가 간단한 샌드위치와 맛있는 커피를 마신 후 정처 없이 걷다 발견한 그라운드 시소에서 전시회도 구경했다. 그러자 내 마음은 새롭고 신선한 것들로 가득 찼다. 만보를 걷고 집으로 돌아와서 밀린 빨래며 청소를 하고 저녁을 해 먹고 조금 쉬다 푹 잠이 들었다.

시노라 카페



그렇게 현재를 사는 방법을 찾고 내 삶에 적용시켜 나가자 생각 속에 갇혀 낭비하는 일이 줄었다. 산책을 하고 글쓰기나 그림을 그리면 현재를 살게 된다.


그림을 그리려면 집중할 수밖에 없다. 순식간에 그림 그리는 일에 빨려 들어간다. 그릴 대상을 자세하게 관찰해야 하고 그대로 그려내기 위해 내 손끝에만 집중해야 한다. 비슷한 색을 찾기 위해 그 계통의 색들을 다른 종이에 칠해보며 비교해 보고 그래도 없으면 적절히 잘 섞어 가장 유사한 색을 찾기 위한 과정에 몰두한다. 어떤 사물이 한 가지 색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보면 부분적으로 색이 다르다. 빛이 닿는 위치에 따라 얼룩이 묻은 지점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색을 찾기 위해 보고 또 본다.


그림 그리는 시간엔 현재에 머물 수 있다는 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늘 현재를 살라고들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현재에 살려고 해도 어느새 생각의 감옥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내 욕구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잘못된 방향을 향할 때 생각은 과거와 미래, 결코 닿을 수 없는 타인의 마음 곁을 쉴 새 없이 서성이게 된다. 대부분의 욕구는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서였다. 사람의 인정욕구는 생각보다 커서 그러한 욕구들이 해결되지 않을 때 불안감에 잠식당하기 쉽고 현재에 살기 힘들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받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해 헛되게 돈을 쓰고 SNS에서만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진정한 욕구가 뭔지 어떻게 해야 채울 수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엉뚱한 곳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나도 그랬다. 시간 강사라도 하며 보람된 일을 한다는 자기만족이 필요했다. 그 일마저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적인 것으로만 나를 증명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학생들에게 아이들 잘 교육하는 법, 적어도 나에게 배운 학생들이 교사나 부모가 됐을 때 학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나의 인정욕구를 조금은 채워주었다.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시간 강사라는 직업을 긴 시간 붙잡고 있었던 이유가 그런 인정 욕구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강의하던 지방 전문대와 보육교사 교육원에 학생들이 줄면서 강의 자리도 줄어들게 되자 공허감이 말할 수 없이 컸다. 학생들 앞에서 내 생각들을 말하고 인정받고 공감받을 수 있는 장이 사라지자 우울했다. 그렇게라도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중요했는데 그게 사라지자 나의 인정욕구는 갈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다.


다행히 책 속 현자들의 가르침을 따라 그 간절함을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같은 일로 향하게 하자 서서히 안정을 찾고 전보다 편안해졌다.


<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생활> 중에도 인정욕구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인정욕구는 우리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는 늘 인정받고 싶어 하죠.” “답은 간단합니다. 내가 먼저 나를 인정해야 남들도 나를 인정합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감탄할 수 없으면 다른 사람도 나에게 감탄하지 않습니다. 나도 감탄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남에게 기대를 하겠어요?” 감탄이 꼭 외모나 경제적, 일적 성취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글쓰기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스포츠든 취미 활동을 하면서 성취 경험을 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감탄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입니다” “자존감이 적절하게 높은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만의 문화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적 행동이 있을 때 자존감이 더 높아집니다. 직접 글을 쓰고 노래를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며 춤을 추는 겁니다.”


“일과 관련된 부분에서 감탄하려면 훌륭하게 일 처리를 하거나 경쟁 상황에서 1등을 해야 해요, 일에는 경쟁이 있고 순위가 매겨지기 때문에 감탄의 경지에 올라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눌러 이겼다는 뜻입니다. 문화 활동에는 경쟁이나 순위의 개념이 무의미해요”라고 쓰고 있다.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그 결과물로 그림 한 장 갖게 되는 일은 매일 작은 성공의 경험이 됐다. 그림의 수준과는 상관없이 좋아하는 것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낸 뒤의 뿌듯함은 직접 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늘 앉는 소파 옆자리에 내 그림을 두고 계속 쳐다본다. 5세 이전의 자식을 볼 때 같은 순수한 미소가 지어진다. 남들은 모르는 특정한 지점의 예쁨에 혼자 감탄한다. 스스로 감탄하게 된다.


타인에게서 감탄과 인정을 구걸할 필요가 없게 된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서 채운 충만감 덕분에 점점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기분이다. 누군가 나에게 멀어지는 거 같고 전 같지 않게 대할 때 예전에는 많이 힘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고민했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곤 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민하곤 했었다. 항상 주변에 사람이 많아야 내가 괜찮은 사람인 거 같은 생각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초연해졌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거처럼 내가 자신에게 감탄할 일이 생기자 외부에서의 인정과 인기에 신경 쓰는 일에서 벗어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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