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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도 여행처럼

by 박수종 Feb 17. 2025

일상이 편안하고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면 여행에 대한 갈망이 줄어드는 거 같다. 오랜 시간 수리되지 않은 전셋집을 전전하며 살 때는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고 좋은 호텔에 묵고 싶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에 머물고 싶은 욕망이 자주 들었다. 여행 가서 좋은 숙소에 묵고 유명한 곳에 가야만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집을 사서 깨끗하게 인테리어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가구와 물건들로만 공간을 채우자 호텔에 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줄었다. 아이들도 집이 호텔보다 더 좋고 편하다고 한다. 진짜로 호텔보다 좋은 게 아니라 식구들의 취향대로 소박하고 예쁘게 꾸미니 세상에서 제일 편안하고 안락한 곳이 되었다는 의미다.

정동의 카페 창문에서 찾은 귀여운 고양이가 있는 풍경정동의 카페 창문에서 찾은 귀여운 고양이가 있는 풍경


올 해도 친구들과 3박 4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그전에 했던 좋은 호텔에 묵고 관광지와 맛집을 찾아다니는 뻔한 여행이 아니라 제주도만의 특별한 자연을 걷는 치유여행에 가깝다. 향긋한 숲 냄새를 맡으며 3박 4일 동안 걷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다 돌아오면 늘 더 건강해지고 활력이 생긴다.

제주도 쇠소깍 풍경제주도 쇠소깍 풍경


그렇게 건강하고 행복한 여행이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도 전처럼 싫거나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루틴이 있는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밥하고 살림하는 지겨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싫어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기대감에 마음이 즐거웠다.


며칠 동안 만나지 못한 나와 만나 내 세계를 가꾸는 일을 하고 싶은 설렘이 들었다. 매일 혼자서 하는 독서와 글쓰기, 산책하며 내 눈에만 예쁜 것들을 찾아 사진 찍고 그림 그리며 가꾸어 나가는 내 집에 어서 가고 싶었다.


너무도 잘 맞는 친구 같은 나를 빨리 만나고 싶었다. 누군가와 같이 하는 여행은 시선이 외부로 향한다. 여행은 주변을 관찰하고 사람들과 대화하며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고, 혼자 보내는 시간은 외부에서 받아들인 것들을 하나하나 소화시키고 처리하는 과정이다.


일상 속에서는 사람들과 만나고 많은 것을 봐도 저녁이면 그걸 소화하고 처리할 여유가 있는 반면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그럴 새도 없이 많은 것들이 쌓이기만 한다. 그게 시간이 길어질수록 버거워질 수 있다. 최근에는 쌓이는 것이 많아지기 전에 처리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일을 자주 하고 있다. 그 일이 나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전에는 기를 쓰고 나를 피해 다녔다. 술과 모임, 소비적인 여행과 쇼핑으로 나를 피해 다니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생각했다. 많은 자극과 문제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채 그렇게 나를 그 쓰레기들과 놔두고 밖으로만 향했다. 늘 뭔가 불편하고 불만이 쌓이고 힘들었다. 지금은 제때 스스로를 잘 돌보아 편안하게 해 주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들로 일상을 채우자 명료한 정신으로 제대로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나와 만나는 시간이 꼭 필요해졌다. 단정하게 정리된 나만의 비밀 정원으로 쏙 들어가 취향에 맞는 것들을 추구하며 나만의 아름다운 것들과 잔잔한 시간을 보내는 일만큼 좋은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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