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좋은 것은 혼자의 시간을 잘 보내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난 사람에 대한 의존성이 심했다. 친구나 만나는 사람이 많아야 마음이 안정 됐다. 친구들을 자주 못 만나면 뭔가 잘못된 거 같고 불안했다. 왕따를 당하거나 친구 없이 지낸 적도 없는데 그런 불안감이 컸다. 그래서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오랜 시간 꾸역꾸역 관계를 유지하느라 에너지를 다 쓰곤 했다.
이 사회는 혼자 지내는 사람에게는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보는 시선이 강하다. 무리 속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사람을 곱게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 불안감은 본인에서 자식에게까지 이어져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성을 키운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고 엄마들 무리에 끼기 위해 노력한다.
나도 그랬다. 내 자식은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인싸 재질의 아이가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며 불안감을 쓸어내리곤 했다. 아이가 혼자 고립되는 상상만 해도 패닉에 빠질 거 같았다.
그런 불안감이 엄마들을 무리 짓게 하고 굳이 친구와 어울리기보다는 뭔가를 만들거나 퍼즐 놀이 같이 혼자서 하는 놀이를 즐기는 아이조차 억지로 무리 짓게 만든다.
초, 중고등학교 때에도, 20대 때에도 매일 친구들과 어울리고 술집에 미팅에 쓸데없는 수다로 시간을 다 보냈다. 성격이 외향적인 편이라 그 시간은 즐거웠고 좋았다. 하지만 균형을 지키지 못했고 내실을 키울 시간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도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그래서 인형극동아리도 그렇게 열심히 하고 예술적인 일들을 쫓아다녔다.
남이 해 놓은 것을 즐기기만 할 뿐 내가 해볼 엄두도 시간도 내지 못했다. 진짜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위한 시간을 하루에 30분도 내지 않았다. 친구가 부르면 다 내팽개치고 뛰어 나갔다. 늘 나 자신보다 남이 우선이었다.
그 습관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도 그렇게 몰려다녔다. 큰 애 친구 엄마들과는 바쁘게 일을 하는 중에도 20년 가까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다. 둘째 친구 엄마들하고도 아이들 놀린다는 명목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이 집 저 집 다니며 놀았다.
육아의 시간을 그들에게 의지하며 즐겁게 보냈다. 아이들 사회성 키워주고 놀린다는 명목으로 엄중하게 직면해야 할 여러 가지 문제들을 회피했다.
결과적으로 진짜 아이를 위하는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가 굳이 친구를 만들어주지 않아도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관계성 속에서 의미를 찾는 아이라면 스스로도 잘 해냈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혼자서 하는 놀이를 더 좋아하는 아이라면 그 속에서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다 나를 위해서였고 아이는 핑계였다. 내가 혼자 있지 못했고 그렇게 불안감을 잠재웠다. 그래서 힘든 관계도 질질 끌며 에너지를 소진했다.
큰 애가 태어나자마자 남편 직장이 있는 대전 사택에 산 적이 있었다. 그때도 같은 아파트의 또래 엄마들과 매일 어울렸다. 지나고 보니 아이를 온전히 혼자서 마주하고 둘 사이의 친밀감을 키우기보다 그렇게 왁자지껄하게 사람들과 함께 육아의 시간을 보냈다.
물론 엄마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고 즐거워야 아이한테도 좋았겠지만 정도가 심한 편이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원하는 목표를 만들며 진지하게 살지 못했다. 아이와도 그렇게 시끄럽고 요란한 시간 속에 같이 있기만 했지 둘만의 조용한 시간 속에서 아이를 제대로 응시하진 못했다.
집에 와서 조용해지면 사람들과의 관계를 고민하고 생각하느라 또 시간을 낭비했다. 나 자신과 진짜 중요한 가족들의 문제는 그냥 덮어두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빠져서 허우적댔다.
친구가 부르면 나의 모든 계획은 중단하고 나갔고 거의 최근까지 그랬던 거 같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무시했다. 그들에게 나를 맞추는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나를 편하게 생각하고 그런대로 잘 지내지만 그게 진짜 내 모습도 아니고 제대로 된 관계 맺음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에 대한 의존욕구가 깊었고 제대로 관계 맺는 법을 몰랐다. 남보다 내가 먼저여야 했는데 난 늘 다른 사람의 요구에 맞출 준비가 되어있었다. 진짜 충만한 관계에서 오는 편안함과 안정감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을 조금이라도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불편하고 화가 났다. 나는 이렇게 맞추려고 노력하고 참는데 너는 왜 그러니 라는 생각이었다.
사람들과 만나도 만나도 충만된 느낌보다는 늘 나의 행동과 말들을 점검하고 후회하고 고치려고 노력한다. 완전히 편안하지 못하다.
아직도 그런 마음을 다 버리진 못했지만 혼자의 시간을 잘 보내게 되면서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사람들에 대한 의존욕구도 많이 사라진 거 같다.
늘 나 자신보다는 ‘남들과 잘 지내야 하고 모나게 굴지 않아야 된다’라는 잘못된 신념을 너무 오랫동안 품고 있었다. 남편은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하나도 없는 사람 같다. 꼭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다. 그냥 만나면 만나고 못 만나도 하나도 아쉬울 게 없어 보인다. 그저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일 생각이 머릿속이 가득 차 보인다.
예전엔 그런 남편이 사회성이 떨어지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사람들과 잘 지내는 거 같지만 자신은 하나도 모른 채 남들에게 맞추기만 하는 내가 더 큰 문제였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상대방에 맞추려 전전긍긍하며 살아왔지만 사람들과 편안하지 못하다.
내 본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관계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제 그런 관계는 그만두고 싶다. 내 본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고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만 만나고 싶다.
그런 강단을 키우기 위해선 혼자의 시간이 두렵지 않아야 한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 그런 힘이 많이 키워진 거 같다. 글 쓰고 그림 그리는 혼자의 시간의 만족감과 풍요로움이 관계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사라지게 만들어준다.
내가 어쩔 수 없는 타인의 생각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하는 일을 그만두겠다. 그 시간에 내 마음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내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겠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렇게 제대로 나를 알고 진짜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