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를 미워해도 됩니다>를 읽고
익명의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과는 다른 경험을 한 주변인들의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휘둘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에 <부모를 미워해도 괜찮습니다>라는 일본 작가 가와시마 다카아키의 책을 읽었다. 아직도 이런 책을 선택하는 걸 보면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 비난하는 마음, 죄책감 같은 다양한 감정으로 힘들다는 뜻인 거 같다.
“이 세상에는 마음에 문제가 있는 부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당신이 그런 부모에게서 상처를 받았으며 부모의 지배나 의존에 휘둘리며 살아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당신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부모 자녀 관계만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이지요”라는 구절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상황이 다른 부모자녀 관계는 고려하지 않은 채 자녀가 부모에게 해야 할 도리에 관한 이야기를 누군가 할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 시댁의 보통의 부모자녀 관계와 비교해 봐도 내가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괴롭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를 어떻게 시설에 모셔’라고 시부모님 두 분과 엄마를 요양원에 모신 내 앞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아픈 부모를 모시는 초기 단계라 하루가 멀다 하고 응급실로 뛰어다니고 며칠씩 밤을 새우고 생활이 망가져버리는 난리를 수차례씩 겪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이든 요양원에 모시게 되는 그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칼로 가슴이 찔리는 느낌이 든다. 요양원에서 쇠약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엄마를 볼 때마다 내가 과연 더 이상 할 게 없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을 반복하게 된다.
처음부터 멀쩡한 부모를 바로 시설에 보내는 사람은 없다. 이 방법 저 방법 다 해보고 마지막으로 24시간 감시하지 않으면 쓰러져서 큰 골절의 위험에 처하거나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거나 응급실을 집 앞 병원 드나들 듯 다니게 될 때, 도저히 집에서 일반인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모시게 되는 거다.
복잡한 감정의 응어리가 해결되지 않은 채 치매에 걸린 엄마를 2년간 모셨고 내가 무너져 가고 있음을 느꼈지만 건강한 신체의 엄마를 요양원으로 모실 결심은 쉽게 하지 못했다.
그러다 친척 집에 가셨다 골반 뼈가 골절되고 수술을 하고 소변 줄을 빼지 못한 채 퇴원하게 되었다. 소변 줄 때문에 집으로 모실 수 없었다. 소변 줄을 자꾸 빼시기 때문에 잘못하다간 방광이 부풀어 큰일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골반 뼈가 안정적으로 붙어 걸을 수 있고 스스로 배뇨를 할 수 있을 때 모시고 올 생각이었다. 그 당시 전세로 살던 집에서도 갑자기 나가게 되어 다른 지역에 있던 우리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인테리어를 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도 겹쳤었다. 인테리어 기간 동안 레지던스에서 생활해야 했는데 움직일 수 없고 소변 줄까지 달고 계신 엄마를 모시고 나올 수 없었다.
모든 일이 정리되면 모시고 올 수 있을 줄 알았던 엄마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결국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그대로 요양원에 지금까지 계시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일일이 주변 사람 모두를 붙들고 이야기할 수 없기에 난 그냥 요양원에 엄마를 버린 나쁜 딸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진짜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나를 계속 생각한다. 내가 돈이 정말 많아서 한 달에 천만 원쯤 하는 병원에 모시거나 24시간 간병인을 붙일 수 있다면 이 죄책감이 덜어질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남에게 부정당한다고 해서 불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경계선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의 괴로움을 이해하지 못한 것뿐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경계선을 분명하게 인지하는 것입니다.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당신이 납득할 수 있으면 괜찮습니다”라는 이야기를 읽으니 위로가 되었다. 나의 모든 사정을 다 아는 사람이 해주는 진심 어린 위로 같았다.
“심리 상담에서 다음으로 한 일은 부모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일이었습니다. ‘부모가 슬퍼하는 것은 자신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경계선을 침범당하며 상처를 받아온 사람들이 주로 보이는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가 과도하게 엄마의 불행에 책임감을 느끼는 이유기도하다. 엄마가 나에게 과하게 집착하고 통제하면서 건강한 분리가 되지 못했다. 엄마가 치매에 걸리기 전 내가 45세가 될 때까지도 엄마는 나를 좌지우지하고 모든 것을 통제했다. 그 긴 시간이 나를 쉽게 놔주지 않는다.
이런 내용들이 내가 죄책감을 크게 느끼는 이유를 깨닫게 해 주었다. 시부모님 두 분도 마지막에는 요양병원에 계셨다. 그래도 남편이나 시누이, 시동생 아무도 나처럼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는다. 엄마에게 나쁜 소리를 들어본 적 없고 정말 좋은 엄마였다고 삼 남매 모두 인정하는 어머니셨는데 오히려 더 쉽게 떠나보내드리는 느낌이다.
나는 사랑의 감정보다 죄책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엄마의 행복과 불행이 내 책임인 거 같은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는 게 너무나도 힘든다. 그게 병적인 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음에도 자꾸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하는 말들에 크게 흔들린다. 난 할 만큼 했으며 엄마의 지금의 불행한 상황이 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병적인 죄책감과 그에 따라오는 비난의 감정만큼 해로운 게 없다고 한다. 죄책감을 느끼면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꾸 엄마를 비난하는 감정이 뒤따라온다. 그러고 나면 또 죄책감을 느끼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그게 나를 얼마나 갉아먹는지 언제나 그만둘 수 있을지 괴로웠다.
“부모를 비난하는 데 집착하지 않게 된 당신은 자신의 인생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느낌을 믿으면서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싫어하는 것은 피하면서 살면 됩니다. 언제나 자신의 행복을 판단 기준으로 삼으며 살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좋은 생각들을 하며 많이 나아졌다지만 엄마를 면회하고 오는 날이면, 아니 전날부터 가슴에 돌덩어리가 얹힌 것처럼 괴롭고 가슴 시리고 슬프다. 그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어 엄마를 비난하고 정말 악순환이다.
끝없이 누군가의 인정과 확인을 받고 싶은 마음을 거두고 내 감정을 믿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는 걸 납득시키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제가 잘못한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자신들의 문제에서 도망쳤고 그로 인한 후폭풍이 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콤플렉스를 가진 부모는 자신에게 불편한 일이 생기면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마음이 건강하고 독립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당신의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부모에게 상처를 받았던 과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말들이 엄마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남들의 확인되지 않은 말들에 휘둘리기보다는 나에게 필요한 책을 찾아 읽고 내 감정을 스스로 확인하고 받아들이고 생각을 재정립해야겠다.
부적절한 불안감과 죄책감을 벗어버리고 내 인생에 집중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님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은 오직 자신에게만 있다. 그 누구 때문이라는 것은 맞지 않는다. 내가 엄마의 불행에 책임이 없듯이 더 이상 엄마의 책임도 묻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