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일까

이곳에서 나는 어떻게 일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

by 김까미

1. 계획을 세우는 자리에 서다

이제 수습이 종료된 시점에, 팀장과 팀원들과 함께 2026년 우리 팀의 계획을 세우고 KPI를 정했다. 나는 이전 회사에서 경험했던 프로젝트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지금 회사에 맞는 프로세스를 정리해 보고, 그동안 하지 않았던 부분도 시도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어떤 내용인지 묻는 질문에 차분히 설명을 덧붙였다. 회사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은 조정이 있었지만, ‘해보는 것’ 자체에 대한 저항은 없었다. 이후 팀장이 그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고, 궁금한 점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수용하는 분위기였다. 개선 후 프로세스를 제안하고, 그것이 조직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나’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2. 제안 뒤에 따라온 불안과 수용의 경험

프로세스를 정리하고 공유하는 동안, 마음 한편에서는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이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너무 교과서적인 이야기 아닐까?’
‘현실도 모르고 탁상공론만 한다는 말을 들으면 어떡하지?’
책임연구원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으면서, 이 정도도 자신 있게 내세우지 못하는 나를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두려웠다. 그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복도를 걷다 보면 이곳이 이전 회사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따뜻한 물에 손을 씻으며 숨을 고르고, 거울 속 내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한 번, 작게 웃어본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건 나의 상상이고, 추측일 뿐이다.’
지금 실제로 일어난 사실은 무엇인지, 확인된 것은 어디까지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지금 내가 또 다른 시작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불안이 올라오는 이유와, 그 안에 담긴 나의 진짜 욕구를 차분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정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자리로 돌아오면, 신기하게도 다시 그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불안을 다루면서 제안한 개선 후 프로세스가 팀장에게 수용되고, 소장의 컨펌을 거쳐 전사에 공유되었다. 그 과정을 지나오며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붙었다. 내가 이해한 방향, 효율적이고 이로운 방식이라고 생각한 선택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나 자신이 인정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해왔던 일의 방식과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생겼고, 그 사실이 나를 뿌듯하게 했다. 성과가 곧 나 자신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내 능력 중 하나가 인정받은 이 경험은 오래된 상처 하나를 조용히 덮어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3.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


어떤 일을 해나갈 때, ‘해야 할 일을 하는 것’과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환경일까, 아니면 개인의 태도와 성향일까. 이전 회사에서는 개인의 생각으로 일을 시작하더라도 반드시 팀장의 컨펌을 받아야 했고, 결국 조직의 판단에 따라 정해진 방식으로 일을 해야 했다. 반면 스타트업에서는 정해진 절차나 규정이 없기에, 해야 할 일이나 필요한 일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한때 나는 조직의 컨펌을 통해 주어지는 ‘해야 할 일’을 하는 쪽이 더 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전 회사에서도 필요한 일을 찾아서 하라는 압박은 있었지만, 막상 ‘이거 해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면 곧바로 방향이 바뀌곤 했다.
“아니요, 이게 더 중요하니까 오늘은 이걸 하세요.”
“이걸 왜 그렇게 해요? 이렇게 해야죠.”
그런 말들 속에서 내 생각은 자주 꺾였고, 결국 내 판단은 틀린 것이라는 인식만 차곡차곡 쌓여갔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는 다르다.


‘아, 이거 해야겠는데?’ 싶으면 하면 된다. 그리고 결과를 보여주면 긍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온다.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을 함께 고민해 주고, 내가 미처 손을 대지 못한 부분은 같이 하자며 손을 내민다. 반대로 다른 팀원이 해낸 일을 보고 더 나아질 방향을 제안할 때도, 수정해도 된다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전 회사에서는 그것이 월권이자 참견이었다면, 여기서는 도움과 조언으로 받아들여진다. 그 차이가 이 회사에서의 시간이 즐겁게 만든다.


이곳에서의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 사람’이기보다, ‘어떻게 일하는 사람인지’를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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