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기 힘들다는 아이와, 의지 했던 팀장의 새로운 소식
”하아. 피곤하다. “
금요일 퇴근을 위해 회사 출입문을 나서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툭 튀어나왔다. 뒤따라 나오던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머쓱한 마음에 서로 웃으며 “금요일이네요. 한 주간 수고하셨어요.” 같은 짧은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회사에서 늘 반복되는 평범한 장면인데도 마음에 잔상이 남았다. 복잡한 마음을 한숨에 섞어 내뱉다가,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아 괜히 놀랐기 때문이다.
월요일부터 독감 판정을 받은 아이는 일주일 동안 혼자 집에 있을 수 없었다.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아이의 하루를 돌봐주셨다. 그 이후, 4시부터 내가 퇴근하는 7시까지는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평소라면 세 시간쯤은 거뜬히 혼자 보내던 아이였지만, 아파서인지 그날은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사람이 보고 싶어.”
그 말을 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유난히 슬퍼 보여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는 어쩔 수 없다. 지하철은 거리만큼의 시간을 요구하고, 마음이 급할수록 그 정확한 소요 시간은 더 답답하고 야속하게 느껴진다.
그날 한숨이 깊어졌던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우리 팀은 격주로 팀장과 1:1 세션을 갖는데, 그 자리에서 팀장이 내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나를 면접 보고 채용한 사람이었기에 마음으로 의지하고 있던 팀장이, 3 ~ 4개월 뒤 회사를 떠날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그동안 유난히 지쳐 보였던 이유가 이해되기도 했다. 몇 가지를 더 물어보니 그의 선택은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었고, 그래서 진심으로 축하를 건넸다. 하지만 내 마음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팀에서 책임님 포지션도 한 번 생각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 계속 다니실 생각이세요?”
그의 질문이 한참 동안 마음에 남았다. 안 그래도 긴 출퇴근 거리가 고민이었다. 아이의 성향을 생각하면 이사 가능성은 낮고, 그렇다면 내가 조금 더 고생하면 된다고 생각해 왔다. 최소 1년은 다닐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 회사에서의 일이 재미있다. 내 의견을 경청해 주고, 수용해 주며 엄지를 들어주는 동료들 덕분에 일에 신이 난다. 20대 후반의 직원 두 명과 함께 일을 이끌어가는 경험은 나의 강점과도 잘 맞는다.
하지만 아이가 아프면서 계획했던 돌봄의 균형이 흔들렸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기준으로 세웠던 계획이,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며 무너졌다. 3월부터는 6시 퇴근이라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더 늦어진다.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의지했던 팀장이 떠난다는 소식까지 겹치자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한 주의 마무리는 늘 연구소 주간 보고다. 그날 회의에서 소장님의 마지막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연구소가, 우리가 지금 놓치고 있는 일은 없나요?”
소장님은 이전에 책임 연구원이라면 스스로 놓치고 있는 부분을 짚어주길 바란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 질문이 훅 들어왔을 때, 대답하지 않은 나 자신이 더 크게 느껴졌다. 모두에게 던진 질문이었지만, 왠지 나에게 더 기대가 실린 질문처럼 느껴져 마음이 찔렸다. 이어서 팀장에게 잠깐 남아 달라고 하신 말씀이, 나에 대한 기대나 평가를 물으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며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제 정직원이 되었으니 회사가 나를 쉽게 자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전 회사에서의 경험이 떠오르며, 또다시 같은 상황을 겪을 수 있다는 불안이 스며든다. 나는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어떻게 일하는 사람인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선언해 왔다. 그런데 이런 순간에 흔들리는 나를 보면, 마음속에 양가감정이 생긴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이라 믿어왔던 지난 경험들마저 의심하게 된다.
‘정말 이 회사에서 그럴 수 있을까?
내가 너무 이상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 아닐까?
팀장이 떠난 뒤, 내가 그 자리를 맡을 의지가 있을까?
자신은 있나?
다른 팀장이 온다면, 그 기대에 맞출 수 있을까?
아니, 함께 잘 맞춰갈 수 있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인생의 파도는 잔잔해지는 듯하다가도 다시 거칠어진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밀려오는 파도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지금의 나를 믿는다면—이 또한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