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정의하지 않은 문제
”오늘 수고가 많은 날이었네요. “
퇴근하는데 마주친 소장님과 스몰톡 중 해주신 말씀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난 월요일 밤 사내 메신저에 울린 하나의 메시지를 시작으로 고조되었던 긴장이 풀리는 대화였다. 고객사 중 하나에서 심각한(?) 컴플레인을 받았다는 사업팀의 메시지와 명일 긴급회의 소집요청은 불안을 자극했다. 화요일 오전부터 목요일 오후 고객 방문을 대응하기 위한 작업이 이어졌다.
고객의 컴플레인이 무엇인지 전해 들은 상황을 통해서 어떤 것이 문제이고, 어디서 발생한 것인지 현행과 히스토리와 원인에 대해 빠르게 파악했다. AI 기술 담당자에게서 데이터 구조와 범위,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RAG 기반의 LLM 서비스의 한계에서 오는 원인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가장 기준이 되는 답변 데이터의 범위가 한정적인데, 업데이트를 아무도 챙기지 않아서 발생한 부분이 제일 컸다. 질문으로 인입되는 화면도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구조였다. 현황을 보고 나니 답답한 마음에 헛웃음이 났다.
이 상황을 만든 책임 담당자 둘은 떠났고, 인수인계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회색지대의 일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아무도 정의하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였다. 현황 파악 다음에는 가장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했다. 원인이 분명했기에 대응 방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와 현실적인 방안으로 논의를 맞췄다.
다음은 이제 고객사에게 설명하기 위한 객관적 데이터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담당자는 여기저기 흩어진 데이터들을 보내주었고, 그 데이터들을 하나로 정리했다. 하나씩 모으면서 알아보기 힘든 부분들의 데이터를 추리고 요약하며 정리하는 과정이 재밌었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그 작업만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치고 들어오는 다른 프로젝트의 일들을 확인하고 정리하면서 진행하려니 뇌세포가 모자랐다.
하루의 업무에 쓸 수 있는 뇌세포의 수는 한계가 있는데 늘 그 한계까지 끌어다 쓴다. 그 느낌이 나쁘지는 않은데 문제는 이렇게 한계에 다다른 때이면 마음의 소리가 필터 없이 자꾸 튀어나온다. 밤 9시까지 진도가 안 나가서 결국 전임 담당자이자 지금도 같이 해야 하는 팀장에게 한소리 해버렸다.
”이 걸 이렇게 종료해서 불을 껐으면 후속 작업을 했어야지, 그걸 이대로 지금까지 그냥 내버려 두면 어떡하냐요! 확인하고 치웠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요? “는 물음에 그때는 이어지지 않을 줄 알았다는 팀장의 답변에 웃음이 났다. “그때 싼 X을 이제 치우는 거네요. 아니 뭐 모든 일이 서로 치워주고 하는 거라지만... 답답해서 지금 두 시간째 한 줄 썼어요.”라고 속마음이 가감 없이 나갔다. 본인이 직접 써주겠다고 15분 만에 할 수 있다고 하기에 얼른 자료를 줬다. 그리고 조금 쉬다 보니 정신이 돌아온다.
팀장이 작성한 자료의 내용 중 부족한 부분을 수정하고, 데이터들을 정리해서 사업팀에 공유했다. 목요일 오전 부족한 데이터를 추가해서 정리해서 고객과 회의를 무사히 마쳤다. 준비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사업 담당자가 회의를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흐름을 잘 이끌어주었고, 덕분에 고객사도 동의하며 제안에 대부분 수긍하고 회의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퇴근하는 길의 소장님과의 스몰톡은 마침표를 찍어주는 기분이었다.
회의가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과 도움이 되었다는 효능감이 강하게 남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다소 격하게 나간 말에도 방어적으로 대응하긴 해도 몰랐다는 팀장의 솔직한 답변과 내가 답답한 부분에 대한 도움은 관계에 대한 긍정 경험을 심어주었다. 앞으로 제안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챙기며 결과를 보여줘야 하겠지만, 우선 오늘은 집에 가서 운동을 해야겠다. 데이터들을 들여다보느라 모니터 앞에 웅크리고 12시간씩 일했더니 몸이 아프다. 열심히 쓰여준 몸뚱이도 기름칠을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