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이 가랑비에 옷 젖듯 익숙해져서

불평, 불만, 혐오에 대하여

by 감자

“고객의 소리”를 듣기 위해 고군분투

언제나 환영한다, 불편한 게 있으시면 편히 말씀 주세요, 하는 말들이 어느 사업장에든 적혀있는 것 같다. 사실은 정말로 반기지 않을 것도 같고, 막상 들어서면 퇴근만을 바라는 직원들이 로봇처럼 반길 때도 있다. 나조차도 그렇지만…


이건 이래서 싫다, 저건 저래서 싫다, 부지런히 민원을 수용하고 반영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누군가의 의견이 반영됐을 때 누군가는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애꿎은 담당자만 종이처럼 나풀거리며 이리저리 오가는 꼴이다. 무언가 수틀린다 싶으면 “담당자 나와봐” 라며 이름 석 자를 요하는 이도 적지 않다.


과연 일만 그럴까.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이들도 사내의 한 켠에선 호평을, 한 켠에선 혹평을 듣는다. “너무 잘했어. 고생하셨어요.”, “일을 이렇게 하시면 안 되죠.”,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춰야 할지 모르고 삐걱대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나면 그제야 사회가 주춤한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간다.

‘설마, 나 때문이겠어?’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 때, 별 거 아닌 일에도 분을 참지 못하고 표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를 계기로 좋아하던 친구와 엇나가기도 하고, 괜한 상처를 내거나 방 한 구석에 쭈그려 ‘세상은 요지경’이라며 실체 없는 모든 것을 원망한다. 그렇게 미워하는 것에 내 모든 하루들을 쓰고 나면 내 안에는 어두침침한 웅덩이가 얕게 깔린 기분이다. 욕으로, 소음으로 해소해보려 해도 그 웅덩이는 너무 얕아서 물이 시원하게 튀기지도 않고 찰박거리며 내 바지 끝단만 더럽힌다.


미워하는 게 너무 일상이 된 것 같다.

사람도, 상황도, 단점을 찾아내 불평하려면 끝도 없이 말이 길어진다. 길어진 말이 내 미간을 파먹는다. 너나 할 것 없이 가슴을 꾸준히 파먹어 끝에는 부스러기를 남겨 그마저도 깨끗치 않다.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 앉아” 하는 유행어가 돌았다. 나도 그렇게 살았다. 불편하면 다른 걸로 대체하면 그만이었다. 안 보면 그만, 안 쓰면 그만, 안 하면 그만. 그게 내 삶을 가치 있는 것들로 채워가는 나름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착각했다. 얼마 살지도 않은 인생 중 어느 날 끝없이 대체품만 찾으며 살 순 없음을 깨닫기 전까진 그랬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어딘가에 있을 ‘나와 맞는 것’을 찾아다니니 어느새 내 본집도 사라진 기분이었다.

내가 내가 사랑하는 것이 왜 소중하냐면, 유한해서였다. 모르는 새 미움이 습관이 된 내 세계에서 사랑하며 빛나는 건 몇 되지 않았으니까. 유한한 것들에 마음 아파하기보다 미운 마음을 빛나게 들춰내는 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아.

미워하던 세계를 빛나는 것들로 채우려 장점을 캐내듯 찾아야 하는 건 피로할 수 있다. 좋은 말과 생각으로 살아보려 해도 세상이 내게 협조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나는 나와 영원히 끝까지 살 텐데. 그 피로를 조금만 이겨내면 곧 내 세계가 완전히 바뀌지 않을까. 사회가 협조하지 않아도 오로지 내 힘으로 나는 맑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누군갈, 무언갈, 어딘갈 미워하기보다 조금만 더 피로하게. 아직은 더 피로하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좋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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