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나'의 '휴일'을 찾아서

현대 사회, 퇴근, 워라벨에 대하여

by 감자

요즘 야구에 푹 빠졌다. 어릴 적 아버지가 응원하시던 독수리 군단의 경기를 미친듯이 보기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회사 사람들과 야구장을 다녀오니 더 신이 났다. 건성으로만 보던 스포츠 채널의 경기를 꼼꼼히 챙겨보며 아쉬워 하거나 기뻐할 줄도 알게 됐다. 퇴근 후 18시 30분 이후는 오로지 야구의 시간이 되었다.

아이패드로 야구 중계를 틀어두고, 휴대폰으로 주황빛 유니폼이 얼마에 올라왔는지 뒤적인다. 단체 제공이라도 된 것 같은 유니폼은 10만원부터 시작한다. 침만 꿀꺽 삼키고 다시 응원에 매진하다보면 어느새 9회 말. 9시 반에서 10시를 가르키는 시계만 남았다. 씻고 나와 잠들기 전까지 엄지를 열심히 내리며 오늘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짧게 편집된 것들을 구경한다. 길게 편집된 10분 내외의 영상은 다음날 출근길 몫이라 아껴둔다. 이렇게 내 하루가 끝난다.


5일이 지나고나면 2일은 금방 지나간다. 하루는 약속을 잡아 친구와 밥을 먹는다. 주로 애인을 만난다. 인간관계 풀이 그렇게 넓지 않아 끽 해야 한 달에 두어명 만나는 것 같다. 분명 다양한 사람을 만나겠노라 타지역으로 이사까지 결심했지만 쉽지 않다. 다른 하루는 밀린 집안일을 쳐낸다. 설거지. 빨래.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만 주워도 하루가 다 간다.

오전은 뒹굴거리며 휴일을 만끽하고, 오후 즈음 빨래를 마친다. 틈틈이 화장실 청소라던가, 미처 버리지 못한 영수증들을 정리하고나면 진이 빠진다. 그렇게 낮잠을 자주고 저녁을 맞는다. 무료함이 끝을 달리면 입이 자극을 원했다. 닭발, 불닭볶음면 같은 음식들을 입에 넣는다. 많이 먹는 편도 아니라 배가 불러도 꾸역꾸역 입에 넣는다. 음식물쓰레기는 더 귀찮으니까.




분명 타지로 오면서 하고픈 일이 많았다. 지하철도 없이 한 시간에 버스 한 대 다니던 그 시골에서 나는 꿈 많은 사람이었다. 잠재력 넘치는 꿈 많은 사람. 그래서 사람 많은 이곳에 오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1년 계약직임에도 과감히 이사를 결정했건만. 정작 취업한 직장 일에 치여 내 저녁은 온전히 한화이글스의 것이 되었다.

회사 사람들은 하루 종일 야구 이야기를 했다. 야구는 일종의 소속감 같은 거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그래서 더 야구에 빠져든 게 아닌가 싶다. 타지살이 하는 무의식의 설움을 달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특별한 여행이, 특별한 시간이 휴일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들이 더 특별한 일인 것도 안다. 하지만 요즘은 본래의 내 모습도, 시간도 죄다 잃어버린 느낌이다. 환경에 따라 휙 바뀌어가는 나의 모습을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 싶다. 계약이 끝나가니 이직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알면서도 내 몸은 침대로 향한다. 좁은 방안에 책상과 의자를 사들였지만 그저 질좋은 '유튜브 받침대' 신세다. 남은 시간 동안 이 책상에서 글을 30편 써내리란 다짐을 한다. 자격증 하나를 따내리란 다짐을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모습은 어떤가 궁금하다. 본래의 '나'를 잃지 않았는지, 어쩌면 본래의 '나'란 건 없고 성장으로 변화된 '나'라고 받아들였는지.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직장 중 휴일'을 '나'로 가득 채워가보려 한다. 응원한다. 나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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