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라고 불리지만 정처없는

일, 아이들, 청소년지도사에 대하여

by 감자

하늘은 높고,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많고, 세계는 좁다랗다고 느낀다.

전세계를 한 번에 오가는 재력가라면 그 세계는 당연지사 넓을 것이고,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시기면 한 때 좁은 세계에 살 수밖에 없고, 일이 많아 쳇바퀴 같은 하루들로 겨우 견뎌낸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겠다.





무슨 일 하세요?

"청소년 지도사"입니다.


청소년지도사는 청소년활동(프로그램, 사업)을 전담하여 청소년의 수련활동, 지역․국가 간 교류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예술활동 등을 지도하는 국가전문자격증이다. (출처: 청소년지도사 종합정보시스템)


직업명을 정확히 말하기도 애매하다.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라. 나름 배려한다며 '아... 그럼 청소년들 만나는 일이에요? 수련원이나... 그런 거?'라는 대답도 태반이다. 하지만 비전공자가 모르는 청지사의 세계는 생각보다 넓다.

청소년센터, 문화의 집, 청소년수련원(흔히들 생각하는 그 '조교'가 있는 곳), 학교밖센터, 가출청소년쉼터, 위기청소년의 동반자. 그리고 연령대가 낮은 엔터 사업계 쪽 연습생들의 동반자로 일하기도 하고, 교육 계열에서 기획을 맡아 일하기도 한다. 넓게는 학교 상담사로도 일하는 사람도 많다. 청소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녹아들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아이들과 동료들에게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교직에 있는 선생님들과 비교했을 때 나누는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교내에서 입시, 학업, 진로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면, 교외에 있는 '청소년지도사 선생님'과는 친구와 싸운 일, 좋아하는 친구 이야기, 대학에 대한 고민, 꿈에 대한 이야기, 가족관계, 우울감, 성정체성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하는 일도 교직 선생님들과 다르다. 교직 선생님들이 교과목을 가르친다면, 우리는 아이들의 소중하고 밝은 기억과 미래에 한 줌의 손이라도 뻗으려 다가가는 일을 위주로 한다. 대인관계교육, 사회참여교육, 의사소통교육. 뿐만 아니라 다양한 체험의 자리들도 마련한다. 만들기, 체험하기, 나가보기, 다녀보기... 의 다양한 것들을 한 번에 수행한다. 틀에 박힌 행정만 빼면 변수가 너무도 많아서 매번 육각형도 아닌 다각형 인간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학부 시절. 대외활동으로 처음 만난 아이였다. 코로나로 제대로 된 친밀감도 쌓지 못하고 어설프게 마무리되던 활동이라 마음이 아쉬웠다. 그런 아이가 마지막 만남 때 편지를 줬다.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나 같은 선생님?'

내가 누군지도 몰랐던 스무 살에 나보다도 먼저 나를 알아보고 마음에 품어준 친구였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다가가고, 물어보고. 하는 것들이 전부였음에도 그 애는 그런 편지를 써냈다. 이제야 말하지만 성적과 적성에 대충 맞춰 적당히 들어온 학과였다. 그때부터 나는 '청소년 지도사'를 꿈꾸기 시작한 듯싶다.


첫 직장으로 '청소년센터'를 왔다. 다양한 기관들이 있지만 나름 청소년 기관 중 규모가 조금은 있다고 볼 수 있다. 스치듯 만난 아이들은 내 이름을 기억하고 먼저 다가와 안기고. 정작 내 담당이면서 제대로 챙기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의 공통점은 '따뜻하고 해맑다'는 점이다. (물론 정말 듣도보도 못한 민원을 받을 때도 많다... 상상초월한 민원은 정말 많다...)


정신없이 일을 쳐내느라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면 사실 피곤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행정을 한 번 더 쳐내면 아이들은 좀 더 웃을 수 있다. 내가 한 번 더 해내면 행복한 행사가,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어느 일부의 좋은 기억이자 어른이자 미래의 발판으로 남을 거란 기대로 일을 한다.


나도 어리숙한 어른이고, 내 세계는 너무 좁고, 쏟아지는 행정으로 눈물 흘리는 때도 있고. 그렇다고 공무원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공공기관도, 공기업도 아니지만. 월급이 반짝거리는 것도 아니지만.


험난해서 아이 키우기 무섭다는 이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어주고자 출근을 한다.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해맑고 따뜻한 세계를 더 넓고 많이 보여주고 싶어 이 일을 한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청소년 지도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길 바란다.

우리는 어릴 적 만났던 무서운 '조교님'이 아니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 어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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