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에 무뎌져서
오늘이 내일이 되고 또

적응, 고임에 대하여

by 감자

하루가 똑같다.

똑같다 못해 지겨워 치가 떨릴만치 똑같고 지겹고.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본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 중 요즈음은 러닝을 하고 있다.

출근 전 아침 러닝은 꽤 상쾌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날이 더워서 그런가.


돌아와 출근 준비를 한다. 심심하게 땀에 젖은 옷가지들을 벗어던지고 그나마 상쾌한 샤워를 마친다.

점심 값을 아끼기 위한 도시락을 싼다.

출근해서 어제 먹고 남은 텀블러를 씻어 새 물을 받는다.

똑같은 컴퓨터, 똑같은 의자, 책상. 사람.

퇴근하고는 집으로 돌아가 아침 도시락으로 분주했던 주방을 정돈한다.

빨래들을 정돈하고 방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는다.

그 좁은 방안에서의 내가 바삐 움직이고, 씻고.

샤워를 하면 꼭 하루가 끝난 것 같아 저녁은 대충 때운다.


그렇게 주5일을 보낸다.

주2일은 평일날 탈출하고픈 맘에 잡았던 약속을 부랴부랴 나간다.


알찬 행복도 하루도 딱히 없는 이틀이 지나면 다시 '주5일'이 돌아온다.


놀랍도록 우스운 건 이게 겨우 1년이 채 되지 않은 계약직 직원이라는 거다.

직급보다 기간에 초점을 맞춰 나를 바라본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상사들이 보면) 머리에 피도 안 말랐을 신입이 이 하루들에 벌써 신물이 나 권태기가 왔다.


첫 직장으로 영광스러운 소속감을 느끼게 해 준 나의 선임들에게, 나는 물음표 살인마다.

조금이라도 이해가 안 가거나 놓친 듯한 부분은 바로 묻거나 보고를 한다.

감사히도 친절히 답해주는 그들은 종종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쳐내는 일'에 관해 주로 답해주곤 했다.

많이 물어왔던 것이 그이기도 했고.


하지만 곧 계약이 끝나는 이 시점에. 나의 업무적 권태로움과 이직할 직장을 감히 물을 순 없는 법이라.

차마 정돈되지 못한 좁은 여유가 비집고 튀어나와 슬쩍 티를 낼 때도 있지만

그보다 고여있는 좁다락한 내 마음의 양이 더 많아서 꽤 쉽지 않은 요즘이다.


좋게 말하자면 적응을 잘 마치고 도약의 시기이겠지만

어쩐지 나에게는 퇴보의 시간인 것만 같아 불안한 마음도 적지 않다.


. . .



이 감정에 못 이길 법도 한 나의 핑계를 나름 대어보자면...

갑작스레 취업을 해버린 터라, 편도 2시간 30분의 출근길을 이기지 못해 급하게 구한 자취방은 해가 잘 들지 않는다. 그제야 알았다. 난 햇살이 있어야 하는 사람이란 걸.


우리집은 '벽 뷰' 다.

옆 건물 창문과 맞닿아있어 겨우 들어오는 햇살이라곤 운 좋은 날이나,

새벽 늦게까지 켜져 있는 옆 건물 누군가의 방이다.

종일 집에만 있다 쓰레기를 버리러 겨우 일어나 나갈 때면 놀란다.

오늘 날씨가 이렇게 좋았구나.

잔잔한 우울이 내 안에 모르는 새 드리운 것만 같다.


그러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새까맣게 까먹었다.

난 그림을 그리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피아노를 치는 것도 좋아했다.

맛있는 디저트를 먹는 것도, 도서관에 가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숨겨진 카페를 찾는 것도,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이제 다 까먹어버렸다.

서울 한복판의 5평 방 안에 내가 꼭 갇힌 것 같았다.








뭘 하며 살아야 할까.

어떤 일을 해야 내가 행복할까.

지금의 잔잔한 행복들을 주워가며 사는 걸까.


다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렇게 사는 게 가장 보통의, 평범한, 최고의 행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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