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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증을 극복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학습장애(학습부진)를 극복한 스토리 #4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는 흥행 제조기라 불리는 세계 최고의 영화감독이다. 1993년 《쉰들러 리스트》와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아카데미상 감독상을 수상했고, 2001년 영국 명예 KBE훈장(외국인대상 명예훈장)을 받았으며,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에 뽑히기도 했다. 

스필버그는 어릴 때 모범적인 아이는 아니었고, 가족이나 이웃들이 골머리를 앓을 정도로 장난이 심한 말썽꾸러기에다 악동이었다. 어머니와 그의 여동생들은 무서워하면서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는데, 스필버그의 장난이 또래 꼬마가 저지르는 수준을 넘어서 도가 지나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동생에게 영화 주인공을 시켜주겠다면서 오랫동안 뜨거운 태양을 쳐다보게 해서 눈을 멀게 할 뻔도 하고, 미이라처럼 온 몸에 화장지를 감고 와서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스필버그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다. 깜깜한 밤에 침대에 누워있다 보면 나뭇가지가 창을 깨고 들어올 것 같기도 했고, 장롱이 괴물로 변해서 자신을 삼키려고 달려들 것도 같았으며, 물건들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다가 떨어질 것 같아서 잠을 제대로 못자고 이불 속에서 덜덜 떠는 날이 많았다. 텔레비전을 너무 좋아했던 스필버그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갑자기 펑펑 울기도 했다.      


악동 소년은 8살 때 카메라를 만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족 캠프 모습을 담기 위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8mm 코닥 무비 카메라를 사주었는데, 스필버그는 아버지가 찍은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몇 년을 지켜보다가 12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에게 자신이 가족의 카메라맨이 되겠다고 제안했다.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넘겨받은 스필버그는 홈비디오를 드라마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감독이 되고 가족들이 주인공이 되어 영화를 찍듯이 촬영하다보니 카메라를 갖고 노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는 다양한 실험적인 장면을 촬영하기도 하고 시나리오를 쓰거나 영화로 옮겨질 장면들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다. 악동으로 집안의 골칫거리였던 스필버그는 처음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꼬마 감독이 지나치게 카메라에 집착하면서 한창 촬영 놀이에 빠져있을 때 아버지는 스필버그에게 카메라를 넘겨준 것을 후회했다. 스필버그가 영화를 만들려고 시나리오 작업에 열중하는 동안 성적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학교에서 낙제하는 일이 많아졌고, 학교에 가지 않는 날도 늘어났다. 영화감독같은 예술적인 일보다는 과학자나 기술자같은 경제력이 보장되는 일을 하길 바랬던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지켜보면서 걱정을 했다.       

스필버그는 수학이나 과학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숙제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숙제를 왜 안하느냐고 물으면 "영화를 만드는 일에 그런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라고 변명하곤 했다. 스필버그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공부는 쓸모없다고 생각하면서 학교 다니는 일 자체를 싫어했다. 이러다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할 것을 우려한 아버지가 스필버그의 공부를 도와주었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낙제생이었다. 스필버그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제를 하면서 지진아 판정을 받은 이유는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난독증'때문이었다. 그래서 공부하는 일이 어려웠고, 독서도 무척 싫어했다. 그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 한 편을 읽는데 몇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공부는 못했지만 영화로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된 스필버그 뒤에는 그의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스필버그를 잘 이해해주었고, 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영화 편집을 하느라 학교에 가기 싫다고 꾀병을 부리는 줄 알면서도 몇 번이고 속아 주었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학교에 가지 않는 것도 허락해 주었다. 12살 때는 스필버그가 사막에서 영화를 찍기 원해서 그곳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고, 체리 캔들이 폭발하는 장면을 찍고 싶다고 해서 도와주다가 새로 설치한 주방 수납장을 부수기도 했다.      


스필버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믿었기에 지나칠 정도로 관대했다. 그리고 아들을 친구나 동료처럼 생각하면서 설교하듯이 말하지 않고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 어머니 덕분에 오늘날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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