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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는 어떤 직업병이 있을까?

펜혹과 엘보, 등통, 요통의 추억

며칠 전부터 전기가 통한 것처럼 허리가 찌릿찌릿 거리더니 급기야는 허리를 굽히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잊을 만 하면 찾아오는 불청객이 다시 나타난 겁니다. 한의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더니 무리한 컴퓨터 작업으로 인한 직업병이라고 했습니다. 좀 더 심해지면 척추협착증으로 걸을 때도 다리가 당기는 증상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당부하더군요. 진료실에 누워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필기와 필사, 글쓰기, 책쓰기로 생겼던 상처와 흔적들이 추억처럼 하나 둘 스쳐지나갔습니다.        

10대 학창 시절에 필기를 열심히 하다가 손가락에서 '펜혹'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펜혹은 연필이나 볼펜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가운데 손가락 손톱 위 첫 마디 안쪽 부분에 불룩 솟아있는 굳은살을 뜻합니다. 글을 오래 쓰다보면 펜을 받치는 손가락 부분에 혹 같은 굳은살이 박히는 것입니다. 펜혹은 ‘글쓰기의 상처’라고 불리며, 시인이나 소설가를 만들어 주는 통과의례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펜혹이 없는 사람의 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펜혹의 두께가 문학과 정신의 두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최근에서야 펜혹의 실체를 알고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하면서 얻게 된 영광의 상처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20대 대학 시절에는 무리한 필사로 인해 '엘보(상과염)'가 생겼습니다. 성공학 분야의 책을 탐독하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손으로 필사하기 시작했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컴퓨터 워드 작업으로 필사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필사의 맛에 푹 빠져서 하루에 10시간 이상 무리해서 타이핑을 하다보니 1년 후에 팔꿈치에 통증이 느껴지더군요. 테니스나 골프를 치다가 많이 생기는 엘보 증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가방을 들고 가다가 갑자기 팔굼치를 세게 부딪혔을 때 나타나는 전기 충격을 느꼈을 때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생각보다 염증이 심해서 1년이나 한방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답니다.      

30대 청년 시절에는 글쓰기에 심취해 '등통'이 생겼습니다. 서른 즈음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고나서부터 좋은 글감이 샘솟았습니다. 그 당시 국민 SNS였던 싸이월드 게시판에 일기를 쓰듯이 글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아는 분의 추천으로 석세스피아라는 사이트에서 성공학 칼럼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뭐 하나가 걸리면 정신없이 빠져드는 증상이 다시 도져서 다음 카페와 네이버 블로그, 세리 포럼, 매경 MK 커뮤니티 등에도 정모 후기와 독서 리뷰 등을 수시로 올렸습니다. 무리한 컴퓨터 작업으로 이번에는 등의 통증을 얻게 되었습니다.      

40대 중년에 접어들어 '책쓰기'의 재미에 푹 빠져 지내다가 '요통'이 생겼습니다. 10년 동안 30권이 넘는 책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하우가 생겼고, 글쓰는 일이 더 이상  고통스러운 작업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는 화장실 가는 것과 밥 먹는 것도 뒤로 한 채 글쓰기에 몰입하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시 무리를 하게 되었고, 허리에 통증이 생긴 겁니다. 20년이 넘게 필사와 글쓰기, 책쓰기를 업으로 하다보니 이제는 통증이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발레리나 강수진 씨가 한 인터뷰에서 밤에 허리 통증이 느껴지지 않으면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던데, 그 말에 조금이나마 공감이 갑니다. 허리나 등, 팔꿈치에 통증이 느껴지면 그 만큼 열심히 글을 썼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소설가나 방송작가, 시나리오 작가들이 직업병으로 많이 앓고 있는 치질이나 탈장, 과민성 대장 증후군, 신경성 위염, 종기 등은 아직까지 증상이 없다는 겁니다. 신체 바깥에 생기는 통증은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만 몸속에 생기는 증상은 누구에게 말하기도 어려워서 속으로만 끙끙 앓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에 생기는 병증은 각자 신체의 약한 부위에서 나타나는 것 같은데, 강한 장기?를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은 글쓰기와 관련된 어떤 직업병을 갖고 있나요? 아무런 증상이 없다면 아주 건강해서 그런 것이거나 글쓰기를 설렁설렁 해서 그런 것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통증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통증이 찾아왔을 때 발레리나 강수진씨가 말했던 것처럼 열심히 글을 썼다는 증거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그 일을 천직으로 삼는 사람은 직업병도 평생을 안고 가야할 친구로 생각합니다. 글쓰기로 인한 직업병까지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작가의 자격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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