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배우려면 차라리 백지가 더 낫다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래교육 #2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래교육 #2] 제대로 배우려면 차라리 백지가 더 낫다고?

어떤 피아노의 대가에게 한 청년이 레슨을 받으러 왔다. 그는 청년에게 피아노를 어느 정도 배웠느냐고 물었고, 청년은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어서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청년에게 수업료가 얼마라고 말해주었다. 며칠 뒤 또 다른 청년이 레슨을 받으러 왔다. 그는 이번에도 피아노를 어느 정도 배웠느냐고 물었고, 청년은 한 달 정도 배웠다고 했다. 그는 청년에게 수업료의 두 배를 내라고 했다. 청년이 한 달 정도 배워서 이미 조금은 알고 있으니 수강료를 할인해 주어야지 왜 더 받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백지 상태라 그대로 가르치면 됩니다. 하지만 피아노를 이미 배운 사람은 백지에 까맣게 색칠이 된 상태라 그걸 지우고 다시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두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수업료가 두 배입니다.”

최근에 줌(ZOOM)을 활용한 문해력 중심 ‘하브루타 독서코칭’ 프로그램 관련 상담을 하면서 공통된 질문들을 접하게 되었다. 아마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서 답변 내용을 정리해 봤다.

문해력 중심 ‘하브루타 독서코칭’ 관련해서는 “한글을 뗀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들이 음소분리 한글파닉스(음운인식) 읽기훈련을 꼭 해야 되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답변은 “예, 꼭 해야 됩니다.”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문해력(文解力, Literacy)이란 학교생활과 일상생활을 해나가는데 필요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문해력은 7단계 프로세스로 구성되는데, 1단계 음소인식, 2단계 음절인식, 3단계 파닉스, 4단계 해독, 5단계 어휘력, 6단계 읽기유창성, 7단계 독해 등이다.

1단계 음소 인식은 ‘모음과 자음을 정확히 아는가?’, 2단계 음절 인식은 ‘모음과 자음이 결합된 글자를 정확히 아는가?’, 3단계 파닉스(음운인식)은 ‘모음과 자음의 소리값을 철자와 연결시킬 수 있는가?’, 4단계 해독은 ‘소리값 인식과 파닉스를 통해 낱말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가?’, 5단계 어휘력(학습도구어)은 ‘단어를 보고 의미를 알 수 있는가?’, 6단계 읽기 유창성은 ‘글을 정확하고 빠르게, 표현력을 살려 읽을 수 있는가?’, 7단계 독해는 ‘글을 읽고 뜻을 이해할 수 있는가?(글의 내용과 내가 알고 있는 지식, 경험을 더해서 추론하거나 의미를 구성할 수 있는가?)’ 등의 핵심 질문으로 정리할 수 있다.

보통 초등 1~3학년 아이들이 가장 부족한 부분이 한글파닉스 음운인식 능력이고, 초등 4~6학년 아이들이 가장 부족한 부분이 읽기유창성이며, 중등 1~3학년 아이들이 가장 부족한 부분이 어휘력이다.

어떤 학문이든 위계가 나누어져 있어서 단계별로 하나씩 체계를 갖춰 배워나가야 제대로 완성할 수 있다. 문해력도 1단계부터 7단계까지 벽돌을 쌓듯이 순서대로 하나씩 배워나가야 글을 잘 읽고 이해할 수 있다. 즉, 1~7단계 중에서 아이들이 부족한 부분을 반드시 메워줘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음과 모음, 받침 등 음소단위의 소리값을 잘 알아야 음절단위 글자를 정확히 읽을 수 있고, 소리값과 글자를 잘 연결시킬 수 있어야 단어를 읽고 해독할 수 있다. 아는 단어가 많아야 의미를 잘 떠올릴 수 있고, 빠르고 정확하게 읽으면서 뜻까지 바로 이해할 수 있다. 한글파닉스(음운인식) 읽기훈련을 바탕으로 어휘력과 읽기유창성이 제대로 갖춰져야 독해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기대하는 문해력 수준은 ‘직독직해(直讀直解, 문장이나 구절을 읽는 즉시 바로 해석함)’이다. 읽기유창성은 ‘직독’에 영향을 주고, 어휘력은 ‘직해’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으며, 한글파닉스는 읽기유창성과 관련이 깊다.

4월 초부터 2개월 정도 읽기유창성을 키우기 위한 한글파닉스 읽기훈련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3개월 정도 시간이 필요할 거라 예상했지만 초등 고학년 기준으로 빠르면 2주, 보통 4주, 늦어도 6주만에 음운인식의 원리를 알게 되었다. 물론 평소 독서습관이나 언어감각, 훈련 횟수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훈련을 해보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이 힘들어 하는 정도가 심해졌다. 초등 저학년은 한글을 뗀지 얼마 안 되어서 새로운 방식을 쉽게 받아들이고 금방 적응하는 반면, 초등 고학년은 이미 한글이 익숙해서 그런지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중학생들은 한글이 너무 익숙해져서인지 원리는 금방 깨우치면서도 조금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반복 훈련은 많이 힘들어 했다. 아마도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의 변화를 시도할 때 일어나는 우리 몸의 본능적인 거부반응 때문일 것이다.

음소분리 한글파닉스가 외국어처럼 들리지만 다행히도 익숙해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영어나 중국어, 일어 등 다른 외국어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는데 보통 2~3년 정도 걸린다면, 음소분리 한글파닉스는 2~3개월 정도면 충분하다.

문해력을 위한 읽기유창성을 키우려면 가능한 일찍 음소분리 한글파닉스를 배우는 것이 좋다. 한글을 처음 배울 때부터 한글파닉스로 익히면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아주 수월하다. 이미 한글을 뗀 초등 저학년이라면 백지에 약간의 스케치가 되어 있기 때문에 지우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초등 고학년은 스케치가 많이 되어 있어서 지우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중학생은 거의 까만색 수준으로 자세히 스케치가 되어서 지우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기존의 방식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기 때문에 한글파닉스에 적응하는데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간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시간을 내어 일정 기간 동안 한글파닉스 훈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몇 달 동안의 한글파닉스 훈련으로 문해력의 기초를 튼튼하게 만들면 앞으로 최소 몇 년에서 몇 십년까지 공부 걱정을 안해도 되기 때문이다.

“자료를 얻으려면 잎과 열매를 취하고, 정보를 얻으려면 나무를 취하고, 지식을 얻으려면 묘목을 취하고, 지혜를 얻으려면 씨앗을 취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문해력에 빗대어 바꾸면 “입시목표를 이루려면 독해를 취하고, 학업성적을 높이려면 읽기유창성을 취하고, 시험점수를 높이려면 어휘력을 취하고, 언어감각을 키우려면 한글파닉스를 취하라.”가 된다.

모든 열매가 씨앗에서 나오듯이, 모든 문해력의 결실은 한글파닉스에서 시작된다. 좀 더 많은 아이들이 한글파닉스 훈련을 통해 자신만의 하얀색 도화지를 멋진 꿈으로 가득 채우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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