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2030 대한민국 - 기본의 나라 6화

에피소드 6: 공공의사 ‘도움이’

AI시대 2030 대한민국 - 기본의 나라


에피소드 6: 공공의사 ‘도움이’


---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도시보다 한 박자 느린 하늘, 집들 사이를 구불구불 흐르는 골목, 그리고 마을 어귀에 자리한 작은 보건소. 정수영은 그 보건소의 유일한 인간 의사다. 그리고 그의 옆엔 AI 공공의료 시스템 4호기, ‘도움이(Doumi)’가 있다. 도움이는 키오스크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단말기이며 음성 인식, 정맥 패턴, 피부색 변화, 언어 리듬 분석, 초기 진단 및 약 처방까지 가능한 ‘기본의료 보장형 단일의사 시스템’이었다. 2028년 도입 이후, 농어촌 1차 의료현장에서는 그 어떤 의사보다 더 많이 진단했고, 더 정확하게 처방했다.


정수영이 이곳에 온 건 1년 전. 서울의 큰 병원에서 진료부장을 지내다 스스로 ‘공공의사 파견’에 지원했다. 그는 스스로를 “관찰자로 남기 위한 사람”이라 불렀다.


오전 9시. 문이 열리자, 첫 번째 환자가 들어왔다. 김말순 할머니, 78세. 동네에선 ‘말숙이 엄니’라고 불렸다.

“아이구, 또 허리가 아파서 왔어요.”

“말씀해주세요. 최근 활동 중 허리 통증이 유발된 순간이 있었나요?”

도움이의 질문은 정확하고 매끄러웠다.


“그게... 땔감을 나를라니까...”

“기존 진단 이력 기준, 경추 3번 협착, 복부 하부 근육 긴장 지수 76%. 현재 증상은 경미한 근막통 증후군으로 판단됩니다.”


도움이는 몇 초 만에 처방을 출력했고, 정수영은 조용히 그 옆에 앉아 있었다.

“김말순 할머니, 오늘은 운동 말고 좀 따뜻하게 누워 계세요.”


할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난 선생님이 ‘누우세요’ 하면 더 믿음이 가.”


정수영은 웃었다. 그의 웃음은 기계가 따라 하지 못할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오후 진료가 끝나고, 정수영은 책상에 앉아 로그 데이터를 정리했다. 오늘 하루 총 진료 32건. 도움이의 평균 진단 시간 37초. 수정된 진단률 0%. 그는 조용히 마루에게 물었다.

“오늘 하루 중, 가장 길게 대화한 사람은 누구야?”

“김말순 환자님. 총 발화 시간 97초. 그러나 정보유효성은 37%로 분석되었습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 ‘정보유효성’ 그 말은 너무 명확해서, 사람을 지우기에 편리했다.


---


며칠 후 갑작스레 응급환자가 실려왔다. 61세 남성. 흉통을 호소하며 쓰러진 상태. 도움이는 빠르게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를 측정했고 ‘스트레스성 흉통’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정수영은 이상함을 느꼈다. 환자의 입술색이 약간 창백했고, 왼쪽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심전도를 요청했고, 기계는 ‘비권장 항목’이라 표시했다.

“그래도 진행해.”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5분 뒤, 심전도에서 이상파형이 검출되었다. 초기 심근경색. 환자는 큰 병원으로 응급 이송되었고, 제때 수술을 받아 살아났다. 그날 밤, 정수영은 기록지에 이렇게 썼다.

“기계는 놓쳤고, 나는 느꼈다. 의사의 손은 가끔 ‘틀릴’ 수 있기에 환자를 살린다.”


그 주 금요일, 보건소 시스템관리본부에서 비대면 회의가 열렸다. 도움이의 누락률 0.2%를 두고 개발자들은 다음 업데이트 일정을 논의했다. 정수영은 말했다.

“여러분, 기계는 ‘있던 데이터’만 보잖아요. 근데 사람은 ‘이상한 기척’을 본단 말입니다.”


개발자는 말했다.

“우린 ‘기척’을 숫자로 만들 수 있는 날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그 말은 오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숫자로 만들 수 없는 게 진짜 생명의 틈인 경우도 있습니다.”


다음 날, 말순 할머니가 귤 한 봉지를 들고 왔다.

“선생님, 이거... 도움이도 감귤 좋아하나?”

“도움이는 섭취가 불가능해요.”

정수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이거 선생님한테만 줄게. 왜냐면, 선생님은 날 ‘사람’으로 봐줘서.”

그 말은 오래 남았다.


그날 밤, 정수영은 일기장에 썼다.

“나는 오늘도 틀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운 기계 옆에서, 실수할 준비가 된 인간으로 살았다.”


진유하는 이 장면을 담았다. 카메라 너머, 보건소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도움이는 묵묵히 진단을 출력하고 있었고, 정수영은 할머니에게 감귤을 까주고 있었다. 자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기계는 진단한다. 사람은 묻는다. ‘오늘 어디가 아프셨어요?’”


---


다음화 예고 : 7화 교회는 누구의 것인가?


AI 설교 시스템이 도입된 작은 교회. 신도 수는 늘었지만, 목사의 고백은 점점 줄어든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리는, AI가 대신할 수 있는가? 믿음, 감동, 기계의 경계에서 갈등이 피어오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AI시대 2030 대한민국 - 기본의 나라 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