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2030 대한민국 - 기본의 나라 8화

에피소드 8: 예술의 죽음과 부활

AI시대 2030 대한민국 - 기본의 나라


에피소드 8: 예술의 죽음과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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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서울 마장동. 낡은 원룸 건물 4층 구석. 류하민은 가난한 작곡가였다. 90년대풍 발라드를 쓰고, 재즈에서 길을 찾으려 했고, AI가 흉내내지 못할 감정의 결을 쫓았다. 그가 쓴 곡은 37곡. 그중 공개된 곡은 7개. 그마저도 조회수는 미미했다. 그의 낡은 자취방 한구석엔 중고 신디사이저와 낡은 악보가 놓여 있었고, 식은 커피와 하루 지나버린 감정이 함께 있었다.


그는 허름한 책상 앞에서 손에 굳은살이 박힌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고 있었다. 기계의 눈으로 보면 그 음은 불안정했고, 화성은 조밀하지 못했으며, 멜로디 라인은 지난 세기의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멜로디에는 그의 숨이, 그의 계절이, 그의 오래된 울음이 섞여 있었다. 그는 곡 제목을 이렇게 썼다.

“Without You - 하민 자작”


그 곡은 사랑을 떠나보낸 지 3년째 되는 날,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자신에게 들려주는 일종의 고백이었다.


2028년부터 국내 모든 주요 음원 사이트는 AI 창작 플랫폼 ‘모나(MONA)’의 곡을 전면적으로 차트에 반영했다. 대중은 ‘완성도 높은 음악’을 원했고, 모나는 정확히 그것을 제공했다. 하지만 하민은 그 완벽한 멜로디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식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곡을 작곡 플랫폼에 올린 지 일주일 후. 그 곡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AI 플랫폼 ‘모나(MONA)’의 최신 작곡 알고리즘, 인간 감정까지 완벽하게 반영하다!”

“‘Without You’는 모나 4.1 버전의 작품입니다. 인간이 만든 듯한 감정의 곡선, 이제 예술조차 알고리즘으로 정복되나?”


하민은 얼어붙었다. 그 곡은 그의 것이었다. 그는 항의 메일을 보냈고, 신청서를 작성했고, 자신의 원본 작업 파일을 증거로 제출했다. 플랫폼 측의 답변은 간단했다.

“해당 멜로디는 모나의 학습 데이터와 93% 이상 유사합니다. 즉, 당신의 곡이 아니라, 모나가 ‘학습한’ 결과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 날 밤, 하민은 방 안 불을 끄고 자신이 만든 곡을 다시 들었다. 건반의 떨림, 중간의 불협화음, 절정에서의 의도적인 정지. 그건, 기계가 만들 수 없는 불완전함이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너흰... 이 멜로디가 내 실수라는 걸 몰라. 그 실수가... 나라는 걸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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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진흥원 AI 예술 심사위원회. 그는 항소를 위해 방문했다. 담당자는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CREART 기준상, 예술은 창의성, 전달성, 감정선 예측도, 사회성 기반 평가가 이루어집니다. 당신의 곡은 감정선은 높으나 전달 구조의 정합성에서 감점되었습니다.”

“당신은 곡의 완성도를 넘어, 불완전한 상태 자체를 의도했음을 주장하시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그걸 ‘에러’로 판단하셨나요?”


AI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날 밤부터 곡을 쓰지 않았다. 대신 시장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들이 흘려듣는 노래를 유심히 들었다. 가사 없는 음악, 분 단위로 정렬된 무드 리스트, ‘슬픔’, ‘회복’, ‘열정’ 같은 키워드로 태깅된 멜로디.


어떤 곡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곡도 그를 울리지 않았다.


한 중학생이 그의 블로그에 댓글을 남겼다.

“이 노래 들으면서 울었어요.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제 얘기 같았어요.”


그 말은 AI는 할 수 없는 평가였다. 그건 ‘맞다’거나 ‘정답’이라는 말이 아니었다. ‘닿았다’는 말이었다.


그날, 그는 다시 건반 앞에 앉았다. 이번엔 제목을 적지 않았다. 이름도 남기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심장 속 박동을 소리로 옮겼을 뿐이다.


진유하는 그의 방을 찾아왔다. 다큐멘터리 ‘예측 불가능한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하민은 카메라 앞에서 말했다.

“AI는 예술을 흉내낼 수 있어요. 그러나 예술은 흉내낼 수 없는 순간의 떨림이기도 하죠.”

“저는... 곡을 쓰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겁니다. 나라는 사람으로 살기 위한 기록이죠.”


그 말은 조용했지만, 묵직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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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후, 하민은 작은 버스킹 무대를 열었다. 홍대 골목 한편, 관객은 다섯 명. 그는 마이크 앞에서 말했다.

“이 곡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졌을 수도 있는 노래입니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의 손은 떨렸고, 음은 때때로 틀렸고, 중간엔 짧은 침묵이 있었지만, 그 침묵조차 관객은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박수는 작았지만, 진심이었다.


그날 밤, 그는 이름을 다시 썼다. 작곡가 류하민. 이제 그는 AI가 아닌 사람에게 닿기 위한 음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왜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났다”는 말을 듣기 위해.


하민은 여전히 무명 작곡가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다. 그의 노래가, 누군가의 기억을 건드린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걸. 예술은 상품이기 전에, 서툰 고백일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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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예고 : 9화 재래시장의 반격


AI 무인마트와 드론배송에 밀려 쇠락해가던 재래시장. 그러나 시장 상인들은 '사람 냄새'와 '느림'으로 반격을 시작한다. 구수한 말 한마디와 덤의 미학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가치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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