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2030 대한민국 - 기본의 나라 9화

에피소드 9: 재래시장의 반격

AI시대 2030 대한민국 - 기본의 나라


에피소드 9: 재래시장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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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서울 중랑구. 동원 전통시장. 예전엔 복잡해서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던 시장 안엔 이젠 드문드문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장날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장날’은 이젠 드론 배송 데이터 기준 물류 회전일로만 인식되었고, 시장 상인들은 상권 대신 ‘스토리지 구역’이라 불리는 등록 코드에 종속되어 있었다. 시장 입구엔 반투명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지금은 조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있습니다.”


진유하는 그 문장을 지나 한 가게 앞에 섰다. ‘영옥이네 반찬’ 진열대엔 무말랭이, 멸치볶음, 달걀장조림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고, 그 옆에서 이영옥은 비닐장갑을 끼고 반찬을 담고 있었다.

“요즘은 하루에 손님이 열 명도 안 와요.”


영옥은 카메라를 바라보지 않고 말했다.

“그나마 오는 분도 말을 안 해요. QR 찍고, 모바일 결제하고, 그냥 가요.”


그녀는 처음엔 AI 시장 시스템을 긍정했다. 상품 추천, 가격 예측, 자동 재고 보충. 모두가 똑똑했고, 빠르고, 깔끔했다. 하지만 ‘안부’가 사라졌다. ‘덤’이 사라졌다. ‘한번 웃고 가세요’가 사라졌다.

“예전엔 손님이 반찬 하나 고를 때 적어도 세 마디는 했어요. ‘이건 맵나’, ‘어젠 간이 쎘더라’, ‘된장찌개에 이거 어울리겠지?’ 지금은 그런 말이 없어요. 무겁고, 조용하고, 정확해요.”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눈엔 촉촉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근데 나는 아직... 말을 남기고 싶어서요.”


그날 시장에 한 청년이 들어왔다. 정윤, 29세. 기획자이자 ‘기록하는 시장’ 프로젝트 운영자.

“사장님, 이 반찬에 ‘이야기’를 붙여보면 어때요?”

“이야기?”

“이 반찬이 어떤 날 만들어졌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냥, 그날의 말이요.”


처음엔 영옥도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요즘 그런 말 읽어주나?”


정윤은 미소 지었다.

“요즘은 말이 ‘없어서’ 더 기억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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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영옥이네 반찬’ 앞에는 작은 팻말 하나가 생겼다.

“이 무말랭이는 싸우고 집 나갔던 아들이 ‘엄마 반찬 먹고 싶다’고 돌아왔던 그날 만든 거예요.”


처음 읽고 간 손님은 다시 돌아왔다.

“사장님, 그날 이야기... 진짜예요?”

“응. 그 애가 돌아온 날, 이걸 젓가락으로 한 점 집어 먹더니 ‘엄마 건 다 짜’라고 했어요. 근데 다 먹고 갔어요.”


손님은 웃었다. 그 웃음은 계산보다 오래 남았다.


‘스토리 반찬’이라는 해시태그가 생기고, 몇몇 SNS 계정이 시장 풍경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동원 전통시장에서 밥보다 진한 말을 사 왔습니다.’

‘AI 마켓은 차가운 효율이고, 여긴 따뜻한 비효율이에요.’

‘이야기가 반찬보다 먼저 와요.’


정윤은 상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짧게 음성으로 녹음하게 했다. 그리고 QR로 링크해 상품마다 붙였다.

“이건 남편 투병 중에 매일 만든 반찬입니다.”

“손님이 울고 갔던 김치예요.”

“우리 딸이 이걸 먹고 유치원에서 혼 안 났대요.”


말은 전시되지 않았고, 그냥 조용히 밥 위에 얹혔다.


며칠 뒤, 젊은 유튜버 하나가 시장을 찾아왔다. 그는 시장에서 30년간 채소를 팔아온 남상필 노인의 가게를 방문했다. 남상필은 여전히 상추에 물을 뿌리고, 무의 흙을 손으로 털어내고 있었다. 유튜버가 물었다.

“실시간 스트리밍을 해도 될까요?”


남상필은 멋쩍게 웃었다.

“내가 뭐라고, 찍긴 뭘 찍어...”


하지만 영상은 퍼졌다.

“드론 대신 덤을 주는 시장 아저씨의 감동.”

“무는 깎아주고, 마음은 얹어주는 그곳.”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지만, 나중엔 그리움이 됐다.


서울시청의 AI 소비 데이터 분석팀은 이 현상을 ‘정서적 소비 현상’이라 명명했다. 보고서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편리성 중심 소비 구조 속, 인간적 접촉에 대한 심리적 보상 욕구가 부활 조짐을 보임. 무형적 덤(말, 기억, 인정)의 가치가 금액으로 환산 불가능한 만족도를 제공.”


그 말은, 남상필이 주던 덤이 ‘감정의 재화’였음을 증명했다. 시장은 점점 활기를 찾았다. 그 변화의 중심엔 ‘말’이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그 집 애 대학 갔다면서?”

“오늘 무 참 맛이 잘 들었어요!”


남상필은 더 이상 가격을 묻지 않는 손님들에게 말과 인정을 건넸다. 그리고 그 말은 물건보다 더 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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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유통 시스템은 시장을 분석했다. 예측 불가능한 스토리 반응, 비정형 상품 이름, ‘정가 외 덤 제공’이라는 변수. ‘비표준 판매 행위’라는 알림이 시장의 메인패널에 떴지만, 상인들은 그 말을 읽지 않았다.

“우린 원래 표준 아니었어요.”


영옥은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오래 기억해요.”


그녀는 어느 날, 반찬통에 작은 메모를 넣었다.

“오늘은 특별히 제 기분이 좋아서 반찬이 더 달지도 몰라요.”


그 말은 맛보다 오래 남았다.


진유하 PD는 이 풍경을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기본사회 속, 사라지지 않은 말들’ 그는 영상을 편집하며 한 장면을 반복해서 봤다. 손님이 반찬을 고르고, 영옥이 웃으며 덤을 얹는 장면.

“이건 그냥 주는 거예요. 오늘은 당신 말이 예뻤거든요.”


그 말은 계산서에 찍히지 않았지만, 화면에서 가장 반짝였다.


그날 밤, 정윤은 자신의 다이어리에 이렇게 썼다.

“사람은 물건을 사기도 하지만, 기억을 사기도 한다. 우리는 ‘말’을 팔기 시작했고, 다시 사람을 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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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예고 : 10화 드론택시의 이면


드론택시는 더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공중 교통 독점권을 둘러싼 마찰이 깊어지며 하늘 위에 새로운 ‘사다리’가 생긴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시민의 시선과 기술의 권력이 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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