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학업과 연애로 바쁜 와중에도 책을 쓸 수 있을까?

패션 디자이너의 전문성을 책에 담고 싶어요

원고 집필을 하다가 과거에 찍었던 사진들을 참고하려고 싸이월드에 접속해 사진폴더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커뮤니티’ 메뉴에 눈길이 갔습니다. 클릭해서 들어가 봤더니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동아리를 이끌었던 회장 건이의 사진들을 보면서 갑자기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연락처를 뒤져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녕? 나 훈이 형이야.”

“어? 안녕하세요. 형님. 잘 지내시죠?”

“그래, 잘 지내. 너도 잘 지내지?”

“그럼요~ 이게 얼마 만이에요~”

“그러게~ 5년 전 쯤 미국 유학 중에 잠깐 한국에 왔을 때 청담동에서 함께 점심을 먹은 게 마지막 본 거였구나.”

“형님은 기억력도 짱이세요. 그러고보니 그 때 사진에 심취해 있을 때라 DSLR 카메라로 사진도 몇 장 찍었었죠.”

“그렇잖아도. 싸이에서 그 사진 보고 전화한 거야. 너무 멋지게 잘 찍어줘서 한 동안 SNS 프로필 사진으로 잘 썼었지.”

“저보다 오히려 형님이 더 감각이 있으시던데요? 찍어주신 제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느끼한 버터냄새가 진동한다면서(웃음).”

“그래, 고마워. 그런데 요즘 어떻게 지내니?”

“저는 요즘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제 브랜드로 가방을 만들고 있어요.”

“그래? 상상 밖의 일을 하고 있는 걸? 대학생 때는 낮에는 학교 가고 밤에는 동아리 활동을 했고, 졸업하고는 회계사 시험 준비를 했었잖아?”

“그랬었죠. 사실 예전부터 제 꿈은 패션 디자이너였어요. 그런데 부모님의 권유로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던 거였죠.”

“그랬었구나. 근데 어떻게 패션 디자이너가 된 거야?”

“몇 년 동안 떠밀리듯 수험생 생활을 하다보니 스스로 공부도 열심히 안 하게 되고, 옆에서 뒷바라지 하는 부모님의 걱정도 날로 커져만 가더군요. 그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솔직한 제 심정을 말씀드렸죠.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구요. 잠깐은 한 바탕 집안에 난리가 났었지만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허락해 주시더군요.

“아~ 그래서 미국으로 패션 공부를 위한 유학을 떠났던 거구나. 나는 공부한 경력을 살려서 MBA에 진학한 줄 알았어.”

“아마 주변에 그렇게 생각한 분들이 많을 거에요. 그래서 유학을 간다고만 했지 정확하게 어디에서 공부한다고는 공개하지 않았었죠.”

“그랬었구나. 그래 근황은 어떠니?”

“3년 정도 미국의 유명 패션 디자인 스쿨에서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패션 사업을 시작했어요. 제 브랜드로 가방을 만들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판매하고 있지요. 제가 홈피 주소를 문자로 찍어드릴테니 한 번 들어가 보세요.”

“그래, 좋은 소식이구나.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패션 디자이너도 있다니. 신기한 걸?”

“저도 형님이 작가로 활동하는 게 신기하기만 해요. 참, 제가 형님에게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는데, 괜찮으시면 다음 주쯤 저희 사무실로 한 번 놀러 오실래요?”

“사무실이 어디에 있지?”

“용산 쪽에 있어요.”

“그래? 마침 잘 되었네. 다음 주에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행사가 있는데, 거기 갔다가 들르면 되겠구나.”

“네, 그러세요. 그럼 다음 주에 뵈요.”

“그래, 안녕~”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의 속도가 빨라진다고 하는데, 최근에 진짜로 그렇다는 걸 절감할 때가 많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 일주일이 지나고 건이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디자인 숍이라고 해서 번화가나 명품 거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 아파트를 사무실처럼 쓰고 있었습니다. 들어가보니 입구에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방 마다 사무실처럼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제일 안쪽 방으로 갔더니 건이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직원이 가져다 준 차를 마시면서 잠깐 기다렸다가 통화가 끝나자 바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미안해요. 급한 전화가 걸려와서.”

“아니, 괜찮아. 근데, 아파트를 이렇게 꾸며놓으니 전혀 다른 분이기가 나는구나.”

“네, 부모님이 분양 받아놓은 게 있어서 비용 절감을 위해 사무실로 쓰게 되었어요.”

“그래, 상의할 게 있다더니 무슨 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제가 디자인 숍을 운영하면서 대학에서 강의도 조금 하고 있어요. 강의를 하다보니 제 책을 교재로 쓰면 좋겠더라구요. 그래서 형님에게 책쓰는 노하우 좀 배우려구요.”

“그랬구나. 원고를 써둔 게 좀 있니?”

“아니요. 원고라고는 쓴 게 없고, 강의 준비를 위해 써둔 시나리오는 조금 있어요.”

“그럼 그 시나리오부터 원고 형태로 정리를 해봐. 내가 출판 기획안과 샘플 원고 파일을 메일로 보내줄테니 그 양식에 맞춰서 쓰면 돼.”

“그럼 형님이 제가 쓴 원고를 봐주실 수 있어요?”

“물론이지. 내가 주로 하는 일이 그거잖아. 어떤 사람에겐 머리를 쥐어 뜯을만큼 힘든 일이 다른 사람에겐 머리를 맑게 할만큼 쉬운 일이기도 하지.”

“형님 말씀만 들어도 벌써 책의 저자가 된 것 같네요.”

“김칫국부터 마시지는 말고 하나씩 단계를 밟으면서 원고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좋아.”

“네, 형님 말씀대로 할게요.”

“근데 죄송하지만 제가 갑자기 중요한 미팅이 잡혀서 잠시 후에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괜찮아. 나도 오늘 저녁 약속이 있어서 이동을 해야 했거든.”

“그럼 제가 드린 명함에 있는 이메일 주소로 출판 기획안을 보내주세요.”

“그래, 기획안 작성하면서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고.”

“네, 감사해요. 그럼 다음에 또 뵈요.”           

그렇게 헤어진 후 한 동안 잊고 지내다가 얼마 후에 연락이 되어 근황을 물었더니 대학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연애도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원고 집필은 물 건너 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작가가 책 한 권 내는 일이 산모가 아이 한 명 낳는 일과 비슷한데, 학업과 연애도 비슷한 수준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학업과 연애에 충실하다 보면 어느 순간 또 갑자기 책을 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 때가 있을 겁니다. 아마도 그 때는 지금보다 더 강력하겠지요. 좀 더 강해진 욕구를 에너지원으로 삼아서 원고 집필을 시작해도 됩니다. 세상 모든 일에 너무 늦은 때란 없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건이가 학업이든 연애든 잘 해내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금연, 금주, 다이어트, 책쓰기 중 뭐가 어려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