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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Jun 20. 2018

2부 - 어린 왕자와 행성의 어른들

앙투안 마리 로제 드 생텍쥐페리 - 『어린 왕자』

어린왕자(2015) 무비 스틸컷


  소행성 밖으로 떠난 어린 왕자는 '어른들'을 만났다. 일방적인 명령을 내리는 왕, 다짜고짜 숭배받기를 원하는 허영심에 빠진 남자,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술꾼. 밤하늘의 별을 숫자로 '소유'하려는 사업가. 그들은 하나 같이 모순을 안고 사는 어이다. 그들의 모순은 맹목적인 가치와 닿아있다. 가치를 얻고자 그들은 강요를 하며 때로는 자신을 버린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어린 왕자는 이렇게 평한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


  말의 거리. 어른들은 아무리 봐도 정말 이상해. 어린 왕자의 한마디는 다른 행성으로 넘어갈수록 길어진다. 수식어가 생겨날수록 어린 왕자와 어른 사이의 '거리'가 느껴진다. 네 번째 별, 사업가를 만났을 때 어린 왕자와 그들 사이의 거리는 '완전히' 벌어진다.


어른들은 아무리 봐도 완전히 이상해




나는 어떤 별에 살고 있는 얼굴이 뻘건 아저씨 하나를 알고 있어. 그는 꽃향기라곤 맡아본 적이 없어. 별을 바라본 적도 없고 누구를 사랑해본 적도 없고 오로지 계산밖에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었어. 그러면서 온종일 '나는 진지한 사람이야! 나는 착실한 사람이야! 하고 되풀이하면서 여간 거만하게 구는 게 아니야. 그렇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라 버섯이라고!


  훗날 어린 왕자는 조종사에게 '사업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꽃향기를 맡아보지도, 별을 바라보지도,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도 없는 사. '사업가' 뿐 아니라 어린 왕자가 다녀간 별의 '어떤 어른'들에게 향하는 말이었다.


  왕은 모든 것을 '다스린'다고 했지만 실은 '명령'을 내리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별을 떠나는 어린 왕자를 잡고자 했지만 실은 그저 명령 '받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다.


  허영심에 빠진 남자는 숭배받기를 원했다. '찬양'만이 그를 움직일 수 있었다. 맹목적으로 그는 타인에게 '받기'를 원하는 존재였다. 타인의 시선이 전부인 존재. 그런 그에게 어린 왕자는 말한다.


하지만 그게 아저씨한테 무슨 소용이 있는 거죠?   


  행성을 밟아갈수록 어린 왕자는 '어른'의 단면을 마주한다.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며 타인에게 '찬양'받기를 원하는 그들의 단면. 심지어 다음 별에서 만난 술꾼은 모순된 면모를 비춘다.


  술꾼은 어린 왕자에게 창피한 기억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답했지만 그는 술을 마시는 일이 창피하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술을 마시는 창피한 기억을 잊기 위해 다시 '술'을 마시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술을 마시는 행위를 위해 자신을 털어 넣었다.

  

  사업가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 그는 별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힌다. 그에게 별을 소유하는 일은 '임자 없는 금광석'을 자신의 주머니에 채워 넣는 일이다. 주머니에 들어간 별을 그는 '관리'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자신의 종이에 제멋대로 별을 기록하고 자물쇠를 채울 뿐이다. 은행에 맡길 수 있는, 돈. 그의 관리는 그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이다. 처음 어린 왕자는 그가 말한 '관리'가 자신이 장미를 돌보는 일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내 깨닫고 만다.


내가 꽃이나 화산을 소유한다는 건 그들에게 유익한 일인 거예요. 하지만 아저씨는 별들에게 그다지 유익할 게 없는데



  어린 왕자가 바라본 어른들은 자신의 비뚤어진 가치에 사로잡힌 버섯이었다. 하나의 가치에 기생한 버섯은 그저 자신의 성장에 몰두했다. 그들에게는 타인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저 자신의 현실을 빨아들였다.     


  다섯 번째 별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어린 왕자는 친구로 삼고 싶은 어른을 만난다. 그는 쉬지 않고 가로등을 켜고 끄는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별이 빨라지는 바람에 그는 쉴 새 없이 가로등을 켜고 꺼야 했다.

 

이 사람은 아마도 왕이나 허영심 많은 사람이나 술꾼, 혹은 사업가 같은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할지도 몰라. 하지만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는 사람은 이 사람 하나 뿐이야. 아마도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일에 열심이기 때문일 거야.     


  그는 명령을 지키기 위해 성실히 일하는 '어른'이었다. 유일하게 어린 왕자와 거리가 없는 존재였다. 그가 친구가 되고 싶었던 '어른'.


  어린 왕자가 행성을 위해 화산을 꾹꾹 누르고 바오밥 나무의 싹을 뽑았던 것처럼 그는 행성의 속도에 맞춰 불을 켜고 있다. 그의 모습은 어린 왕자와 닮아 있기도 하지만 지구에 살고 있는 평범한 어떤 어른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다.




  어린 왕자는 여섯 번째 별에서 탐험가를 만난다. 그는 탐험가에게 '지구'에 갈 것을 추천받는다. 평판이 좋은 행성. 지구가 이야기 속에 등장했을 때 많은 생각이 스쳤다. 지구로 도착하기 전 지나쳤던 수많은 행성들은 어떤 의미일까.


  아득하게 펼쳐진 행성 속에서 어린 왕자는 '비뚤어진 가치'를 만났다. 어긋난 관계를 마주했다. 성장한 어린 왕자 앞에 펼쳐진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지구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별이 아니다! 거기에는 백열 한 명의 왕(물론 흑인 왕들을 포함해서), 칠천 명의 주정뱅이, 삼억 천백만 명의 허영심 많은 사람 등 약 이십억쯤 되는 어른들이 살고 있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육대주 전체를 통틀어 사십육만이천오백십일 명이나 되는 가로등 켜는 사람을 두어야 했다고 설명하면 여러분은 지구라는 별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는 어린 왕자가 만난 '어른'들을 품고 있는 행성이었다.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별처럼 빛나는 전등이 수없이 깜빡이는 곳. 우리는 행성의 '어른들'을 품고 있는 지구에서 어떤 가치를 품고 살아갈까. 비뚤어진 가치와 관계를 고집하고 있지 않을까.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 어쩌면 어린 왕자와 말의 거리를 가진 '어른'일지도 모른다.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꽃 향기조차 맡지 않는 '버섯'일지도 모른다.




- 어린 왕자, 앙투안 마리 로제 드 생텍쥐페리, 김화영 옮김, 문학동네

- 당신의 어느 행성에 있나요?


+ 어린 왕자 영화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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