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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Aug 18. 2018

3부 - 장미와 여우, 어린 왕자의 관계 쌓기

앙투안 마리 로제 드 생텍쥐페리 - 『어린 왕자』


1. 처음이기에 어려웠던, 장미  


  어린 왕자의 일과는 쳇바퀴를 돌고 있었다. 바오밥나무의 싹을 자르고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을 꾹꾹 누르고. 때때로 의자에 앉아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장미를 만난 뒤 어린 왕자의 일상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장미에게 물을 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덮개를 씌워주는 일련의 순간들은 쳇바퀴에서 그를 끌어내렸다.

 

  쳇바퀴 아래에서 그는 장미와 첫 관계를 쌓았다. 장미는 어린 왕자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시간을 들여 자신을 꾸미고 어린 왕자를 기다렸다. 겉을 꾸미는 것으로 어린 왕자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려 주기를 바랐다.



이곳은 대단히 춥군요. 설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니. 전에 내가 있던 곳은……


 

  그러나 장미 자신의 허점을 가리기 위해 뱉었던 말에 어린 왕자는 상처를 받았다.


 서툴기만 했던 그들에게 관계는 버거웠다. 장미는 솔직하지 못했고 왕자는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흔들림 속에서 어린 왕자의 결정은 행성을 떠나는 일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어긋났다.


"그래, 난 너를 사랑해." 하고 꽃이 말했다.
"넌 도무지 그걸 눈치채지 못하더라. 내 탓이지 뭐.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너도 나만큼이나 어리석었어.
부디 행복해…… 그 둥근 덮개는 내버려둬.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  



2. 멀어지고 난 뒤 깨닫는, 장미의 '의미'


  어린 왕자는 행성을 떠나고 난 뒤 장미에 대해 생각한다. 거리가 멀어진 뒤에야 자신이 지나친 장미의 행동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대해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별에는 꽃 한 송이가 있었지. 그 꽃은 언제나 먼저 말을 걸곤 했는데……



  어린 왕자는 바위산에 올라 소리친다. 바위산 아래, 그러니까 사막은 어린 왕자의 행성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항상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던 장미와 같은 존재를 만날 수 없었다. 메아리. 자신의 말을 되풀이하는 ‘자신’을 만났을 뿐이다.  


  어린 왕자는 걷고 걸은 끝에 장미가 만발한 정원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어린 왕자는 깨닫는다. 세상에서 유일하다고 생각했던 장미가 '평범'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난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가진 부자인 줄만 알고 있었지.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가진 꽃은 겨우 평범한 장미꽃이군.



3. 서로에게 특별해지는 관계 맺기


어린 왕자(2015) 무비 스틸 컷


  여우와 어린 왕자가 만났다. 친구가 필요했던 어린 왕자 앞에 반가운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함께 놀고 싶다는 말을 전하지만 여우는 거절한다.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길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들인다는 게 뭐지?
 그건 사람들이 너무나 잊고 있는 건데……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관계를 맺기 위해 가만히 있어 달라고 전한다. 경계를 풀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만큼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천천히 여유를 두고.


  장미와의 관계에서 어린 왕자는 조급했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관계가 가까워지기를 원했을 것이다. 더딘 속도의 ‘의미’를 알지 못했던 어린 왕자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상처받았다.

 

  여우를 길들이는 과정 속에서 어린 왕자는 진정한 의미의 ‘관계’를 깨달았다. 여우는 어린 왕자가 오는 날을 손꼽으며 그를 기다렸다. 하루는 함께여서 ‘특별’해졌다. 헤어지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눈물이 날만큼 그들은 가까워졌다. 여우의 눈물에 어린 왕자는 마음을 아프게 할 생각이 없었다며 괴로워한다.



  그렇다면 넌 얻은 게 아무것도 없잖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얻은 게 있어. 여우가 말했다. 밀밭 색깔이 있잖아.
그리고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장미꽃들을 다시 가서 봐.
너의 장미꽃이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꽃이란 걸 알게 될 거야.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진정한 ‘장미’의 존재에 대해 전한다. 수천, 수백의 장미가 피어 있어도 결국 어린 왕자에게 소중한 ‘특별한 장미’는 소행성에 두고 온 ‘장미’라는 사실을 말이다. 여우의 조언을 통해 어린 왕자는 비로소 ‘장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4. 관계와 시간, 보이지 않는 탑 쌓기


어린 왕자(2015) 무비 스틸 컷


  작별을 앞둔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중요한 비밀 하나를 가르쳐 주었다.


  그럼 비밀을 가르쳐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는 여우의 말은 되새긴다. 짧은 순간 어린 왕자의 머릿속에는 장미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장미의 ‘속마음’을 어린 왕자는 그제야 이해했다. 말하고 표현하지 않아서 버둥거렸던 시간들이 여우의 한마디로 해답을 찾은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서로가 서로를 ‘허락’하는 단계를 넘어설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관계 속에서 함께하는 어느 날은 특별 해질 테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탑을 그렇게 쌓아가는 것이다.


  









- 어린 왕자, 앙투안 마리 로제 드 생텍쥐페리, 김화영 옮김, 문학동네

- 관계에 서툰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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