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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May 07. 2018

어린 왕자가 여전할까?_어린 왕자

다시 만난 어린 왕자

알다시피, 거긴 너무 멀어.
그래서 나는 이 몸을 가지고는 갈 수가 없어.
너무 무겁거든.

처음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 나는 이 대사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자주 듣던 어린 왕자에는 이런 결말이 없었다. 여우와 사막, 그리고 장미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린 왕자는 자신의 육체를 버리고 소행성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사막을 탈출한 조종사는 이후 밤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어린 왕자를 떠올렸다.


  어린 왕자를 다 읽고 난 뒤 나는 종종 어린 왕자의 미래를 상상했다. 과연 어린 왕자는 B612호 소행성에 안전하게 도착했을까. 장미와는 다시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이 막연한 궁금증을 나만 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상상을 하는 감독이 있었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


  감독은 원작의 이야기가 더 큰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감독이 의도한 조종사와 소녀의 이야기 사이에 원작의 이야기가 중심을 잡는 구도로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원작의 이야기가 결론에 도달했을 때 조종사와 소녀는 첫 이별을 겪게 된다. 몸이 아픈 조종사를 위해 소녀는 그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어린 왕자를 대신 찾아 떠나게 된다. 이때 현실과 어린 왕자의 세계가 아닌 우주의 세계가 새로운 구성으로 들어온다.


  감독은 각각의 세계에 차이를 두어 영화가 하나의 현실적인 동화책 같은 세계가 되기를 원했다. 영화는 원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차용하는 서두를 시작으로 소녀가 살고 있는 장면으로 현재를 표현한다. 빌딩이 즐비하고, 한 소녀가 명문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엄마를 따라 같은 말을 반복하고 반복하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조종사가 아닌 공부를 하거나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소녀의 상태에는 그림자가 지거나 화면이 다소 어둡게 그려진다. 반대로 조종사와 함께였을 때는 밝은 색상을 활용하며 소녀가 처한 현실과 조종사와 함께하고 있는 순간을 다르게 표현한다.


어린왕자(2015) 공식 스틸컷


  어린 왕자 원작의 이야기 자체는 현실 세계와의 구분을 위해 스톱모션 기법으로 촬영했다. 원작의 삽화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주기 위해 스톱 모션 속 모든 것을 종이를 활용해 표현했다. 이를 통해 감독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였다고 한다. 감독의 선택은 곧 어린 왕자의 원작과 새롭게 창작한 이야기 사이의 간극을 만들었다. 이로써 관객은 감독이 단순히 원작을 재현하는 일에 목표를 두고 있지 않고 있음을 깨닫는다.

                  

   

  소녀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나타나는 초반부는 관객에게 첫 번째 충격을 안겨준다. 제목 탓에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가 어린 왕자의 원작 내용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 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독에 의도에 따라 영화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차용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놀라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오랫동안 찾았는데 그러기엔 이 세상은 너무 어른스러워져 있었나 봐.

어린왕자(2015) 공식 스틸컷


  수치, 운영, 계산, 은행. ‘수로 표현되는’ 현실과 명문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연습하는 소녀의 배경이 소개된다. 한 장면으로 왜 조종사가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지 못했는가에 대한 배경이 설정되는 것이다. 어른스러움을 강조하는 세상, 소녀가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기계처럼 어른이 정한 대답이 흘러나오는 현실, 그것이 소녀가 살아가고 있는 배경이다.


  그러나 이사를 온 옆집 조종사의 세상은 소녀의 현실과 다르다. 그의 집에는 어린 왕자를 옮겨 놓은 것처럼 꾸며져 있다. 어린 왕자를 잊지 않으려는 그의 조각들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어린 왕자와 만난 여우, 다시 어린 왕자와 만나기 위해 만들고 있는 비행기. 이곳에는 소녀가 마주한 '어른'이 정한 현실이 없다. 그의 공간은 오히려 소녀에게 다른 '현재'를 느끼게 한다. 소녀에게는 여유가 생긴다. 조종사와 누워 햇살을 바라보고 느낄 정도의 여유. 그렇게 소녀는 엄마가 정한 스케줄표에서 벗어난다.


  영화의 말미, 소녀는 조종사를 위해 직접 어린 왕자를 찾아 떠난다. 조종사가 남긴 비행기를 타고 떠난 곳에서 소녀는 어린 왕자를 만난다. 그곳은 조종사를 만나기 전 소녀의 현실처럼 어두침침한 세계다. 어린이가 없는 어른 만이 존재하는 세계. 물음을 던지는 어린이는 오히려 방해 요소다. 모두가 필요한 자리에서 기계처럼 일해야 하는 시스템. 그곳에는 허영심에 빠진 사람, 일명 우쭐이 아저씨가 경찰이 되어 있고 왕이 엘리베이터에서 층수를 누르는 일을 하고 있다. 겨우 찾아낸 어린 왕자는 조종사에 대해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그저 굴뚝을 닦기 위해 고군분투할 뿐이다. 어린 왕자의 앞에는 'Mr'가 붙었다. 어린이 빠진 왕자는 현실에 뒹굴며 생각하고 느끼는 법을 잊어버렸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자본에 의해 결정된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중요한 것으로 바꾸는, 중요한 것이 오로지 돈인 세상이다. 그 속에서 '어린 왕자'라는 개인은 중요하지 않다. 역할을 수행하는 기계의 부품, 딱 그 정도가 사람의 가치인 것이다.



  소녀는 자신이 아닌 엄마의 계획에 따른 삶을 살고 있다. 엄마를 위해 아이다운 행동을 배제한 채 살아간다. 자신을 위해 인생계획표까지 짠 엄마의 말과 행동이 소녀의 세상 전부였다. 조종사와의 만남으로 소녀는 어른이 아닌 자신의 눈을 되찾는다. 기계처럼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는 삶이 아닌 시계를 벗어던지고 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있는 삶을 소녀는 처음으로 알게 된다. 표정 없이 모든 것에 무관심하던 소녀는 조종사와 어린 왕자를 만난 뒤 환하게 웃으며 감정표현을 하기 시작한다. 수동적으로 어른에게 맡겼던 자신의 ‘일상’을 소녀는 스스로 되찾는다. 심지어는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 첫 모험에 뛰어들기도 한다. 영화는 소녀의 변화를 찬찬히 따라가고 있다.                      


  조종사는 작중 ‘어린 왕자를 잊지 않은 어른’이다. 어린 왕자와 함께 했던 일을 잊지 않은 채 간직하고 있다. 그는 작중 어른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어린왕자(2015) 공식 스틸컷


어른이 된다는 게 문제가 아니란다. 잊어버린다는 게 문제지.

  이웃 주민들을 그를 괴짜로 여기며 피하지만 소녀만이 그의 진가를 알아본다. 어린 왕자 이야기를 중심으로 두 사람은 진정한 친구의 관계를 쌓아간다. 관계가 이어질수록 소녀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 역시 비로소 자신과 어린 왕자가 함께 했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다.



  어린 왕자의 경우 원작이 삽입되는 부분은 변화가 없었다. 소녀가 조종사를 위해 어린 왕자를 찾아 떠났을 때 비로소 변화가 생긴다. 어린 왕자는 일명 미스터 프린스가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던 왕자가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게 된 것이다. 'Little' 대신 ‘Mr'를 얻은 왕자의 표정에는 그늘이 생겼다. 돈이 지배하는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어린 왕자조차 과거를 잊어버린 어른이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조종사와의 추억과 장미, 여우와 함께 했던 일 대신 자신은 굴뚝을 청소해야 하는 현실에 찌들어있다. 그곳에서는 허영심에 빠진 사람은 경찰관이 되어 여전히 사람들의 박수에 반응하고 어린 왕자에게 명령을 내리고 싶어 하던 왕은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들의 명령에 따라 층수를 눌러주는 사람이 되어 있다. 숫자를 세며 소유하는 것이 전부였던 사업가는 돈을 통해 모든 사람과 별을 소유하려 했다.


  어린 왕자의 일부 내용을 과감히 줄여 전개한 대신 어린 왕자 자체에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으로 영화는 원작에서 확장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 확장한 이야기 속에는 현실을 풍자하는 것과 함께 아이러니한 요소들이 숨어있다. 어린 왕자가 다시 자신이 어린왕자였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이야기할 때 사업가를 따라왔던 ‘어른’들은 그 대답에 웃음을 터트린다.


  뒤늦게 돌아온 별에는 행성을 집어삼킨 거대한 바오밥 나무와 시들어버린 장미가 있다. 장미가 사라지자 소녀는 왕자와 장미가 이별하게 된 것을 통해 자신이 어른이 되어 할아버지를 전부 잊어버릴 것이라며 슬퍼한다. 그때 어린 왕자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말한다.


오직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게 맞아.

  장미를 잊지 않겠다는 어린 왕자의 모습에서 소녀는 조종사를 떠올린다. 보이지 않아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소녀는 어린 왕자의 곁을 떠난다. 조종사에게 돌아온 소녀는 어린 왕자의 책을 하나로 묶어 그에게 건넨다.


  이를 통해 영화는 어린 왕자의 첫 장으로 시작해 어린 왕자가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는 것으로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다.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영화가 바라본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이다.


어린왕자(2015) 공식 포스터


- 어린왕자, 마크 오스본

-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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